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진보단일후보가 돼 이재오 꺾을 수 있을까?
[동행 취재] 금민 사회당 예비후보
▲ 금민 진보진영 단일후보 추대 기자회견장 ⓒ 사회당
"기자회견 명단, 취합됐습니까?"
"지금 계속 추가되고 있어서…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은평구 불광동의 금민 사회당 예비후보 선거운동 사무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7월 1일 열릴 '금민 은평을 진보진영 단일후보 추대 촉구 합동기자회견'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지지 서명자 명단을 확인하느라 실무 담당자들이 곳곳에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지지자 명단에는 김수행, 김세균, 손호철, 김상봉 교수 등 진보적 학자 그룹과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기도 한 이갑용 민주노총 지도위원 그리고 작년 10.28 안산 상록을 보궐선거에 진보연합후보로 출마했던 임종인 전 의원 등 영향력 있는 진보인사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띄었다. (7월 1일 최종 취합된 인원은 324명이다)
마침 이재오 한나라당 전 의원도 같은 날 출마 기자회견을 연다는 속보가 날아들었다. 이 두 개의 기자회견이 현실화되자 바야흐로 링이 갖춰진 듯했다. 한편에는 '왕의 남자' 이재오가, 한편에는 '진보단일후보'가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은평을에서 이재오 전 의원은 3선 의원을 지냈다. 2008년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의원에게 자리를 넘겨준 이 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로 돌아왔다. 은평은 지방선거에서 마흔 한 살의 젊은 구청장을 뽑는 등 진취적인 선택을 여러 번 보여주었지만, 지방선거와 달리 국회의원은 "이재오처럼 힘 센 사람이 돼야 한다"는 지역 정서도 상당하다. 예측불허다.
7.28 재보선의 핵심인 은평을에서 '진보단일후보'로 떠오르는 금민. 그러나 그와 사회당 모두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금민은 누구인가? 어째서 많은 진보 인사들이 그를 지지하는가?
금민을 설명하는 세 개의 키워드
▲ 금민 사회당 은평을 예비 후보 ⓒ 사회당
내가 찾아간 날 '은평함께가는장애인부모회'(회장 김효요)와 금민 후보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금민은 장애인에게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지를 주제로 짧게 강의했다.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가 되는 이유는 장애때문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와 소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득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지금까지는 기업에 장애인 의무고용을 할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장애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여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은 장애인을 경제주체로 자립하게 하고, 사회적 기업과 같은 분야에 참여할 기회도 늘려 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부모회 김효요 대표에게 금민 후보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정도의 동의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금민을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스마트'다. 세계 IT산업을 평정하고 있는 스마트 열풍은 한마디로 '공급자 중심의 운영체제'에서 '사용자 중심의 운영체제'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금민이 생각하는 진보 역시 재벌중심, 토건개발 중심의 운영체제를 사람 중심, 복지 중심의 운영체제로 확 바꾸는 것이다. 그 핵심에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이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는 마땅히 국민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동시에 금민은 대안의 필요성을 20대 청년, 주부, 비정규직, 장애인 등 당사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낸다는 평을 받는다.
2007년 대선을 떠올려 본다. 당시 그가 TV 토론회를 마친 후에 '개념 금민'이란 별명을 얻었다. 한 누리꾼은 "안타깝네요. 허경영과 같이 앉아계실 분이 아닌데..."라고 탄식했다. 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100만 군중대회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호언할 때, 금민은 "진보는 대안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자"고 호소했다. 2007년의 '개념 금민'은 2010년 '스마트 진보'로 진화했고, 올해 지방선거는 무상급식·기본소득의 의제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금민이 주장한 '대안연대'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에너제틱(energetic)
▲ 출근길 시민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금민 사회당 은평을 예비 후보 ⓒ 사회당
아침 7시 출근길 명함돌리기를 시작으로 금민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한 달 이상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인사를 나누는 시민도 가끔 있다. 매일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 텐데 그의 표정은 밝다. 열심히 명함을 나눠주는 그에게 물어본다.
"젊은 여성들을 집중 공략하시네요?"
"제일 잘 받거든요."
많은 후보들이 은평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금민은 가장 먼저 지역을 누비기 시작한 후보다. 이 날도 명함 돌리기가 끝나자 장애인부모회와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지역 자치단체와의 만남, 진보적 교수·학자들과의 만남 등 쉴 틈이 없다.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체크하며 수행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지친 기색은 없다.
첫 공직선거 출마였던 2007년 대선, 금민은 0.1%에도 못 미치는 참혹한 득표를 얻었다. 사회당 내에서 후보의 책임을 묻는 성토가 줄을 이었고 결국 그는 대표직을 사퇴했다. "사회당으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당내 갈등이 일부 당원들의 탈당과 진보신당 행으로 이어지자 당에는 무력감이 팽배했다. 금민이 정치적으로 재기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동안 자중하던 금민은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거리로 나왔다. 그때 내가 청한 인터뷰에서 그는 "깃발만 크게 만들어 세운다고 지도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백만이 모이면 백만에 어울리는 운동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앞으로의 할 일을 예고했다. 그 뒤 그는 사회대안포럼,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창립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백만에 어울리는 대안 운동'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금민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돕는 것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민주노동당도 '민주대연합'을 주장하며 저쪽으로 가버린 상황에서 금민은 노회찬의 선대본부장을 자임했다. 노회찬이 던진 '진보대연합' 제안에 실천적 연대로 대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7.28 선거에서 금민은 은평을을 택했다.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들조차 이재오를 두려워해 출마를 꺼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람시가 말한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는 그와 잘 어울린다. 촛불시위의 열광 속에서도 그는 한계를 지적했고, 모두가 말리는 싸움에는 돈키호테처럼 뛰어들어 한 가닥 반전의 희망을 찾아내려 한다. 그는 확실히 '에너제틱' 진보다.
3. 챌린저(challenger)
이재오라는 강적 앞에서도 금민은 자신만만하다. 이재오가 조직력을 무기로 '조용한 동네 선거'를 치르겠다는 입장이라면, 금민은 '미니대선'을 만들어 '진짜배기 MB 심판'을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월드컵보다 흥미진진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은평의 민심은 '한나라당 심판'으로 확인되었다. <열린사회은평시민회>의 최순옥 대표에 따르면 "단일화만 된다면 이재오라도 꺾을 수 있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분위기"이다. 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며 두터운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최 대표의 말이라 신뢰성이 느껴진다.
한편 금민은 이번 도전으로 소위 '뒤베르제의 법칙'을 깨어버리겠다고 한다. 뒤베르제의 법칙이란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 하에서 선거 결과는 거대 양당 구도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금민은 이 법칙을 돌파하는 길이 있다는 생각이다.
진보세력이 거대 양당의 틈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공격적인 플레이로 '진짜 야당'이 되고자 덤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전략이 민주당과 협력하며 틈새를 찾는 것이라면, 금민은 민주당을 밀어내고 진보세력이 제1야당이 되자고 한다. 민주당은 '가짜 야당'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남미가 지배하는 세계 축구계가 아시아의 약진에 놀란 것처럼, 금민은 보수 양당 모두를 심판하는 '진보의 약진'을 보이겠다고 한다.
스마트·에너제틱·챌린저='진짜 야당'
바쁜 일정을 마치고 '마을 카페'에 들러 금민은 팥빙수를 시켰다. '마을 카페'는 공정무역 커피와 음료 등을 파는, 주민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피로를 풀어주는 단맛에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그는 지역 신문을 펼쳐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살핀다. 앞서 <열린사회은평시민회> 대표가 "후보도 잘 생겨야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를 해서인지, 그는 자신의 사진이 잘 나왔는지 꼼꼼히 본다.
'이재오에 맞서는 진보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금민의 희망인데, 이날 만난 두 그룹의 사람들 생각은 다소 달랐다. 지역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민주당까지 포괄한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연구소>에서 만난 진보적 교수들은 '진보정당·진보세력의 선집결'을 강조한다. 금민은 전자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후자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일까.
"민주당이 가짜 야당인 이유는, 무상급식·보편적 복지 같은 진보진영의 의제를 빌려가면서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려면 재정이 필요한데, 이는 한국을 지배하는 토건부자, 금융부자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걷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를 실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므로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요. 진짜 야당은 단호한 '조세재정혁명'을 통해 기본소득과 제대로 된 복지를 실행하는 세력입니다. 그러기 위해 진보진영의 결집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금민은 민주당 후보가 나오더라도 독자 완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독자 완주는 단지 진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덧붙였다. 그러려면 금민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보다 진보진영의 지지를 확실히 얻어내는 것이다.
324명의 진보인사가 금민을 진보단일후보로 추대하자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진보신당은 아직 조직의 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개인 자격의 지지를 보내오고 있다. '반MB 민주대연합'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을 '진보대연합'으로 끌어오는 것도 과제다. 물론 지역에서 진보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급선무다. 은평이 현재보다 오른쪽이 아닌, 더 왼쪽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정치연합도 중요하지만, 풀뿌리 주민의 손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뛰어야 한다.
금민은 '진보단일후보'가 되어 이재오를 꺾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이뤄진다면 이건 정말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대이변이 될 것이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은평은 뜨거워지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은평을 금민 후보를 동행취재한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언론 프로메테우스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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