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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흡착 물질 놓고 왜 서로 다른 말 하나

이승헌·양판석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으로 볼 수 없어"...합조단 "엉뚱한 조건에서 한 실험" 일축

등록|2010.07.02 11:37 수정|2010.07.02 12:25

▲ 지난 5월 19일 오후 3시 10분경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두고 국방부는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내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인양된 천안함을 30분동안 공개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아래 합조단)이 어뢰 폭발의 결정적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폭발 물질 성분을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당초 합조단은 지난 5월 20일 조사발표에서 천안함 선체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체에서 동일한 성분의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 검출됐다며 이것을 북한 어뢰 공격의 결정적 증거물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승헌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볼 수 없어" 
합조단 "엉뚱한 조건에서 한 실험 결과일 뿐"

하지만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가 알루미늄 분말을 1100도로 40분간 가열하고 2초 이내 물에 급랭시킨 결과 '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 검출되었다며 합조단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 지질과학과 양판석 박사도 "합조단의 에너지 분광(EDS) 분석 결과가 자연상태의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의 산소/알루미늄 비율(0.23)과 다르다"며 "천안함 흡착 물질은 합조단이 주장하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AL203)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 교수와 양 박사의 의문 제기에 합조단은 지난달 29일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구성한 천안함 보도 검증위원회에 대한 설명회에서 "어뢰 폭발을 재연한 수중 폭발실험에서도 극미량의 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 나왔지만 함량이 0%에 가까워 물리적 의미는 없었다"며 "오히려 이 교수의 실험이 어뢰 폭발에 의한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 생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합조단 폭발유형분과 이근덕 박사는 "이 교수의 실험은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담금질한 수준밖에 안 된다"며 "그것을 폭발 현상과 비교한다는 건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합조단 윤덕용 민간측 단장도 "실험실에서는 폭발 현상을 구현할 수 없다"며 "이 박사가 엉뚱한 조건에서 한 실험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시비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양판석 박사가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체에 흡착된 물질, 그리고 합조단이 자체 실시한 수중폭발 모의실험 생성물의 산소/알루미늄 비율(각각 0.92, 0.90, 0.81)이 자연 상태의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의 산소 알루미늄 비율(0.23)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 합조단의 이근덕 박사는 "양 박사는 흡착물질에 수분(H2O)이 40%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반박했다. 시료에 수분이 포함돼 산소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와 양 박사는 지난달 30일 <한겨레 21>에 보낸 공동보고서를 통해 "합조단이 폭발 물질이라고 발표한 에너지 분광기의 그래프는 폭발 결과물인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풍화작용에 의해 일반적으로 형성되는 점토 물질인 '깁사이트'(Gibbsite·수산화알루미늄·Al(OH)3)"라고 주장해 합조단의 설명을 즉각 재반박했다.

이 보고서에서 양판석 박사는 "깁사이트는 백령도 앞바다 퇴적물에서도 나올 수 있고, 자연 상태에서 채취해 (천안함과 같은 배의) 방화벽 재료 등으로 널리 쓰이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료에 수분이 포함되어 산소 비율이 높아졌다'는 합조단의 설명에 대해서 양박사는 "에너지 분광(EDS) 분석을 하려면 시료를 전도체로 만들기 위해서 보통 '진공' 상태에서 금으로 코팅을 한다"며 "시료가 젖은 상태에서 금으로 코팅을 한다는 것은 과학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결정적인 흉기 발견됐다면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증거"
"혐의자가 범행 부인할 때는 결정적인 증거물과 사건 관련성 의심"

합조단은 이 교수와 양 박사의 지적에 대해 재반박할지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은 합조단이 지난 5월 20일 조사 결과 발표를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천안함 침몰 해역에서 어뢰추진체를 수거한 날이 5월 15일로 조사 결과 발표 5일전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 촉박한 시간에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언론단체에 대한 설명회에서 합조단의 한 관계자는 "살인 사건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결정적인 흉기가 발견됐다면,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증거에 불과하다"고 기자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선 "혐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범행 당시 혐의자의 행적이 불확실한 가운데,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물과 사건의 관련성이 의심받고 있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합조단이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내놓기 위해서는 의혹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들을 포함시킨 재실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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