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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vs. 부양, 문제는 어디에 쓸 것인가

재정정책에 관한 국제공조의 딜레마

등록|2010.07.06 16:05 수정|2010.07.06 17:25
지출을 계속할 것인가, 줄일 것인가

최근 독일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정지출 축소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위기의 재발을 우려하면서 경기부양책을 지속해 나갈 것을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과는 상반된 것이다. 이 두 글로벌 리더 그룹의 입장차는 최근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크게 부각되었고, 결과적으로 단일한 금융안정화 정책 틀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G20의 원래 목표는 불투명해졌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현실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리스에서 시작해 스페인으로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유로권의 존폐 여부마저 논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도 기존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기조를 유지할 순 없다. 재정지출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토론토 G20정상회의에서도 유럽 쪽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2013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개별적으로는 이미 예산축소가 시작되기도 했다. 영국은 2011년 GDP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 GDP의 11퍼센트를 웃도는 재정적자를 2015년까지 1퍼센트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2014년까지 GDP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예산을 줄이기로 결정했고, 스페인도 자진해서 GDP 대비 11퍼센트 수준인 재정적자를 2013년까지 3퍼센트 정도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현재 상황에서 재정지출 규모를 축소하면 더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매우 강력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G20정상회의 서한에서는 염려 수준의 언급만 있었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폴 크루그먼은 재정긴축을 강행하면 "제3의 공황이 닥칠 수 있다"며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2010.6.27). 크루그먼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73년에 시작해서 1896년까지 지속된 장기공황(The Long Depression)을 첫 번째 공황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30년대 대공황을 두 번째 공황으로 꼽을 수 있는데, 현재의 위기도 자칫 이 두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과거의 두 공황이 지속적인 침체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성장을 이루는 등 회복의 기미를 뚜렷이 보이기도 했다. 현재의 경기회복에 대해 너무 낙관적 태도를 취해 그 동안의 부양정책을 갑자기 철회하면 "1933년 경기회복기가 대공황의 끝이 아니었듯이, 현재까지 이룬 경기회복도 제3의 공황의 한 국면으로 후대 역사가들이 기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때맞춰 나온 미국경제의 악재들

크루그먼의 경고가 있은 뒤 최근 열흘 간 미국의 주식시장은 연속적 하락세를 보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연일 발표된 경제지표들이 기대보다 좋지 않았던 것이 주요했다. 실업률, 신규주택 매매량, 제조업지수, 소비자신뢰지수 등 여러 주요 지표들이 경기 회복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미국의 제조업지수와 소비자신뢰지수 변화 ⓒ 새사연




먼저 미국 공급자협회(ISM)가 발표하는 제조업지수의 경우 전월의 59.7에서 56.2로 떨어지면서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컨퍼런스보드에서 조사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의 경우는 전월 62.7에서 52.9로 16퍼센트 가까이 급락했다. 이런 변화는 고용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비록 미국의 실업률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고용자 수는 매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6월 들어서는 농업부문을 제외한 전체 고용자 수가 12만 5000명 줄어들었다. 실업률은 5월의 9.7퍼센트에서 9.5퍼센트로 조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경제활동인구가 65만 명 가량 감소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인구센서스 조사원으로 5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단기적으로 창출했는데, 이 중 22만 5000개 일자리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전체 경제활동인구도 줄어들고 고용자 수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약 34만 명이 인구센서스 조사인력으로 남아 있어 앞으로 계약이 만료되면 고용자 수는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시장도 침체되긴 마찬가지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5월 신규주택 판매 실적은 전월보다 32.7퍼센트 줄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로 18.3퍼센트 축소된 것으로 당초 시장에서는 50만 채 이상의 신규주택 판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훨씬 밑도는 30만 채만 판매되었다(경향신문, 2010.6.24). 이번 세계 경제위기가 미국의 주택시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지표는 투자심리가 여전히 위축되어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문제는 어디에 돈을 쓸 것인가 하는 점

유럽의 재정위기에 이어 나온 최근 경기회복세의 둔화는 더블 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재정지출을 줄여도 문제, 늘려도 문제다. 어느 쪽의 진단이 맞는지 상관없이 위기가 장기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서 양쪽 모두를 비판하면서, 다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제시하고 있어 이를 소개하도록 하겠다(Austerity alarm, 2010.7.1). 이코노미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양쪽 모두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키고 있다. 크루그먼의 조잡한 케인즈주의는 기업과 가계의 경제활동과 미래 재정수입과 지출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의 관계를 과소평가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의 기업들은 현재 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다. 그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소비수요가 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책적·금융적·재정적 불확실성과 좀 더 깊은 관계가 있다. 만약 정부가 이런 우려를 적절히 해소한다면 기업인들은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재정긴축을 옹호하는 쪽도 위험천만한 과장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1990년대에 캐나다와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경기부양에 성공한 사례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해당 국가들은 이자율을 급격히 낮출 수 있었고,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정책을 쓸 수 없다. 이미 이자는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수준이고, 잘 사는 나라들의 통화가치를 한꺼번에 낮출 수도 없다. 이런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재정긴축이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없다."

두 주장 모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더블 딥이 '온다'와 '안 온다'로 극명한 의견차를 보이며 예언을 하고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눈여겨 볼 주장이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를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일단의 전문가들은 크루그먼과 비슷하게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 주장을 펼치지만 그들은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보장체제를 강화하는 것과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를 강조한다(스티글리츠 유엔 보고서, The Stiglitz Report). 사회적 약자 계층과 개도국이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을 중심에 놓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설계한 위기 대응책이 금융부문의 변동성을 낮추고 경제 전체의 불안정성도 완화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성장의 회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재정지출을 늘리느냐 마느냐보다는 지출을 통해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재정지출 확대가 4대강 사업을 신속히 종결하는 것에 맞춰진다면 미래에 환경재앙과 더불어 경제적 재앙이 닥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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