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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논공행상, 그 진실은?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의 논공행상' 테마 전시회

등록|2010.07.13 18:49 수정|2010.07.13 18:49

▲ 태평회맹도(보물 제668-3호)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한 공을 세운 호성공과 전공을 세운 선무공신 등이 모여 계회를 여는 장면이 소개돼 있다. ⓒ 진주박물관

탁월한 군사 지식으로 무관 이순신을 후원해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고 승리로 이끌었던 성리학의 대가 유성룡. 왜란당시 병조판서로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동시에 왕실 근위대를 정비하며 많은 공적을 세운 이항복.

그들이 임진왜란 직후 자신들에게 내려진 공신 칭호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투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의병과 장수들의 공적은 소홀히 하면서 자신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귀족들에게는 공신을 책훈했던 선조. 왕권강화를 위해 이처럼 명분 없는 논공행상을 했던 선조의 비밀이 국립진주박물관이 준비한 '임진왜란의 논공행상' 테마전시로 관람객들에게 알려진다.

국립진주박물관은 논공행상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한 자리에 모아,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극복한 후 조선이 지배체제 안정과 국가중흥을 위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보는 전시 속의 테마전시 '임진왜란의 논공행상'을 13일부터 9월 26일까지 76일간 진주박물과 임진왜란실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물1476호 '김시민선무공신교서' 등 관련 문화재 25점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제1부는 각 공신에 대한 정의와 공신에게 주어는 상급 및 혜택 등을 소개한 '공신책훈의 결과', 제2부는 공신회맹제의 실상에 대해 조명한 '공신회맹제의 시행', 제3부는 공신책훈 결과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영향관계 등을 살핀 '당대의 평가와 영향'이다.

▲ 김시민 선무공신교서(보물 제1476호) 진주대첩을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에게 내린 선무공신교서이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공신 칭호로서, 1등에 이순신,권율,원균 등 3명, 2등에 김시민,권응수 등 5명, 3등에 정기원을 비롯한 10명 등 모두 18명이 이 칭호를 받았다. 이 교서에는 김시민을 선무공신 2등에 녹훈한다는 것과, 공적에 대한 찬양, 포상 내역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유출된 이 교서는 2006년 문화연대와 문화방송, 그리고 진주 시민을 비롯한 전 국민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환수되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 진주박물관


제1부 '공신책훈의 결과'는 각 공신에 대한 정의와 공신에게 주어지는 상급 및 혜택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논공행상은 국가를 세우거나 내우외환을 극복한 후 권력체제의 안정을 꾀하고 국가 중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시행하는 중요한 사업으로,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나자 선조는 유공자를 가리는 공신선정 논의를 시작했으며 왜란 후의 논공행상은 3년 동안의 긴 논란 속에 1604년 6월 25일 '호성', '선무', '청난' 등 공로의 내용에 따라 세 종류의 공신을 책훈하면서 마무리됐다.

여기서 '호성'은 전쟁 시 왕을 직접 호위하거나 따르던 신하들에게 내려진 공신 칭호이며 '선무'는 이순신, 김시민 장군처럼 직접 전쟁을 돌며 혁혁한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려진 공신 칭호이다. 마지막으로 '청난'은 왜란 당시 이몽학의 난을 진압했던 신하들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 권응수 영정(보물 제668-1호) 임진왜란 때 무신이자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권응수(1546년∼1608)가 1604년(선조 37)에 선무공신에 녹훈되었을 때 공신도감에서 그려 하사한 초상이다. 두 손을 모으고 의자에 앉은 전신교의좌상이며, 족좌대를 갖추고 있다. 무신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문양이 흉배에 베풀어져 있다. ⓒ 진주박물관

제2부 '공신회맹제의 시행'은 공신책훈 후 시행하는 공신회맹제 대한 정의와 그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공신회맹제는 왕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으로, 임진왜란 종전 후 1604년 6월 25일에 '호성', '선무', '청난' 등의 공신을 책훈하고 그 해 10월 28일에 거행했다. 관련 유물을 비교 분석해 회맹제 참석인원의 규모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제3부는 공식책훈 결과에 얽힌 다양한 면모를 살핀 '당대의 평가와 영향'으로 구성하고 있다. 류성룡과 이항복 등의 공신책훈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며 공신책훈의 결과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일부 학자들의 시각을 조명했다.

전시 작품 중 제야 학자이자 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안방준 장군이 쓴 '은봉전서'를 보면 왜란 당시 공을 세운 의병들은 홀대하면서도 아무 공적도 없이 피난 당시, 임금을 따라다녔다는 이유로 '호성'의 공신 칭호를 받은 신하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 그 당시의 논공행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진주박물관 장성욱 학예연구사는 "이번 테마전시가 임진왜란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며 "특히 명분싸움으로 얼룩진 임진왜란 당시의 정치와 지금의 정치를 비교해가면서 관람한다면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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