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풀뿌리 자치민주주의사회가 우리의 유토피아

[서평] 루이스 펌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

등록|2010.07.07 18:41 수정|2010.07.07 18:41

▲ <유토피아 이야기> 겉그림 ⓒ 텍스트


유토피아, 그것은 본래 '어디에도 없는 곳(ou-topos)'과 '가장 좋은 곳(eu-topos)'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지만, 보통 앞의 것으로 이해해 왔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토피안들과 그것을 갈구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실제 그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있다면 피안의 세계, 곧 도피적인 유토피아뿐이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런 세계가 있다면 결코 꿈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좀 더 나은 이상향을 동경해 왔다. 더욱이 그들은 현존하는 세계보다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꾼 것이지, 완전히 전혀 다른 세계를 꿈꾼 건 아니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고대를 거쳐 중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상화된 사회를 동경해 온 게 사실이다. 부족동맹국에서 왕권중심국가로, 지주와 산업사회의 계급화로, 그리고 자유와 민주사회로 거듭 발전해 온 이상향의 단계가 그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정부수립에서부터 독재정치에 항거하여 자유와 민주를 쟁취한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토록 갈망한 것들을 이뤄냈다고 해서 유토피아가 멈춰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루이스 펌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는 고전에서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는 여러 유토피아론자들과 그 연구물에 관한 총체적인 개괄서다. 이 책 전반부에서는 플라톤의 <국가>와 모어의 <유토피아>로부터 웰스의 <현대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고전으로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는 여러 유토피아 문헌을 살펴보고, 후반부에서는 컨트리하우스(소비주의)와 코크타운(산업주의)에 맞물린 거대도시의 어두운 면을 해소할 수 있는 대응책을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멈퍼드 나름의 유토피아도 설명해 주고 있다.

멈퍼드는 무엇보다도 플라톤의 <국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에 불어 닥친 사회적인 붕괴기에 나타난 산물임을 밝히고 있고, 그로부터 2천 년 뒤에 나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무질서와 폭력을 바탕으로 나온 이상향의 작품임을 일깨운다. 또 100년이 지나 나온 안드레의 <기독교도시>나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캄파넬라는 <태양의 도시>는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이상사회에 대한 꿈을 그린 작품임을 알려 준다.

이어 프랑스 혁명기에 인간의 평등을 부르짖는 바뵈프와 인간의 품성 개조를 주장한 세이, 그리고 산업혁명 뒤 산업 공동체를 생각한 오언, 생시몽, 푸리에는 생산능력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이상사회를 건설해 보고자 했음을 밝힌다. 이는 유럽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는데 푸리에의 팔랑주를 모방한 촌락공동체의 형태가 그것임을 일깨워 준다.

중요한 건 유토피아 사회를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다방면의 전문가라는 사실이다. 플라톤이나 모어도 그렇고, 캄파넬라도 베이컨처럼 위대한 역사학자요 과학자요 건축가요 문학가라는 사실이다. 이는 이 책을 쓴 멈퍼드 마찬가지다. 그는 도시비평가에다 건축, 기술, 문학, 정치학, 사회학, 윤리학 등 모든 것을 망라하여 미국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현대에 이르러 나타나는 여러 소비주의와 산업주의에 맞물린 도시의 어두운 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문제점에만 익숙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과 예술의 통합과 그것의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는 우리나라가 좀 더 이상화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위 즉 정부가 바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교육이나 복지를 시민과 지역 단체에 양보해야 하고, 정부는 스스로의 역할을 간접적인 자금 원조나 시설의 정비에 한정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국가나 정부가 위로부터의 통제나 강제를 강요하기 보다는 국민과 지역 단체에 위임할 것을 주장한 것과 같다. 언제까지나 고대의 철권통치기에 젖어 있을 게 아니라 의식수준이 높은 국민 스스로에게 교육과 보육의 자율권을 맡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그만큼 풀뿌리 자치민주주의 사회를 일궈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화된 유토피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서지정보를 그림으로 올릴 수 없어서 여기에 몇 자 옮겨 적습니다. 지은이 루이스 펌퍼드, 〈유토피아 이야기〉, 옮긴이 박홍규, 출판사 텍스트, 2010년 6월23일 발행, 책값 14,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