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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코니아일랜드 핫도그 콘테스트 관람기

더 참았어야 했을까?

등록|2010.07.05 14:02 수정|2010.07.05 18:48

핫도그 콘테스트 3연패 우승자 조위 체스트넛조위 체스트넛이 2008년 2009년에 이어 올해 2010년에도 우승을 하고 협찬사 음료수를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 강수정


코니아일랜드 핫도그 컨테스트 현장에서 인도 룸메 조비타와 함께코니아일랜드 핫도그 컨테스트 현장에서 인도 룸메 조비타와 함께 ⓒ 강수정


지난 4일은 234번째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두 아이와 뉴욕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한 지 3년째, 아이들이 여름캠프를 떠난 지 일주일째라서, 혼자 무얼 할까 하다가 코니아일랜드에서 열리는 '핫도그 먹기 콘테스트'에 같이 가자는 친구의 메일을 보고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2년 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오전 11시 반쯤 그 곳에 갔다가 발 디딜틈도 없는 땡볕에서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 전광판으로 간신히 콘테스트를 보고 실망한 두아이들과 함께 집에 돌아왔던 생각이 나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2달 전 인도에서 뉴욕으로 공부하러 온 룸메이트 '조비타'도 따라나섰다.

오전 10시 30분경에 코니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백미터 거리도 안되는 곳에 무대가 있고 무대 앞에는 이미 수백명이 현란한 복장과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무대위 락가수들 노랫소리에 열광하고 있었다.

낮 12시 30분쯤 시작하는 쇼보다 두시간 앞서 도착했지만, 우리가 자리잡고 선 곳은 조명 구조물 같은 것 때문에 무대가 반쯤 가려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자리였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U-S-A, U-S-A 구호는 내가 대한민국도 일본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란 나라 한복판에 있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일본인으로 핫도그 콘테스트에서 5~6번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고바야시는 2008년 오늘 이자리에서 조위 체스트넛( Joey Chestnut) 이라는 미국 젊은이에게 우승컵을 넘겨주고 말았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과거 진주만 공격을 감행한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고바야시를 핫도그 많이 먹기라는 크레이지 컨셉에서나마 이긴 것에 열광했고 올해에도 미국이 또 이기기를 바라며 U-S-A를 연호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틀 전 한국에서 날아온 시댁 작은 어머니 부고가 떠올라 아직도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고 있을 시댁 식구들이 덧없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캠프에서 돌아오면 핫도그 콘테스트에 엄마 혼자 갔다는 사실에 아쉬워 할 사랑스런 아들, 딸의 표정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내가 어쩔수 없는 것을 아쉬워말고 안타까워 말자. 그냥 이 시간을 즐기자. 1년만에 찾아온 애 없는 싱글의 자유, 머릿속에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상념들을 접어놓고, 젊음을 누려보자.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어서 한국에 갈 수도 없는 가난한 유학생 조카며느리가 이곳에서 촛불켜고 묵상을 한들 누가 알아주랴? 공짜 여름캠프에 가서 날마다 수영을 하며, 엄마란 존재를 잊고 즐기고 있을 두 아이를 생각하며 묵상하고 있으면 누가 알아주랴?'

이렇게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통해 나지막히 존재하는 죄책감을 달래며, 음악에 따라 살살 몸을 흔들고 있을때, 갑자기 뉴욕 경찰 한명이 우리 앞에 나타나 바리케이트를 열고 무대앞 두번째 칸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나와 함께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은 기뻐하며, 무대가 훨씬 가깝고 잘 보이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핫도그 콘테스트를 구경하러온 귀여운 소녀.내 이웃 관중이었다. 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 착하게 아빠말씀을 잘득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운좋게 잡은 비치볼을 주었다. ⓒ 강수정


뉴욕경찰들은 우리들에게 경쟁에 참가할 선수들이 지나갈 길을 남겨두고 서 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노래도 하고, 무대에서 무작위로 던져주는 티셔츠나 비치볼 같은 것을 받으려고 버둥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비치볼 하나를 가까스로 잡았는데, 내 옆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원하는지 물어봤다. 그 애는 내 딸과 비슷한 나이였다. 그애는 당연히 비치볼을 원했고 나는 공을 아이에게 건넸다. 나중에 그 애 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공을 잡았는데 자신은 이미 하나 가졌다면서 그 공을 나에게 주었다. 뉴욕의 인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흐뭇했다. 이웃 관중들과 사진도 찍고, 함께 서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날씨는 너무 더웠다. 화씨97도의 땡볕이었다. 한참 관중들의 얼굴이 익어갈 무렵 뉴욕경찰 한명과 함께 선남선녀 백인 커플이 나타났고 지나가는 줄 알았던 그들은 나와 룸메이트 앞에 멈춰서서 그 경찰관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가?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고 기다렸지만 그 경찰관이 우리를 지나간 뒤에도 그 커플은 우리 앞에 우뚝서서 쇼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른 경찰이 와서 선수들이 지나가야 하니 공간을 비워놓으라고 사람들을 뒤로 두 발짝씩 가도록 했다.

끼어든 그 백인 커플 때문에 우리는 무대가 거의 안 보였고,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 주변에서는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사람 하나 선뜻 나서서 그들에게 시야를 가리지 말라고 말할 용기는 없는 듯 했다. 그녀는 사람들 시선이 의식되면, 경찰관를 손짓해 불러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아까보다 공간이 좁아졌고 나보다 작은 룸메이트 조비타는 그들에 가려 전혀 무대가 보이지 않은 상태로 10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조비타는 용기를 내어 "너희들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다. 늦게 왔으니 거기에 서면 안된다." 라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살짝 웃으면서 금방 자리를 옮길 거라고만 이야기를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또 다시 20분이 지났다. 그들은 선수들이 입장하는  좋은 길목에 서서 지나가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허그를 하는 등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의협심이 발동했다. 모처럼 자유롭고 활기찬 뉴욕에서의 시간을 즐기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지만 더이상 참지 못하고, 코리안 악센트로 자신있게 말했다. "너는 저 경찰과 친구냐?" 그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너희들은 여기 서 있으면 안된다. 공공질서를 지켜라. 너희들은 교육받지 못한 행동을 하는 무식한 사람들이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키를 비교해 보면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그 커플은 웃으면서, "뭣이 그렇게 문제냐?" 고 받아쳤다.

경찰이 왔다. 아까 그 커플과 대화하던 경찰이었다. 그 커플은 의기양양해졌다. 나는 경찰에게 똑같이 말했다. 그들이 나중에 들어와 여기 서 있어서 무대를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경찰은 조금 있으면, 선수들이 다 입장하고  공간이 생길 것이니 그냥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늦게 왔으면 뒤에 가서 줄을 서야한다" 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간에 그곳에 도착한 나의 친구들은 무대에 근접하지도 못한채 전광판으로 쇼를 지켜보고 있다는 문자가 왔기에 나는 더욱 더 의협심이 생겼다. 나의 기분은 이미 자유롭게 들뜬 관객이 아니라, 친구인 경찰의 권위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권과 즐거움만 생각하는 막무가내 커플 때문에 피해보는 이들의 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변론인이 되어 있었다.  

조금 후에 선수 입장이 끝나고 선수입장을 위해 비워뒀던 공간으로 사람들이 옮겨가도록 허락되었다. 그 두 커플은 내 주변의 이웃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키가 워낙 커서 뒤어서도 잘 보였으리라. 그제야 나와 힘없고 백없고 부지런하기만 한 이웃들은 쇼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이 처음 왔을때 정중하게, "미안하지만, 이곳에  잠시만 서도 되는지" 먼저 양해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뉴요커들은 얼굴 붉히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기 때문에 모두들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내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찰과 함께 나타난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입장하는 조위 체스트넛내 앞을 바로 지나가는 체스트넛의 얼굴을 가까스로 찍었다. ⓒ 강수정



Juliet Lee젊고 아름다운 핫도그 컨테스트 단골 참가 선수로 유명한 Juliet Lee도 입장할 때 가까이 잡을 수 있었다. ⓒ 강수정


고바야시가 부재한 경기는10분 동안 52개의 핫도그를 먹은 미국대표 조위 체스트넛의 승리로 끝났고, 이 기록은 92년 이후로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한 독립기념일이라서 그런지 조위 체스트넛 본인의 2008년 기록 58개나 2009년의 68개에도 훨씬 못미치는 기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홍세화씨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에서 썼던 '톨레랑스(관용)'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갈등을 한다. 이것을 그냥 못 본 척 할 것인가 문제를 삼을 것인가. 문제를 삼았을때 나한테 오는 이득은 무엇이고 해는 무엇일까? 이런 계산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우리 인간들의 머릿속에 늘 있으리라. 가끔은 지나치게 톨러런트(참고 지나가는)한 사람을 우리는 참지 못한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 우리는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에게 화살을 쏘기도 한다.

며칠 전 자신이 잘 나가던 직장에서 스스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울며 하던 친구 얘기가 스쳐지나 갔다. 미국내 한인단체에서 수년간 봉사하던 그녀는 자신이 고객과 이야기하는 와중에 바로 옆자리의 상사가 윗가슴을 다 드러낸 여자의 사진을 보고 즐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그것도 미국내에서 일종의 '성희롱'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직의 대표에게 직장내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내부규정을 만들어 문서화 할 것을 요구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시에는  법정까지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조직은 그녀가 원한대로 서둘러 내부 규정을 만들었고, 그 여성 나체사진을 보던 사람의 직위를 강등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로 그 조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따돌림했고, 심지어 여성직원들 조차도 윗사람들 눈치보느라 그녀와 이야기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딸을 둔 그녀는 그 딸들에게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움을 느낄 그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본인이 할 수 있는 투쟁을 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고, 그 결과는 왕따와 떠밀려진 사임으로 이어졌다. 그 후 그녀는 비슷한 단체에서 다시 일을 하려고 지원을 했고 인터뷰를 거쳐 채용허락을 받았으나, 몇시간 후 다른 사람을 뽑았다는 애매모호한 기각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 참고 지나가야 나에게 유리하고 편한 일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아까 그 순간 참고 지나갔으면 모처럼 애 딸린 않은 싱글로서의 자유로운 기분을 맘껏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 커플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느끼고 그 특권을 누렸을 것이고,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런 짓을 계속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내에서 겪을 저항에도 불구, 내규의 개정을 요구했던 그 친구의 용기는 수십년간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면서도 직장내에서는 여성직원들을 배려하지않고, 무시하고, 희롱했던 그 어르신(?)의 버릇을 고쳐놨으리라고 믿는다. 그 직장내에 아직도 일하는 여성들도 두고두고 그 사건을 기억하며, 그녀의 용기있게 '참지않음'을 감사해 하고 있을거라 믿는다. 

필자는 직장을 떠난 그녀가 매우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면서, 단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이 글을 통해서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고, 그녀와 같은 용기가 우리 모든 여성들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코니아일랜드 핫도그 컨테스트 현장에서 그냥 옆에 서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친해진 이웃들. 희모자 쓴 사람은 내 룸메 조비타이다. ⓒ 강수정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온라인저널이프와 이프토피아 홈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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