"관람료 안 낼 거면 승려증 내놔"....대단한 천은사
논란 많은 문화재 관람료, 4년 원성에도 그대로... "사찰 결단 필요"
▲ 지리산 성삼재로 올라가는 도로 상에 있는 천은사 매표소.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찰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통과할 수 있다. ⓒ 성하훈
"절 보러 가는 게 아니고 지리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무슨 입장료를 내라는 겁니까?"
"그렇더라도 여기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가셔야 합니다."
"절 구경 안하고 산에 올라가는 건데도 내야 한단 말이에요? 참 나, 얼만데요?"
"두 분이시니까 3200원입니다."
지난 20일 오후 지리산 성삼재로 올라가는 861번 지방도에 있는 천은사 매표소 입구. 매표소를 통과하는 등산객과 입장료를 받는 천은사 관계자 간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문화재를 보지도 않을 건데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는 요구에 등산객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등산객은 결국 돈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이런 항의는 뒤이어 올라가는 다른 등산객들에 의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입장료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모두 그리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닌 듯 다들 한마디씩 하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비싼 통행료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완전 강탈이지요. 1년에 서너 번 정도 지나가는데 지나칠 때마다 짜증만 나고 불쾌합니다."
함양에서 대전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성삼재 도로를 넘는다는 한 50대 부부는 "사찰이 등산객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국민 세금으로 만든 도로를 이용하면서 통행료를 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고단길 통행차단 관람료 징수는 위법' 소송
▲ 천은사 매표소 앞에서 통행료 철폐 소송을 결의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 전남동부사회문제연구소
지방도 한복판에서 사실상의 '통행료'를 받고 있는 지리산 천은사 도로 문제가 사찰과 도로 이용객들 간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찰 소유 땅에 도로가 났고 문화재가 있으니 당연히 관람료를 징수해야 한다는 천은사 쪽 입장에, 등산객들과 도로 이용자들이 보지도 않을 사찰 관람료를 낼 수 없다고 항의하면서 빈번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다. 행정당국이나 사찰 측이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천은사 도로 문제는 지난 2007년 이후부터 계속 불거져 왔다. 문화재 관람료가 국립공원 입장료와 통합 징수돼 별다른 마찰이 없던 것이 2007년에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지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천은사 측이 길목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자 도로를 이용해 지리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15일 순천의 전남동부사회문제연구소 측은 '노고단 길 통행차단, 문화재관람료 징수는 위법'이라며 시민 소송단을 모아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전라남도가 도로법에 의해 노선 인정을 한 도로의 통행을 사찰이 방해하는 행위는 도로법(38조)상의 무단점용과 일반교통방해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천은사가 주장하는 문화재관람료 징수행위는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도로상에서 행해지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라면서 도로관리 주체인 전라남도를 대상으로도 도로관리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관람료 안 내는 지역 주민 차 가로막고 윽박지르기도
▲ 시민단체가 소송 자료로 활용할 예정인 천은사 입장권 ⓒ 전남동부사회문제연구소
그러자 시민단체는 검찰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시 대검에 재항고했고, 대검은 2009년 1월 재수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2009년 4월 '지리산 천은사 일대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합법한 행위'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사찰 측이 고의적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당성에 대한 논란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은 계속됐다.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방도로를 이용하는데 '통행료'를 내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에 일부 스님들도 공감하고 있다. 실상사에 거주하는 꽤 이름 있는 스님 한 분도 최근 장삼을 입지 않고 도로를 통과하려다 매표소 직원들에게 저지 당하며 입장료를 강제 징수당할 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표소 직원들이 스님인 척하는 것으로 의심해 승려증을 내놓으라며 압박해 스님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 스님은 직접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저런 식으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문화재 관람료 강제 징수에 부정적인 생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람료를 징수하기 위한 천은사 측의 행태가 때로 너무 심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관람료 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압박이 강압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지리산 주변에 거주하는 신희숙씨는 "지난 5월 도로를 이용하다가 매표소 직원들에게 저지당해 한때 차 안에 감금 당하다시피 했었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으로서 일상적으로 넘어 다닌 곳인데, "조폭 같은 매표소 직원들이 관람료를 안 낸다고 차를 가로막고 윽박질러 공포감마저 느꼈다"면서 천은사 쪽 처사에 분개해 했다.
천은사 매표소 관계자에 따르면 마찰이 없는 날도 있지만 심할 때는 하루 2~3번 격하게 항의하는 사람들과 충돌이 벌어진다고 한다.
"통행료 징수 아니며, 관람료 수익 내역은 밝힐 수 없어"
▲ 천은사 측은 빨간색 테두리 안이 모두 천은사 땅이고 도로 중간 중간에 문화재로 지정된 암자들이 있다며 문화재 관람료 징수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에 따른 시민들의 계속된 항의와 시민단체의 소송이 이어질 조짐에 천은사 쪽은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천은사 쪽 입장을 정확히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천은사 관계자는 "다른 일정이 있어 만나기 어렵다"면서 전화 통화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에 직접 문의하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주문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성삼재 아래 쪽 시암재까지가 천은사 땅이기 때문에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차단막이 없는데도 차단막을 설치해 관람료를 징수를 한다는 식으로 언론 보도가 나와 천은사 쪽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총무원 측은 정부 측에 책임을 돌렸다. 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천은사 도로는 군사정권 시절 군사작전도로를 만든다는 정부의 방침에 강제 수용됐고, 사유지가 일방적으로 국립공원 부지에 포함돼 있는 경우"라며 환경부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야기가 쉬운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통행료로 징수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지리산 성삼재 일원까지 문화재로 지정돼 있기에 당연히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수익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공개하거나 밝힐 수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조계종 총무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와 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종단과 사찰들의 의견을 들어야 되는 부분이라 천은사 하나의 문제로만 간단히 정리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서 "정부 측에서 대안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 문화재들에 대한 지원 대책 등을 만들어야 하는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4년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며 "정부가 대응 방안이나 지원책을 갖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문제로 조계종이 여론의 비난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계종이 의지 보이면 정부 차원에서 해결 가능
이에 대해 실무 부서인 환경부 측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2007~2008년 사이 문화재 관람료 문제로 조계종을 비롯해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의를 벌였으나 서로 이견이 있고 다른 문제들이 생겨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논의가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문제는 강제 징수에 따른 비난 여론에 조계종도 부담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 서로가 대안을 모색해 어느 정도의 절충점을 찾아냈지만, 당시 경찰의 총무원장 스님 차량 검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총무원이 정부와의 각종 협의를 중단해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수익이 연 4억~5억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찰 측이 매표소를 옮길 경우 1억 미만으로 수익이 떨어진다고 해서 감소되는 부분을 정부 지원으로 보전해주는 방안을 강구했고, 예산까지 확보해 놨으나 진척되지 못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계종단과 다른 차원의 문제로 논의하고 있는 사안이 있는데, 천은사 관람료 문제는 여론에 비난 받을 소지가 많은 만큼 조계종이 의지만 보인다면 전에 마련된 기준도 있기 때문에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계종 총무원과 천은사 쪽이 의지를 보인다면 정부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 문제가 단순히 정부와 조계종 총무원의 협의로만 해결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면서 "조계종 의회 격인 종회의 논의를 거쳐야 하는 등 불교계의 결정 과정 자체가 간단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천은사는 문화재 관람료 문제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에 관련 부처 차원에서 아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원성 자자한 관람료 즉각 없애야 할 것
▲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알리기 위해 천은사 측이 걸어 놓은 펼침막 ⓒ 성하훈
지리산 지역 주민들은 사찰 측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지리산 시인으로 알려진 이원규 시인은 "천은사 관람료 문제는 원성이 자자한 사안인데도 조계종 측이 인심만 잃고 있을 뿐 대책을 안 세우고 있는 것 같다"며 "사실상의 통행세와 다름 없는 관람료 징수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고 하면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와서 어떤 용도로 썼는지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모든 것이 돈 문제로 귀결되는 사안이기에 사찰 측이 정부 측과 협의해 관람료를 없애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처장은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많아 조만간 지역에서 토론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하고, "사찰이나 정부 측이 도로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서로가 현명한 대안을 모색해 관람료를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밝혔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도 "정부가 보상을 해주고 사찰 측이 매표소를 옮기는 방안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면서 "행정당국이 대안을 갖고 있다면 사찰 측이 이를 즉각 받아들여 더 이상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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