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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62)

[우리 말에 마음쓰기 937] '전보의 존재는 말한다', '신경이 쓰이는 존재' 다듬기

등록|2010.07.06 17:03 수정|2010.07.06 17:03
ㄱ. 전보의 존재

.. 아내로부터 급히 상경 바란다는 내용의 전보가 도착한 것은 이튿날 아침이다. 전보의 존재는 말한다. 무진에 와서 그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가 선입관 때문이라고 ..  <곽아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아트북스,2009) 56쪽

'아내로부터'는 '아내한테서'로 다듬고, '급(急)히'는 '빨리'나 '서둘러'로 다듬으며, '상경(上京) 바란다는'은 '서울로 오라는'이나 '서울로 돌아오라는'으로 다듬습니다. "내용(內容)의 전보"는 "이야기가 담긴 전보"로 손질하고, "도착(到着)한 것은"은 "닿은 때는"이나 "온 때는"으로 손질합니다. "모든 행동(行動)과 사고(思考)가"는 "모든 몸가짐과 생각이"로 손봅니다. '선입관(先入觀)'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굳어진 생각'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은 토씨만 빼고는 거의 다 고쳐야 한다고 밝힌 셈인데, 저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글입니다. 이대로 둔다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대로 두어서 못 알아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글이라 할 때에, 저라면 "아내한테서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전보가 온 때는 이튿날 아침이다"와 같이 글을 씁니다. "전보는 이야기한다. 무진에 와서 그가 한 모든 일과 생각은 내가(그가)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라고"와 같이 뒷줄을 이어서 씁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 보기글 그대로 글을 쓸 터이고, 누군가는 통째로 고쳐서 새로 글을 쓰는 셈입니다. 글을 한 줄 쓸 때에 사람마다 글투가 다르다 할 수 있는 한편,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지식인 말투와 여느 사람 말투가 서로 엇갈린다 할 수 있습니다. 배운 사람 말투와 살아가는 사람 말투가 둘로 쪼개어져 있다 할 만합니다.

 ┌ 전보의 존재는 말한다
 │
 │→ 전보는 말한다
 │→ 전보에 적힌 글은 이렇다
 │→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

이 보기글을 쓴 사람이나 이 보기글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전보의 존재"를 비롯하여 "편지의 존재"라든지 "책의 존재"나 "쪽지의 존재"나 "일기의 존재"처럼도 이야기하리라 봅니다.

"그(내)가 손에 쥔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처럼 글을 적을 줄을 모른다고 할까요. "전보에 적힌 이야기는 이러하다"처럼 글을 쓸 생각을 아예 안 한다고 할까요.

문학이라는 옷을 걸치며 말이 말다움을 잃는 셈입니다. 글치레라는 이름으로 글이 글다움하고 동떨어지는 셈입니다. 소설이니 수필이니 시이니 뭐이니 하고 껍데기를 뒤집어쓰며 말이 말다움을 빛내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글을 꾸민다는 이름으로 글이 글다움을 내던지거나 고꾸라지는 노릇입니다.

 ┌ 전보에는 다음처럼 적혀 있다
 ├ 전보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다
 ├ 전보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읽어 보자
 └ …

부디 제자리를 찾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제길을 걷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발 제대로 제 넋을 차리며 제 꿈과 슬기를 돌보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가꾸면 좋겠습니다.

껍데기를 버리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겉치레를 걷어치우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랑과 지식조각은 고이 내려놓는 넋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이들하고 수수하게 나누면서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나한테까지 수수한 멋을 일깨우는 말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이웃과 동무하고 조촐하게 주고받으면서 이웃과 동무한테뿐 아니라 나한테까지 조촐한 맛을 깨우치는 글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고운 말을 찾고 고운 넋을 차리며 고운 삶을 일구는 고운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ㄴ. 신경이 쓰이는 존재

.. 이제까지도 고지식하고 진실한 게이조와 어쩐지 자포자기하고 있는 듯한 허무적인 무라이하고는 어딘가 성미가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혹시 오늘 내가 없는 사이에 나쓰에하고 무슨 일이 있었다면' ..  <미우라 아야코/맹사빈 옮김-빙점 (1)>(양우당,1983) 30쪽

'진실(眞實)한'은 '거짓없는'이나 '꾸밈없는'으로 다듬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는 '삶을 내려놓고'나 '삶을 내버리고'로 다듬습니다. '허무적(虛無的)인'은 '허전한'이나 '허전하고 쓸쓸한'이나 '덧없이 살아가는'으로 손보고, '성미(性味)'는 '마음'이나 '뜻'으로 손봅니다. "신경(神經)이 쓰이는"은 "마음이 쓰이는"으로 손질하고, '혹시(或是)'는 '설마'나 '자칫'으로 손질해 줍니다.

 ┌ 신경이 쓰이는 존재
 │
 │→ 마음이 쓰이는 사람
 │→ 마음이 쓰이는 친구
 │→ 마음이 쓰이는 녀석
 └ …

소설 <빙점>에 나오는 게이조와 나쓰에는 부부입니다. 무라이는 게이조하고 학교동무입니다. 게이죠와 무라이는 학생 때에 서로 나쓰에라는 사람을 좋아했고, 나쓰에라는 사람은 게이죠하고 혼인을 해서 아이를 둘 낳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라이라는 사람은 지난날부터 나쓰에를 좋아하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알거나 느끼고 있는 게이조는 못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걱정스러워 한달까 조마조마해 한달까, 자꾸자꾸 마음이 쓰입니다.

오랜 동무라고 하지만 자꾸 마음이 쓰이는 동무요, 당신하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이지만 그예 못미더워 하는 눈초리를 보낼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게이죠한테 무라이는 오랜 동무라기보다 주먹으로 한 방 갈기고픈 녀석이거나 놈팽이입니다. 조용한 집안에 웬 바람을 일으키나 싶은 몹쓸 놈입니다.

게이죠가 무라이라고 하는 동무한테 쓰는 마음은 '저 녀석이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 가득한 마음입니다. 못마땅해 하는 마음이요 내키지 않는 마음입니다. 달갑지 않은 마음이고 싫은 마음입니다.

그래, "어쩐지 싫은 녀석이었다"라든지 "어쩐지 짜증스러운 놈이었다"라든지 "어쩐지 꼴 보기 싫은 녀석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픈 마음이구나 싶습니다.

 ┌ 그러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 그러면서도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 그러면서도 어쩐지 못마땅했다
 └ …

서로서로 좀더 좋은 쪽으로 마음을 쓴다든지, 서로서로 더욱 너른 마음으로 마음을 열며 마주한다면 좋을 테지만, 이렇게 살아가기는 좀처럼 어려운 듯합니다. 다른 이가 손에 쥔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와 네가 마음에 아무런 아쉬움이나 얽매임이 없이 곱고 착하며 참된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제 우물에 갇힌 채 생각을 하고 마음을 들이니 못마땅할 일이 불거집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맞은편 자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으니 다 같이 힘겹고 짜증이 불거집니다. 소설에 나오는 게이조라는 이는 제 오랜 동무 무라이가 꽤나 짜증스럽고 싫을밖에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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