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사는 중국인? 화장실 출입금지예요"
[이란 여행기 52] 항구도시 반다라아바스
▲ 키쉬섬 최대 쇼핑몰에 입점한 BYC. 이곳은 부자들이 주 고객층인 걸로 보아 이 상표도 이란에서 최고급 내의로 대접받는 듯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의 좋은 물건들은 우리나라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꽤 후한 점수를 주었다. ⓒ 김은주
이란 부자들의 휴양지 키쉬섬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이란의 중앙에 위치한 야즈드에서 최남단 항구도시 반다라아바스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하루가 꼬박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하루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버스는 밤새 사막을 달려 마침내 반다라아바스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는 낯선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이란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테헤란을 출발해서 야즈드, 쉬라즈, 이스파한을 거쳐 오면서 만난 이란인들은 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콧날을 한 백인에 가까운 모습이라면 이들은 흑인과 더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건조한 사막도시에서 출발한 우리에게 이곳 반다라아바스는 새로웠습니다. 항구도시의 비릿한 바다 냄새와 갑자기 더워진 날씨, 그리고 사람들의 다른 모습은 마치 다른 나라로 들어선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서 착각을 일으킬 만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란인은 아리아족인데 이곳 반다라아바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랍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전에 이곳 반다라아바스는 아랍인의 땅이었기에 이곳에 유독 아랍인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색다른 이란, 반다라아바스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란인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갖고 친절했다면 이곳에서는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커피를 사러갔을 때도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들 하나 같이 우리에게 '차이나'냐고 물었고, 야유조로 '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했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보건소에 가서 아랍 여자에게 박대당하고는 이들의 우리에 대한 평가를 조금 깨닫게 됐습니다.
보건소에서 화장실을 찾으니 입구에 앉아있던 여자가 '노(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섭섭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여자가 곧 따라 나오더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태도가 바뀐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처음에 우리를 문전박대했던 이유는 중국에서 온 못 사는 사람들로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했기 때문이었지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에게 '차이나'니 '친'이니 하는 물음 속에는 이런 식의 무시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거대 중국, 미래에는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중국이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습니다.
이곳에서만 그런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인솔자가 이집트 가서 스카프를 살 때 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두 종류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장사가 하는 말이, 안 좋은 건 중국제니까 안 사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중국제는 세계에서 질 나쁜 물건의 대명사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중국 물건에 대한 이런 이미지가 중국인까지 좀 못 사는 나라의 초라한 국민으로 몰고 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우린 우리 기업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의 물건이 이란에서 고급 대접을 받기에 한국에서 왔다면 다 잘사는 나라 국민인 줄 알고 대접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국가 이미지나 국민 이미지가 기업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 우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 취급을 받은 이유는, 이곳 은 이란의 다른 지역보다 외부인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중동의 뉴욕이라고 할 수 있는 두바이를 가기 위해서는 이곳 반다라아바스에서 출발해야 하기에 이곳은 두바이와 왕래가 잦은 곳이라 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눈이 높아진 그들에게 배낭여행으로 몰골이 초라해지고 또 버스에서 밤을 새느라 다소 부스스해진 우리 몰골은 당연히 '메인드 인 차이나'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반다라아바스에서 사먹은 '피쉬 샌드위치' 생선의 수분을 제거하고 맵게 양념했는데 우리 입맛에 맞았다. ⓒ 김은주
반다라아바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또 세 시간을 달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배 출발 시간까지 두 시간의 여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항만회사 직원이 소개해주는 식당으로 갔는데 가격이 만만찮았습니다. 허름한 식당인데 생선요리가 6000토만이라고 했습니다. 이란의 최고급 음식점도 4000토만 하는데 비해서 지나치게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나와서 일부는 슈퍼에서 요거트로 끼니를 때우고 우리는 가까운 샌드위치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 식물성 샌드위치인 팔라페인데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게의 주 메뉴인 생선 샌드위치를 시켰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먹은 샌드위치 가게의 '피시 샌드위치'는 생선의 물기를 완전히 빼고 매콤하게 양념해서 비린내가 전혀 없고 우리 입맛에 맞았습니다. 이 샌드위치 가게는 키쉬섬 가는 항만회사 옆에 있는데 키쉬섬으로 가는 사람은 사먹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장을 보러 돌아다녔습니다. 키쉬섬은 부자들의 휴양지라 물가가 내륙보다 두 배는 비싸다고 했습니다. 반다라아바스에서 과일이나 채소, 먹을 걸 준비하는 게 돈을 절약할 것 같아 채소가게서 사과 한 봉지, 감자 한 봉지, 양배추 한 통, 마늘 10개, 양파 5개를 샀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샀는지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짐에 이런 게 보태지니까 정말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배를 탈 때까지 이 무게를 감당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마침내 배에 올랐습니다. 배는 의자도 푹신하고 실내도 나름대로 깨끗하고 짐칸은 따로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세 시간 배로 가야 합니다. 그때 내 뒤에 앉아 있던 두 살짜리 꼬마가 나를 때렸습니다. 이 녀석은 할머니와 함께 탔는데 지루함을 돌아다니면서 나를 비롯한 자신의 관심을 끄는 사람을 때리는 것으로 푸는 것 같았습니다. 난 좀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팔이 나중까지 좀 아팠습니다.
배가 키쉬섬에 도착하고 이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국수속이 필요했습니다. 공항으로 가서 입국수속을 밟았습니다. 이란 북부에서 온 우리가 입은 옷은 겨울옷인데 공항에서부터 덥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머리에 쓴 머플러가 너무 덥게 여겨져서 벗어 던지고 싶었습니다. 목덜미를 감싸고 있는 머플러가 너무 성가셨습니다.
공항으로 한국인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가 우리가 앞으로 이틀간 묵을 방을 예약해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곳 키쉬섬에 정착한지는 3년 정도 됐고, 이란인에게서 이란어를 배워 현지어를 사용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은 그의 가족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길 이곳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꽤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한국인임을 입증 시키기 위해서는 쇼핑몰을 가든지 음식점을 가든지 해변으로 가든지 좀 차려입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말은 진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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