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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으로 할게요... 참, 그리고 우린 부부예요"

[홀로 떠난, 6개월의 아프리카 탐험9] 수단

등록|2010.07.04 10:50 수정|2010.09.30 18:14
우린 부부라고요!


애초에 이집트 룩소르에서 처음 만난 K와는 루트가 서로 비슷해, '우리 앞으로 또 볼 수 있을거야' 라는 말로 헤어지기도 했는데 실제로 카르툼에서 만났다. 인생은 돌고돈다. 단 며칠이지만, 정든 카르툼의 친구들과 너무나 슬프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알리를 뒤로 하고 K와 나는 수단의 동쪽마을 카사라로 향했다.

▲ 점심도 주는 고급 버스. 수단의 사막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에어컨도 나온다. ⓒ 박설화



시골마을 카사라에 몇 개의 호텔이 있었지만 너무 비싼 곳은 K나 나나 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군데를 돌아보며 어디서 묵을지를 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를 처지가 아니었다. 난 혼자였으면 여러 군데서 퇴짜 맞을 신세였던 것이다. 신실한 무슬림들이 보기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나에겐 방을 줄 리가 만무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숙소 정하기의 어려움을 겪은 우린, 관계가 어찌 되느냐고 묻는 직원에게 허름한 더블 룸을 위해 기꺼이 얘기 했다.


"이 방으로 할게요. 아 참, 그리고 우린 부부예요." 

카사라에서의 숙소나눠 썼던 방. 모기장 있는 침대가 K의 침대. 한화로 일박에 6천원 가량이었다. ⓒ 박설화




체크인을 위해 여권을 달라는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콩알만해져서 '부부라는 것이 여권에 표시가 되었던가?' 하는 엉뚱한 고민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권에 미스라고 되어있는지, 미세스라고 되어있는지, 그들은 별 관심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부부라고 했으니 그대로 믿은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내 심장은 콩닥 댔으니…. 다만, 혼자 숙소를 구할라치면, 꽤 힘든 날을 보내야 했을 듯 해서 참 다행스럽게 지나갔구나 싶다.

미소가 예쁜 소녀.뚜띨 마운틴 아래 살던, 미소가 예쁜 소녀. ⓒ 박설화




전기가 이틀에 한번씩 들어온다는 작은 마을 카사라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무슨 문제 때문인지 3일 내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로 생활을 해야 했다. 더구나 물은 정해진 짧은 시간에만 나와서 그 때 맞춰 발과 얼굴이라도 씻어야 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K와 한 방을 쓰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K는 프로였다. 배낭여행을 꽤 잘 알았고, 방을 같이 쓰거나 현지 음식을 먹는 일에 겁을 내지 않았다. 가끔 잘난 체를 하고, 자기 침대에 모기장을 칠 때, 너무 부산을 떨긴 했지만



뚜띨 마운틴 지역의 어떤 집뚜띨 마운틴을 비롯한, 부근의 모든 산은 아주 높은 돌산들이다. 한가롭게 거니는 염소가 자연스러운 곳. ⓒ 박설화





 그렇게 따지면 나에게 안전 불감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난 하루하루 그렇게 모기장을 치고 자는 게 귀찮기도 하고 가져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모기장이 있는 숙소에서도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이상한 쪽으로 깔끔 떠는 면이 있어 모기장을 보면 거기에 붙어있는 먼지가 모기보다 더 싫었다.

내 나름의 방법은 얇은 긴 옷을 입고 자는 것이다. 몇몇 지역은 긴 옷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덥지만, 이집트나 수단을 지나면 보통 저녁엔 선선한 편이니 긴 옷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단 피부가 드러나지 않으면 벌레가 물기에도 꽤 노력이 필요하니 좋은 방법이다.


환영합니다."뚜띨 마운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집약해서 보여주는 곳. ⓒ 박설화



 
나는 중간을 건너 뛴 아마추어

 "K, 자니?"
 "안 자. 모기가 윙윙거린다."
 "그래도 넌 모기장 안에 들어가서 자쟎아. 그냥 자는 나보단 낫지."
 "사라, 너는 어떻게 아프리카에 오게 되었어?"
 "그냥 꼭 오고 싶었어. 난 유명한 관광지나 도시보다는 우리가 정의하는 '발전이 덜 된' 라오스나 캄보디아 이런 데가 좋거든. 정말 사람 냄새 나고, 자연스러운 곳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초록들도 많고. K 너는? "
 "나는 일종의 마지막 장소이지. 사라, 그럼 넌 아프리카 제외하고 전 세계는 다 가 본 거니?"
 "아니! 세계여행이 꿈이긴 하지만 아직 그건 아니고, 피지랑, 호주 반 바퀴 돌고, 아시아, 동남 아시아가 다야. 난 동남아시아 진짜 좋아해. 그러다 느꼈지. 왠지 내가 아프리카에 오면 좋아하게 될 거라고…"
"뭐? 그럼 미국이나 유럽배낭 여행 혹은 남미도 안 가본거야? "
"응. 유럽배낭여행 갈 돈으로 호주를 간 거였거든."
"엥? 보통 배낭여행을 얘기할 때, 아시아는 초보자, 동남아시아는 아마추어, 미국이나 유럽배낭여행을 거치면 프로, 그 다음이 남미나 아프리카인데, 넌 중간을 훌쩍 뛰어 넘고 바로 하드 코어로 접어든 거네? "
 

수박 주스함께 머물던 일본인 K가 물과 수박을 넣어 손으로 으깨 만든 수박 주스. ⓒ 박설화




솔직히 K가 이 얘기를 할 때는, 살짝 밥 맛이었다. 배낭 여행자를 초보자와 아마추어, 프로로 분류해서 '아시아에서 바로 아프리카로 점프한 거야?라며 날 보는 표정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K는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세계여행이라는 그 단어에 무언가 압박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 동양인 여행자는 일본인이듯, 그들은 세계여행이 일종의 통과 의례이며 유행인 듯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K는 남들과 비슷한 여정은 무조건 배제했고, 모든 생활을 현지식으로만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난 그가 그리 부럽진 않았다.

내게 있어서 세계여행이란 일 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아시아인같이 생겼던 아이.아버지가 코리안이라고 하길래 정말이냐고 물어봤더니, 농담이란다. 너희들 처럼 생기지 않았냐고 오히려 되묻던 아이의 할아버지때문에 한바탕 웃었다. ⓒ 박설화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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