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km 하이킹 코스, 지구 한 바퀴보다 길다
[스위스 올레 여행기③] 체르마트와 '알프스의 여왕' 마터호른
▲ 스위스를 찾은 관광객들이 체르마트(Zermatt)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산간의 급류와 계곡, 풍광 등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 유성호
체르마트가 속한 발레주는 산악국가 스위스를 대표하는 곳이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산들이 47개나 된다. 마터호른(4478m)을 비롯해 몬테로사(Monte Rosa 4634m), 돔(Dom 4545m), 융프라우(Junfrau 4158m) 등이 발레주에 속해 있거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런 탓에 "발레주에 들르지 않고서 스위스를 가봤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브베(Vevey)에서 출발해 비스프(Visp)를 거쳐 체르마트로 가는 열차를 탔다. 비스프까지는 국철을 탔고, 이곳에서 마터호른 고타르드 철도(MGB, Matterhorn Gotthard Bahn)를 이용해 체르마트까지 갔다.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탓에 기차 속도는 느렸다. 하긴, 체르마트를 발착점으로 하는 총길이 300km의 빙하특급도 '세계에서 제일 느린 특급열차'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니.
▲ 체르마트 도착 첫 날, 마터비스파 강 위의 다리에서 내려다 본 체르마트 시내 야경. ⓒ 유성호
개인 차량으로 체르마트에 가는 사람들은 종점 바로 전 테쉬(Täsch)역에서 멈춰야 한다. 그곳 주차장에 차량을 맡기고 테쉬~체르마트 셔틀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체르마트에서는 경찰차나 공사차량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휘발유와 경유 차량의 운행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 정도의 불편은 각자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착지인 체르마트역 플랫폼 벽면에 'Välkommen, Bienvenue, Taggwinscht, 歡迎, 환영합니다'라는 각 나라말로 쓰여진 환영 인사가 방문객들을 반긴다. 역 앞에는 호텔·리조트에서 운행하는 미니 봉고버스처럼 생긴 전기택시들이 관광객들을 태우느라 분주하다. 체르마트에는 반호프 거리와 마터비스파(Mattervispa) 강 주변에 샬레풍의 호텔과 리조트가 줄 지어 늘어서 있다. 건물 발코니에는 유럽에서 관상용 화분 재배로 흔히 쓰이는 붉은색의 제라늄 꽃으로 장식한 곳들도 눈에 많이 띈다.
등산열차 타고 해발 3000m 넘는 전망대에 오르다
체르마트의 해발고도는 1620m. 우리나라 덕유산 정상쯤에 해당된다. 공기가 맑고 건조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친 뒤 마터비스파 강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체르마트 시내에서 마터호른을 한 눈에 보기 가장 좋은 곳은 반호프 거리 서쪽 끝에 위치한 마터비스파 강 위의 다리다. 특히 마터호른에 햇살이 비치는 오전 시간대가 좋다. 다리 위에 오르니 날씬한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마터호른이 위용을 자랑한다. 산 중턱에 살짝 걸쳐진 구름을 빼고는 화창한 날씨다.
▲ 체르마트 시내에서 바라다본 마터호른. 피라미드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 유성호
▲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등산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만난 양떼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 유성호
'스위스 알프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터호른(4477m)은 그랑드 조라스(Les Grandes Jorasses 4208m), 아이거(Eiger 3970m)와 함께 유럽 알프스의 3대 북벽으로 이름난 곳이다. '클라이머들의 공동묘지'라 불리는 아이거 북벽은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영화 <노스페이스>(North Face)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오늘 취재팀의 주요 일정은 산악 하이킹이다. 등산 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3130m)에 오른 뒤 다시금 리펠알프(Riffelalp 2211m)로 내려와 체르마트까지 약 5.6km 정도를 걷는 일정이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행 등산 열차는 한두 량짜리 미니 기차다. 마터호른 고타르드 철도도 그랬지만, 이번 등산 열차도 창문을 열어 바깥 경치를 잘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고, 산이 스위스 관광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산악 교통기관이 잘 발달돼 있다. 등산 철도는 융프라우요흐와 리기산을 비롯해 전국 10곳의 산에 개통돼 있다. 등산 철도는 선로 사이에 또 하나의 톱니바퀴식 궤도를 깔아 놓은 게 특징이다. 비탈길 급경사에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놓은 렉 레일 방식이다. 등산 철도는 독일어로는 베르크반(Bergbahn), 프랑스어로는 슈맹 드 페르 드 몽타뉴(chemin de fer de montagne)라고 부른다.
등산 열차가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면 갈수록 눈 쌓인 알프스의 산맥들이 더욱 가까워지고, 산 아래 마을의 집들은 성냥갑처럼 작아진다. 전망대에 가까워지자 주변은 온통 눈밭이다. 계절은 초여름인 6월이지만 바깥은 의심할 여지없는 겨울 풍경이다. 40분 가량 산악 열차를 타고 도착한 고르너그라트역.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발을 디딘 건 처음이다. 관광청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 스벤 하우저(Sven Hauser)가 전망대역에서 우리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산 사이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고르너 빙하(Gorner gletscher)가 보인다. 앞을 내다보면 마터호른 동쪽벽,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인 클라인 마터호른(3883m), 브라이트호른(4164m), 리스캄(4527m), 그리고 이탈리아와 맞닿아 있는 스위스 최고봉 몬테로사(4634m) 등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장관이다.
▲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플란다스에 등장하는 세인트버나드가 목에 포도주통을 걸고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유성호
▲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발고도 4634m인 듀포스피체(Dufourspitze)와 고르너 빙하. 고르너 빙하는 스위스에서 알레치 빙하 다음으로 크다. ⓒ 유성호
▲ 해발고도 2222m에 위치한 리펠알프 리조트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성 호텔이다.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놀이터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한기
산악 하이킹을 하기 위해 고르너그라트역에서 열차를 타고 리펠알프까지 내려왔다. 중간 목초지에는 방목하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다. 역에 도착하자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인 리펠알프 리조트(2222m) 안내판이 눈에 띈다. 또다른 안내 표지판을 보니 체르마트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1시간40분. 중간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의 놀이터?
걸은 지 10분 정도 지나자 리펠알프 리조트가 나타났다. 그 옆 푸른 풀밭에는 리조트 손님들을 위한 아이들 놀이터도 있었다. 속으로 '여기가 해발 2200m가 넘는 곳이니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아이들 놀이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5분쯤 더 걷자 샬레풍으로 지어진 2층 목조건물이 나타났다. 점심식사를 할 알피타(Alphitta) 레스토랑이다. 입구에는 긴 깃대 위에 걸어놓은 스위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스위스 여행 정보 책자를 보니 '멀리서 봐도 국기가 눈에 띄게 높게 매단 것은 레스토랑 영업중이니 와서 식사를 하라'는 사인이기도 하단다.
붉은 바탕에 하얀 십자로 돼 있는 스위스 국기는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13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십자 표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슈비츠(Schwyz)주 병사가 독립을 목표로 피의 색깔인 붉은 깃발에 하얀 십자를 붙였던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깃발은 16세기 들어와 스위스 연방의 국기로 채택돼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기가 정사각형인 것도 독특하고, 흰 바탕에 붉은 십자의 국제 적십자 마크의 기원이 된 점도 흥미롭다.
스위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딜가나 손쉽게 국기를 볼 수 있다. 관공서나 기업, 호텔이나 상가는 물론이고 개인 주택에도 심심찮게 국기를 걸어놓는다. 기념품점에 가면 태반이 국기로 디자인된 제품이다. 낙농업을 상징하는 젖소 캐릭터에까지 국기 디자인이 접목된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 국기가 마치 인기 있는 팬시 상품처럼 보인다. 스위스 사람들의 깃발 사랑은 유별나다. 국기보다는 덜 하지만 각 주(canton)의 깃발도 자주 눈에 띈다. 주로 국기와 함께 나란히 걸어놓는다.
▲ 산악 하이킹 도중에 만난 알프스 마못(Alpine marmot). 네 다리가 짧은 다람쥐과 동물인데, 발톱이 크고 단단해 평지의 바위가 많은 곳이나 평원에 터널을 파고 산다. ⓒ 유성호
▲ 기념품점에 가면 태반이 국기로 디자인된 제품이다. 낙농업을 상징하는 젖소 캐릭터 상품에까지 국기 디자인이 접목된다. 스위스 국기가 마치 인기있는 팬시 상품처럼 보인다. ⓒ 유성호
▲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알피타 레스토랑. 긴 깃대봉에 매달린 붉은 바탕, 하얀 십자의 스위스 국기가 펄럭인다. ⓒ 이한기
한라산 정상에서 여유롭게 맥주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알피타 레스토랑의 해발고도가 한라산 정상보다 높은 2000m 이상이니 마치 한라산 정상에서 식사한다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그렇듯 스위스에서도 식사 때마다 생수를 시킨다. 많이 찾는 브랜드는 헤니츠(HENNIEZ). 스위스 최대 미네랄 생산기업인 헤니츠는 2007년 네슬레에 인수됐다. 스위스 사람들은 우리와는 달리 탄산가스가 들어산 생수도 즐겨 찾는다. 주문은 쉽다. 탄산가스를 원하면 '위드 개스(with gas)', 일반생수를 원하면 '위드아웃 개스(without gas)'.
리펠알프~체르마트 '쉬엄 쉬엄' 하이킹
스위스 알프스 중턱에서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 안 돼 큰 다람쥐 같은 동물을 만났다. 마못(marmot)이다. 네 다리가 짧은 다람쥐과 동물인데, 발톱이 크고 단단해 평지의 바위가 많은 곳이나 평원에 터널을 파고 산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알프스 고산지대에 사는 어두운 갈색 빛깔의 알프스 마못(Alpine marmot)이었다.
▲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등산로에서 만난 가족 등산객. 스위스 어느 곳에서나 노르딕 워킹 폴을 쥐고 기을 걷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유성호
▲ 체르마트로 내려오는 산악 하이킹 도중에 만난 고르너(Gorner) 협곡. 발 아래로는 빙하 녹은 물이 흐른다. ⓒ 유성호
▲ 등산객들이 고르너(Gorner) 협곡 매표소 앞에서 등산지도를 보며 하이킹 코스를 점검하고 있다. ⓒ 유성호
걷다보니 초원 같은 대지, 작은 계곡, 울창한 산림이 이어진다. 그 중간 중간에 샬레풍 목조건물들이 눈에 띈다. 점심식사 후 50분 정도 걸어내려오자 확 트인 대지에 노란 민들레꽃이 만발했다. 다시 이어진 산림. 가벼운 등산 차림의 스위스 사람들이 한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약간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눈 앞에 큰 안내판이 나타났다. 조금만 더 가면 고르너 협곡(Gorner Gorge)이 나온다는 것이다.
철제와 목조로 만든 계단으로 내려가자 협곡 사이로 거대한 물줄기가 보인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놓은 기기묘묘한 암벽 사이에 놓여진 나무 다리를 걸었다. 발 아래로는 빙하가 녹은 회색 물줄기가 협곡을 따라 흘러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10여 분만에 고르너 협곡을 빠져나오자 매표소가 나타났다. 성인 요금은 4프랑. 그렇다면 요금 정산은? 올라가는 사람이나 내려가는 사람이나 그냥 매표소에서 요금을 내면 된단다. 선불이냐, 후불이냐의 차이인데 입장료 후불은 처음 경험해 봤다.
하이킹에 나선 지 3시간쯤 지났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걸었던 시간은 2시간 안팎. 체르마트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터비스파 강이 나타났다. 체르마트 서쪽 끝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평지다. 강 건너편에 한 청년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달고, 줄타기를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이 그 청년에게 쏠렸다. 족히 10m는 돼보이는 거리인데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건너는 걸 보니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다.
스위스의 하이킹 코스를 모두 합치면 약 5만km에 이른다.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다. 지난달 말 개장한 추자도 올레까지 포함해 현재 21개 코스까지 만들어진 제주올레의 전체 길이가 약 343km이니, 단순히 거리로만 비교하자면 제주올레가 146개쯤 있는 셈이다. 하이킹에 적합한 계절은 여름으로 주로 6월초부터 9월말까지인데, 표고가 높은 곳은 7월초부터 9월초까지로 짧아진다. 일반적인 하이킹 코스는 '반더벡(wanderweg)'으로 불리우며 노란색 표지로 돼 있고, 상급자를 위한 알프스 하이킹 코스인 '베르크벡(Bergweg)'은 빨간 줄이 들어간 노란색 표지로 구별돼 있다. 취재팀이 걸었던 하이킹 코스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반더벡'이었다.
▲ 일반적인 하이킹 코스는 '반더벡(wanderweg)'으로 불리우며 노란색 표지로 돼 있고, 상급자를 위한 알프스 하이킹 코스인 '베르크벡(Bergweg)'은 빨간 줄이 들어간 노란색 표지로 구별돼 있다. ⓒ 유성호
▲ 체르마트에 위치한 마터호른 박물관(Matterhorn Museum)에서 한 어린아이가 버튼을 눌러 마터호른을 오르는 등산로를 보고 있다. ⓒ 유성호
▲ 체르마트 시내 교회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 마터호른을 오르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 유성호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를 타기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우선 마터호른 박물관에 들렀다. 이곳에는 1865년 마터호른 등정에 처음 성공한 영국 등반대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 일행이 조난 사고를 당했을 당시 부러진 자일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마터호른 역사에 관한 자료도 볼 수 있다. 박물관 근처에는 마터호른에 오르다가 조난당해 사망한 등산가들이 묻힌 묘지(Friedhof)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그 묘지 앞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등산이란 말 대신 '산에 업힌다'고 말한다. 등산가들의 묘지를 보고 있자니, 살아서는 마터호른에 업히고 죽어서는 체르마트에 안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터호른에서 조난 당한 등산가, 체르마트에 묻히다
체르마트 중심가인 반호프 거리 주변의 골목길에 들어서면 잘 보존된 발레주의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다. 건물 하단부는 돌로 안정적인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 이층 규모로 세운 목조 건물이다. 특이한 것은 건물을 지탱하는 하단부 4개의 기둥 위쪽에 둥근 원반 형태의 나무나 돌을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체르마트 관광청 직원 스벤의 설명에 따르면, 곡물창고로 쓰인 건물에 쥐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놓은 장치라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마터호른과 호흡하고 있는 전통 가옥과 골목길을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드라마 세트장을 꾸며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침과는 달리 오후가 되자 마터호른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구름 뒤에 산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감쪽 같이 사라졌다. 마음 속으로 마터호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 체르마트를 떠날 시간. 브리그(Brig)를 거쳐 리더알프 미테(Riederalp Mitte)에 있는 조그만 산간 마을로 간다. 스위스의 유명 인사인 아트 퓌러(ART Furrer)가 운영하는 호텔에 묵고, 이튿날 아트 퓌러와 함께 알프스 최대 규모라는 알레치 빙하(Aletsch Gletscher) 옆 산길을 하이킹 할 계획이다. 일정표에는 오전 5시30분까지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6시에 출발하는 걸로 나와 있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범생이 같은 '스위스 타임'은 대중교통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 아트 퓌러(ART Furrer)와 함께 한 알레치 빙하(Aletsch Gletscher) 옆 숲길 하이킹 이야기는 다음번 '스위스 올레 여행기' 네번째 편에서 소개합니다.
▲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의 풍광을 망원경으로 감상하고 있는 등산객들. ⓒ 유성호
▲ 등산객들이 노르딕 워킹 폴에 의지하며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 유성호
▲ 마터호른(Matterhorn)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가린 채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냈다. ⓒ 유성호
▲ 체르마트가 속한 발레주는 산악국가 스위스를 대표하는 곳이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산들이 47개나 된다. 마터호른(4478m)을 비롯해 몬테로사(Monte Rosa 4634m), 돔(Dom 4545m), 융프라우(Junfrau 4158m) 등이 발레주에 속해 있거나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스위스정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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