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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일제시대의 금지곡 <봄노래>

등록|2010.07.05 11:13 수정|2010.07.05 11:13
누가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되돌아 꽃이 피고
새 우는 이 봄을 노래하자
강산의 동무들아
모두다 모여라 춤을 추며
봄노래 부르자.

오너라 동무야 소리를 높여
봄노래 부르면서
이 강산 잔디밭 민들레꽃
따면서 동무들아
다 같이 이 봄을 찬미하자
이 봄이 가기 전

구름이 날으고 나비도 나니
 다같이 흥겨웁게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춤추며 노래하자
모두다 모여라 춤을추며
봄노래 부르자
<봄노래> 작사 : 김서정(金曙汀)  작곡 : 김서정(金曙汀)

옛 음악책들최신창가집(1929), 조선가요작곡집(홍난파작곡) 신선속곡집(이상준저) 표지 ⓒ 한정희



지난 4월 어느 날, 다도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 회원들이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남자분이 <오너라 동무야>를 부르는 게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왜냐하면 이 노래를 직접 부르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내게는 아주 특별한 노래이다. 왜냐하면 내 생애 가장 처음 배운,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노래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보다 몇 살은 더 적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다니! 그 분이 주신 명함에는 '한국학연구소 자료조사실장 김OO'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를 김 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노래가 얼마나 좋으냐"며 "일제시대에 이 노래는 금지곡이었으며 학생들이 원족(소풍)갔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면 일본 경찰이 호르라기를 불며 나타나 부르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춤까지 추는 게 아닌가. 해방 후 우리 어르신들이 얼마나 목이 메게 이 노래를 불렀을까 생각하면서 지금 이 노래를 김 소장님처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했다. 악보는 볼 줄 몰라도 노래 부르기를 그리 좋아하신다며 또 노래를 부르시는데...

저 산너머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마는
천리 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 생각 그리워 눈물짓누나.

아, 이 노래도 내가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나와 동년배인 한 분과 나만 이 노래를 기억했는데 아련한 어린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가요108곡집> 표지가요108곡집(한창희편, 1958) 표지 ⓒ 한정희


유성기엣날 축음기. (테엽을 감아주어야하는 ) ⓒ 한정희


쌍나팔 축음기쌍나팔 축음기 (김성근소장) ⓒ 한정희



그래서 지난 5월 17일 성남에 있는 한국학연구소를 찾았다. 김 소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연구소라지만 지하실에 개인 소장품을 진열(보관)해 놓은 상태였다. 누렇게 변색된 고서적들이 서고에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놀랐다. 어떻게 이 많은 책들을 수집했는지 놀라웠고 고 미술품 뿐 아니라 몇 백 년 된 자기들, 옛날 유성기, 레코드판 등이 있었다. 자신은 자가용도 없이 다니시면서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소장할 수 있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관심은 음악에 관한 것이라, 옛날에 펴낸 음악책들을 하나하나 뒤적였다. 해방 전 1930년대에 출간된 악보들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1957년) 펴낸 책들도 있었다. 내겐 모두 반갑고 귀중한 자료였다.


그렇게 <가요108곡집> 책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편저자가 바로 고등학교 때 우리 음악선생님, 한창희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1958년, 출판사도 대구에 있는 신생문화사, 인쇄도 경북인쇄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나온 책이었다.

책에 수록된 노래들은 그 시절 우리가 선생님께 배운 노래들이었고 한 선생님이 작곡하신 노래도 몇 곡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옛날 레코드판오래된 레코드판들 ⓒ 한정희



선생님은 여러 해 전에 돌아가셨는데 내게는 잊지 못할 선생님이시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음악시간, 그때는 학기가 4월에 시작되었으니까 목련이 피기 시작하는 화창한 날, 선생님은 손수 피아노를 치시며 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의 <4월의 노래>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피아노 솜씨도 좋으셨지만 그 매력 있는 목소리는 우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셨다. 나는 그때 나도 선생님처럼 음악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져 나도 음악선생이 되었던 것 같다. 모교 졸업 30년 행사로 은사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내가 한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4월의 노래>를 불러 드렸을 때 선생님께서 박자를 맞추시면서 좋아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김 소장님이 갖고 계신 옛날 레코드판으로 <봄노래>를 들었다. 2절 가사를 정확하게 익힐 수 있었다. 이 판은 1950년대에 신세기 레코드에서 녹음한 것이며 고복수, 황금심이 노래했다. 노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원한의 세월 글로 못쓰고 말로 못하는 하소연을 노래로 불렀다. <봄노래> 뿐 아니라 <학도가>, 우리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강남 달> 등 옛 노래들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조상들의 혼이 담긴 민족의 노래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노래가 사라지고 잊혀지지 않도록 부르고 가르치고 보존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조선.com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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