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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이는 희생양... 난 SKT에 속았다"

40대 얼리어답터, SKT-모토로라 '사기 혐의' 고소한 까닭

등록|2010.07.02 18:12 수정|2010.07.02 18:12

▲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한 국내 첫 스마트폰 '모토로이' ⓒ 김시연


아이폰4 수신 불량 문제로 미국에서 집단 소송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모토로이 사용자들이 손해 배상과 제품 환불 등을 요구하며 집단 행동에 나섰다.

모토로이 사용자인 이아무개(49)씨는 지난달 29일 SK텔레콤 정만원 대표와 모토롤라코리아 릭 월러카척 대표를 '사기 혐의'로 서울 강서경찰서에 고소했다. 양사가 지난 2월 스마트폰 모토로이(XT-720)를 출시하면서 내장 메모리 사양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동영상 등을 보는 데 필요한 '플래시' 기능 지원 약속도 지키지 않는 등 소비자의 올바른 제품 선택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사후 관리(A/S)나 업그레이드 문제로 소비자들의 집단 민원은 종종 있었지만 형사 고소로까지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첫 안드로이드폰 모토로이, 메모리 문제로 잡음

국내 첫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스마트폰인 모토로이는 2월 출시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장 미국 시장에서 아이폰 대항마로 큰 인기를 끈 모토로라 스마트폰 '드로이드'에서 쿼티자판만 뺐다는 '다운그레이드' 논란에 휩싸였다. 다행히 예약 판매량이 2만 대를 넘기며 인기를 끄는 듯했지만 얼마 못가 내장 메모리(ROM) 논란에 부딪혔다.

아이폰은 내장 메모리가 8~32GB에 달해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아래 앱) 저장 공간이 충분한 반면 모토로이 내장된 플래시 메모리(ROM) 512MB 가운데 실제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128MB에 불과했다. 8GB 외장 메모리가 있긴 했지만 안드로이드폰에선 이곳에 앱을 설치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그나마 512MB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OS 공간 외에 T맵, T스토어, 네이트 등 SK텔레콤 기본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미들웨어인 스카프(SKAF)에 90MB 넘는 공간(파티션)을 미리 할당해 메모리 부족을 키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SK텔레콤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 모토로이 사양 표시 변화. 출시 초기엔 내장메모리 관련 사양 설명이 없었다가 논란이 된 뒤 뒤늦게 추가됐다. ⓒ


SKT, 사용자 불만에 '스카프' 삭제, OS 업그레이드 약속

결국 SK텔레콤과 모토로라 쪽도 지난 6월 중순부터 고객센터와 온라인을 통해 '스카프'를 ROM에서 삭제해 주고 있다. 또 외장 메모리에도 앱을 저장할 수 있게 한 안드로이드 OS 최신버전인 '프로요(2.2버전)' 업그레이드도 준비하고 있다.

스카프 삭제와 OS 업그레이드 약속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모토로이 논란이 최근 집단 손해배상 요구와 형사 고소 사태로 이어진 건 지난 5개월간 이통사측의 대응에 실망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탓이다.

형사 고소와 집단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이씨는 2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6월 초부터 다른 사용자들과 행정 관청에 집단 민원을 제기했지만 지지부진해 이를 가속화하려고 개인적으로 형사 소송을 하게 됐다"면서 "준비기간이 짧아 이번엔 메모리와 플래시 2가지만 문제 삼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사기 구속 요건은 충분해 보인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반면 피고소인 쪽은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2일 "접수된 내용을 포함해 상세하게 검토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특성을 고려해 지원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6차례 업그레이드 통해 계속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모토로라코리아 관계자 역시 "메모리에서 스카프는 이미 삭제했고 프로요 업그레이드 역시 시점만 밝힐 수 없을 뿐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 리콜 안 돼 손해 배상 차원의 제품 환불 요구"

반면 이씨는 "스카프가 삭제됐지만 프로요 업그레이드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기본 메모리(RAM)도 256MB에 불과해 홈 화면 이동시 버벅거리는 '홈 딜레이' 현상이나 다운, 리부팅 현상, 통화 품질 등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품 리콜을 요구해왔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손해 배상 차원의 제품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씨는 네이버 안드로이드폰 카페(http://cafe.naver.com/androiders) 회원들을 중심으로 모토로이 사용자 150여 명의 위임장을 모아 소비자기본법 등 위반 혐의로 한국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하는 등 민사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또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 및 손해배상 재정 신청도 한 상태다.

이씨는 "5개월이 넘도록 개선이 안 되는 건 모토로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증거"라면서 "소비자원 분쟁 조정에서 성공하리라 믿지만 실패하더라도 민사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1월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모토로이' 발표 기자간담회. ⓒ 김시연


"내장 메모리 문제 알았으면 모토로이 안 샀을 것"

지난 5개월 거대 통신사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며 가족들과 직원들 눈치 보느라 지쳤다는 이씨를 정작 화나게 만든 건 모토로이의 결함보다도 이통사와 제조사가 보여준 성의 없는 태도였다.

이씨는 "그동안 소비자 불만에도 성의 없이 조치하다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해주는 모양새였다"면서 "결국 해준다 해준다면서도 지난 5개월간 고객들 고생시키고 갈등과 불만만 키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IT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난 2월 모토로이를 예약 구매한 '얼리어답터'인 이씨는 "아이폰의 폐쇄적 정책이 맘에 들지 않아 모토로이를 선택했지만 내장 메모리가 부족해 앱을 제대로 깔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모토로이를 구매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모토로이 사용자들은 결국 희생양인 동시에 얼리어답터로서 제품 개선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실제 모토로이가 메모리 논란으로 판매량이 9만 대 정도에 머물면서 이후 출시된 갤럭시A, 시리우스 등 안드로이드폰들은 가용 메모리 용량을 500~600MB 수준으로 늘렸고, 갤럭시S는 아예 아이폰과 같은 16GB 내장메모리를 채택했다. 구글 역시 프로요 업그레이드를 통해 외장 메모리 앱 저장 기능과 플래시 기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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