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남산에 올라가지마!"
"왜?"
"거기서 살인사건이 났대!"
"뭐? 에이 거짓말!"
"진짜라니까! 엄마는 하나뿐인 딸 말을 안 믿어?"
"......."
아이의 뜬금없는 말에 놀랐다.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사는 작은 시골지역에서 '살인'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면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을텐데 근래 들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출처없는 헛소문···불안해하는 딸 아이
우리가 사는 곳은 인구 7만 명이 채 안 되는 전남 화순군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화순읍에 산다. 여느 지역과 달리 화순은 인구구성비율이 특이한 곳이다.
전체 7만여 명의 인구 중에 절반 이상인 4만 2천여 명이 화순읍에 산다. 그리고 화순읍 2만 8천여 세대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 세대가 1만 2천 세대다. 그리고 한곳에 거의 몰려 있다. 그러다 보니 4만 명이 사는 읍 지역이라고 해도 그리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사건, 특히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도시와 달리 한적한 농촌지역이기에 그리 큰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 마련이다.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아이가 무슨 말을 듣고 왔기에 이러는지. 물론 아이가 전한 말들은 출처 없는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화순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의 말에 의하면 사건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태극전사들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있던 지난달 23일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날 화순읍 남산에서 2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그 여성을 살해한 후 머리와 몸을 분리해 몸은 바닥에 두고 머리는 인근 나무 위에 매달아 놨단다. 사건발생 후 인근에 사는 주민이 산책을 나왔다가 퀴퀴한 냄새를 따라가서 사건현장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아홉 살배기 여자아이가 괴한에게 유괴된 후 살해돼 남산에 유기됐고, 산책을 나왔던 주민이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는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딸 아이와 (딸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그 일은 소위 '알만한 아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란다.
그리고 두 사건의 범인이 같다며 연쇄살인사건이라나 어쩐다나... 참내.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있잖아, 그런 큰 사건이 일어나면, 특히나 어린이가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거든.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신문이나 방송을 봐도 그런 뉴스는 나오지 않더라.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니?"
그리고 딸 아이에게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경찰서에 아는 분을 통해 확인까지 시켜줬다. 경찰에 따르면, 역시나 화순에서는 최근에 남산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일이 없단다. 그리고 경찰은 아이들 사이에서 근거없는 헛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경찰서에 확인했는데 그런 일이 없다더라고 말해주니 아이는 "진짜 있었던 일"이라며 "친구들도 다 아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녀석이었다. 둘째 아이까지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화순에서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누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아니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심각했다. 남산에는 가서는 안된다며 특히나 밤늦게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남산은 화순읍의 중앙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아파트 단지에서 화순읍에 위치한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산이다. 군민회관도 남산에 있다).
특히나 여자아이들은 "혹시 우리도 (남산에서의 그들처럼) 죽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감이 만들어낸 헛소문일 뿐
사실이 아닌 일에도 사실인 양 긴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편 우습기도 하고 한편 한숨이 나왔다. 아마도 아이들 사이의 헛소문은 얼마 전 '나영이'라는 가명으로 잘 알려진 조두순 사건, 그리고 각종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는 연이은 성폭행 사건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아이들 사이의 헛소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이 사회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구나 생각하니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이들 스스로가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을 만들어 내면서 불안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괴소문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작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짐을.
행여 그런 소문이 돌더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어른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아이들 스스로가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정녕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일는지···.
그리고 밤늦게까지 학교며 학원에 있다가 늦은 시간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환한 큰길로만 다니고, 누가 엄마 아빠를 안다면서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
한적한 길에서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힘들어 보여도 아는 분이 아니면 도우려고 하지 말고, 혼자 걷는데 누가 따라오는 눈치가 보이면 아무집(상가든)으로나 들어가 도와 달라고 말하고 엄마 아빠에게 전화해라.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모르는 사람이 타고 있으면 타지 말고,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데 택배나 우체부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 다음에 오라고 말하고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언제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집에 있든 집 밖에 있든 아이는 물론 부모들도 '우리 아이들은 사람으로부터 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 수는 있을까?
"왜?"
"거기서 살인사건이 났대!"
"뭐? 에이 거짓말!"
"진짜라니까! 엄마는 하나뿐인 딸 말을 안 믿어?"
"......."
아이의 뜬금없는 말에 놀랐다.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사는 작은 시골지역에서 '살인'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면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을텐데 근래 들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인구 7만 명이 채 안 되는 전남 화순군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화순읍에 산다. 여느 지역과 달리 화순은 인구구성비율이 특이한 곳이다.
전체 7만여 명의 인구 중에 절반 이상인 4만 2천여 명이 화순읍에 산다. 그리고 화순읍 2만 8천여 세대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 세대가 1만 2천 세대다. 그리고 한곳에 거의 몰려 있다. 그러다 보니 4만 명이 사는 읍 지역이라고 해도 그리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사건, 특히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도시와 달리 한적한 농촌지역이기에 그리 큰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 마련이다.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아이가 무슨 말을 듣고 왔기에 이러는지. 물론 아이가 전한 말들은 출처 없는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화순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의 말에 의하면 사건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태극전사들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있던 지난달 23일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날 화순읍 남산에서 2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범인은 그 여성을 살해한 후 머리와 몸을 분리해 몸은 바닥에 두고 머리는 인근 나무 위에 매달아 놨단다. 사건발생 후 인근에 사는 주민이 산책을 나왔다가 퀴퀴한 냄새를 따라가서 사건현장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아홉 살배기 여자아이가 괴한에게 유괴된 후 살해돼 남산에 유기됐고, 산책을 나왔던 주민이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는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딸 아이와 (딸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그 일은 소위 '알만한 아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란다.
그리고 두 사건의 범인이 같다며 연쇄살인사건이라나 어쩐다나... 참내.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있잖아, 그런 큰 사건이 일어나면, 특히나 어린이가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거든.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신문이나 방송을 봐도 그런 뉴스는 나오지 않더라.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니?"
그리고 딸 아이에게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경찰서에 아는 분을 통해 확인까지 시켜줬다. 경찰에 따르면, 역시나 화순에서는 최근에 남산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일이 없단다. 그리고 경찰은 아이들 사이에서 근거없는 헛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경찰서에 확인했는데 그런 일이 없다더라고 말해주니 아이는 "진짜 있었던 일"이라며 "친구들도 다 아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녀석이었다. 둘째 아이까지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화순에서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누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아니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심각했다. 남산에는 가서는 안된다며 특히나 밤늦게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남산은 화순읍의 중앙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아파트 단지에서 화순읍에 위치한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산이다. 군민회관도 남산에 있다).
특히나 여자아이들은 "혹시 우리도 (남산에서의 그들처럼) 죽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감이 만들어낸 헛소문일 뿐
사실이 아닌 일에도 사실인 양 긴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편 우습기도 하고 한편 한숨이 나왔다. 아마도 아이들 사이의 헛소문은 얼마 전 '나영이'라는 가명으로 잘 알려진 조두순 사건, 그리고 각종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는 연이은 성폭행 사건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아이들 사이의 헛소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아이들은 이 사회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구나 생각하니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이들 스스로가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을 만들어 내면서 불안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괴소문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작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짐을.
행여 그런 소문이 돌더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어른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아이들 스스로가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정녕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일는지···.
그리고 밤늦게까지 학교며 학원에 있다가 늦은 시간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환한 큰길로만 다니고, 누가 엄마 아빠를 안다면서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
한적한 길에서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힘들어 보여도 아는 분이 아니면 도우려고 하지 말고, 혼자 걷는데 누가 따라오는 눈치가 보이면 아무집(상가든)으로나 들어가 도와 달라고 말하고 엄마 아빠에게 전화해라.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려는데 모르는 사람이 타고 있으면 타지 말고,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데 택배나 우체부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 다음에 오라고 말하고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언제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집에 있든 집 밖에 있든 아이는 물론 부모들도 '우리 아이들은 사람으로부터 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 수는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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