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산골마을은 춥다. 지난 밤 나는 이불을 몸에 두른 채 월드컵 경기를 봤다. 저녁에 잘 때는 이불 두 장을 깔고 그 위에 담요 두 장을 또 깔고, 그것도 모자라 또 담요를 덥고 잤다. 그래도 집안의 공기는 쌀쌀하다. 가끔 도시에 있는 집으로 간다. 수시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지만 덥다. 벌써 열대야가 시작되었는지 밤에까지 무척 덥다.
요즘 나는 문명을 떠나 잠깐 산골마을에 살고 있다. 약 한 달 전까지는 아침저녁으로는 상당히 추워 겨울옷을 입고 난로까지 뗐었다. 서울에서 불과 30분 거리인 청평인데 말이다.
창가에 턱을 괴고 가만히 한낮에 거리를 내려다본다. 만물의 영장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문명이 왜 이렇게 무지할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온다. 쨍쨍 내리쬐는 초여름 햇살 아래, 거리는 열기를 내뿜으며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하다. 아스팔트에 휩싸인 거리는 어디 한 군데 흙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평이라도 더 아스팔트를 덮기 위해 오늘도 거리는 공사 중이다.
건물들은 또 어떠한가. 그저 비슷, 비슷하게 사각으로 막아놓은 콘크리트 건물과 창문들이 끊임없는 복사열을 만들어 다시 도시를 데우고 있다. 그러니 갈수록 그 더위가 배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사는 하루의 모습을 가만히 한 번 가만히 뒤돌아본다. 내가 하루에 먹은 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 먹거리가 이 초록별에 쓰레기와 공해만 배출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까?
지금 이 산천에 4대강 공사를 하고 있다. 꿈결같이 구불구불 뻗어나간 우리 산하의 강줄기, 그 실개천들. 그 습지에는 이 세상에 온갖 생명들이 살고 있는데. 무지막지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 도시에 미친 듯한 열대야는 청계천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요즘 어류 개체수 조작으로 탈도 많고, 만들 때도 그 재미없는 직선과 콘크리트 도배에 많은 우려도 샀지만. 도시 온도의 낮춤과 음이온 피톤치드의 향상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시의 자연은 그 시각적인 기능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서적인 안정에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갈수록 사회가 왜 이렇게 사막화되어 갈까. 마치 하루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TV에 유아 납치에 대한 기사도 시끄럽다.
과연 그들만의 책임인가? 화학적인 거세든 물리적인 거세든, 인간의 존엄성이 땅바닥에 내동이쳐진 이 시대에, 우리는 혹 그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이버의 왕국이라고 한다. 인터넷의 천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살율 1위, 하루에 36명이라는 고귀한 생명이 이 지상을 떠나고, 사람들은 경제, 경제, 하면서 갈수록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도 경제만이 이 나라가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조장하면서 사람들이 조급증을 더욱 부추긴다.
PC방에 가보면 밤을 지새우고 컵라면을 먹고 앉아있는 청소년을 보면 우리의 미래가 불안해진다. 인터넷의 본래 사명인 정보의 검색과 우리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는 기능은 사라져 버리고, 도박과 도색, 비방의 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우리의 환경은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하루의 삶을 가만히 한 번 뒤따라 가본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다른 동물의 삶을 들여다보듯이. 내가 이용하는 차 꽁무니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매연이 나오고, 우리가 움직이면 그 꽁무니에서도 계속 쓰레기가 뒤따른다. 종이․휴지의 과용․음식물 쓰레기․샴푸 린스 온갖 세재들의 천국 목욕탕․ 우리들의 부엌은 또 어떠한가.
거기에 화석연료의 남용․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비롯한 전기용품의 과다 사용․ 과도한 에어컨, 히터의 남용. 전기가 남아돌아 북한까지 도와주자고 하는 나라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전기 부족현상까지 나오니.
여기에 습관처럼 쓰는 일회용품은 우려를 넘어 걱정이 앞선다. <개인의 쓰레기양>이 너무 많다. <개인의 탄소 발자국>이 너무나 크다. 과다한 음식과 육류섭취. 육식동물을 키우기 위한 과도한 산림남벌과 동물들의 극악한 삶의 터전. 독약 같은 과자의 천국. 패스트푸드(fast food)의 지상낙원. 인류의 반은 비만으로 죽고 또 그 절반은 굶어죽는다고 하는데…. 선진국들이 먹고 버리는 귀한 음식물 쓰레기양이면 인류를 기아에서 구하고도 남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양과 가짓수는 너무 많다. 경전에서도 입으로 들어가면 분(糞)이 되는 것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살라고 한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동물이 인간처럼 다양하게 먹어 치우는 종(種)이 있겠는가. 거기에 또, 다른 동물들처럼 배만 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욕심을 위해서 끊임없이 저장을 하고 있지 않는가?
어디 그것뿐인가? 먹고 나기가 무섭게 각종 환경오염의 주범인 세제의 남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세제를 많이 먹은 민족이 우리란다. 여기에 이 더운 여름철 자연이 내려준 시원한 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은 좋은데, 여기에서도 오염의 고리는 끝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엄청난 세제들을 사용한다. 목욕탕 하수구로 빨려나가는 거품을 보면 마치 인간의 숨이 막혀가는 목줄기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이 단지, 이 초록별을 오염시키기 위해서만 태어난 존재는 아닐 텐데."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파열된 것 같은 오존층 파괴․ 자외선의 지나친 투과․ 바닷물의 수온상승과 적조 현상․태풍에 해일․지진…. <이상 징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불과 30분의 거리에서도 이렇게 극명한 기온차를 보이지 않겠는가?
수만 년 이 지구상에서 존재해 있던 나라들이 지금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수억 년 눈 시리게 보아왔던 빙하가 사라지고, 사막도 갈수록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너와 나 할 것 없이 막아야 한다. 부족하면 긴 동아줄로 칭칭 묶어 우리 인류가 서로 어깨를 겯고 잡고 있어야 한다.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이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치는데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나 과학자들도 인류가 이런 식으로 무자비한 질주만 계속한다면 불과 2~30년 안에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제 얄팍한 경제론자들의 천박한 경제론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그런 시대착오적인 행태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문제는 이제 그 누구도 팔짱만 끼고 볼 수 없는 그런 급박한 시점이 되어버렸다.
관료들도 경제니 소득향상이니 하면서 국민들의 지적수준을 과소평가 할 것이 아니라, 환경이 우선시 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경제를 옭죄면 나라가 경제가 파탄난다는 그런 말의 허구성은 이제 국민들이 먼저 그 길목을 지키며 알고 있다. 천안함의 안타까운 사고 이후로 갑자기 왜 이렇게 KBS에서는 안보홍보와 전쟁 시리즈물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수준도 환경을 뒷전에만 감추고 여름 장마를 기다려 우후죽순 격으로 폐수나 강물에 버려, 물고기를 때죽음 당하게 하는 그런 구태에서는 벗어나야 할 국제적인 품격을 지녀야 할 것이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선풍기 앞에 있어도 역시 무덥다. 지금 산 속은 참 시원할 텐데, 계곡 물소리는 더욱 시원할 것이다. 그 옛날 등목 하던 시절이 그립다. 등목, 등목하고 자꾸 되뇌니 이빨까지 시원해진다. 두레박에 물을 퍼내어 시원하게 한 번 끼얹어주던 할아버지의 거친 손길도 그립다. 지구가 이렇게 계속 뜨거워진다면, 우리가 대책 없이 환경을 더 오염시킨다면, 지구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경고가 칼날처럼 아프게 등허리를 타고 내린다.
밖으로 나오니 자연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몇 마리 남지 않은 매미들과 들꽃들이 잠 좀 자게 불 좀 꺼달라고 아우성이다. 밤새 잠 못 자고 울어대는 개구리들도 농약 때문에 그럴까? 우리 아이들도 아프다고 난리다. 알레르기에, 비염에. 고개 드니 산천도 벌겋게 패어 짓물을 흘러내리며 울고 있다. 뒷세대들은 얼마나 더 아플 것인가.
시골 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개울물이 시원하게 흘러간다. 그 소리만 들어도 등줄기에 땀이 식는다. 산길로 접어드니 시원한 폭포가 내리 꽂히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 옛날 우리 마을의 풍경이 이랬다. 산천의 풍경도 그랬다.
자연과 공생하지 못하면, 자연과 동물이 죽으며 인류도 끝이다. 다시 폭포가 소리치며 내리 꽂힌다. 우리나라 산천 어디를 가도, 이만한 개울쯤은, 폭포쯤은 다 있었다고. 소리치며, 소리치며 내리 꽂힌다.
<시인, 도보여행가 윤 재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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