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세자책봉 저지? 바느질하는 동이가 어떻게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동이>,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 MBC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동이 최숙빈(한효주 분). ⓒ MBC
그런 동이가 요즘 장희빈(이소연 분)의 아들인 이윤, 즉 훗날 경종에 대한 청나라의 세자책봉을 저지하려고 물밑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세자책봉을 놓고 장희빈 측과 청나라가 불법적인 비밀거래를 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며 장희빈 측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청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었기 때문에 조선의 세자 후보는 조선 국왕의 책봉은 물론이고 청나라 황제의 책봉도 함께 받아야 했다. 이중적 책봉을 받은 것이다. 그런 외교적 사정 때문에 드라마 속의 장희빈 측은 청나라의 책봉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청나라와 불법적인 거래를 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면 드라마 속 이윤은 자칫 세자의 길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드라마의 스토리대로라면, 조선 제20대 국왕인 경종 이윤의 앞길을 최숙빈이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윤 앞길 방해할 만한 것들은 제거한 숙종 임금
최숙빈은 장희빈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장희빈의 아들이 잘되기를 마음 속으로부터 진심으로 기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숙빈은 정말로 경종 이윤의 세자책봉을 저지하려 했을까?
조선 제19대 숙종은 세자 시절인 현종 12년(1671)에 11세의 나이로 김만기의 딸(훗날의 인경왕후)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현종 15년(1674)에 14세의 나이로 국왕에 즉위했다. 이처럼 일찍 결혼하고 일찍 왕이 되었는데도 그 후 오래도록 그는 왕자를 얻지 못했다. 인경왕후에 이어 인현왕후도 맞이하고 후궁 김영빈(영빈 김씨) 등도 맞이했지만, 등극한 지 10년이 훨씬 지나도록 그는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
▲ 경종 출생 당시의 태(胎)를 보관한 경종대왕태실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다. 왕실에서는 왕족이 출생하면 그 태를 따로 보관했다.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을 얻어서 그랬는지, 숙종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이윤 중심의 후계구도를 조기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송시열이 이끄는 다수당인 서인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윤의 세자 책봉을 추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는 정치적 결단까지 내렸다. 이윤의 앞길에 방해가 될 만한 요인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숙종은 결국 숙종 16년(1690)에 만2세가 된 이윤을 세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윤을 세자로 책봉한 데에 이어 같은 해에 장희빈을 중전에 책봉함으로써, 숙종은 이윤의 지위를 한층 강화시켜 주었다.
드라마 <동이>의 스토리를 따를 것 같으면, 이 과정에서 최숙빈이 이윤의 세자책봉을 극렬히 저지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자책봉 문제로 정계가 시끌벅적하던 시기에, 최숙빈은 '감히' 나설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본래 침방나인(바느질 담당 궁녀)이었던 최씨는 인현왕후 시절에 지밀나인(왕·왕후·대비 등의 시녀) 생활을 했다가 왕후 폐위와 함께 원래의 침방으로 되돌아갔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자책봉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정치적 씨름을 벌이고 있었던 그 시점에, 침방나인인 최씨는 눈앞에 놓인 일감을 놓고 힘든 씨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최씨가 숙종의 눈에 띄어 하급궁녀 신세를 벗어난 것은 숙종 18년(1692) 이후였다. 이때는 이미 세자책봉 문제가 마무리되고도 2년 가량이나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이윤의 세자책봉 문제가 논의되던 당시에는 최씨가 그런 문제에 대해 함부로 발언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마음 속으로야 반대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최숙빈이 이윤의 세자책봉을 저지하려고 동분서주했다는 드라마 <동이>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의 최숙빈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바느질하는 것뿐이었다.
정치9단 송시열이 사약을 들이켜야만 했던 이유
그럼, 드라마 속에서 동이가 하고 있는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서인 당파의 '영원한 총재'이자 정치 9단인 송시열이었다.
▲ 경종의 세자책봉을 반대했다가 사약을 마신 송시열의 영정.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그런 송시열이 효종의 손자인 숙종의 재위기 때에 경종 이윤의 세자책봉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숙종에게 상소를 올려 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반대당인 남인세력의 지지를 받는 장희빈의 아들이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숙종은 할아버지인 효종처럼 송시열에게 힘없이 당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송시열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결국 숙종이 승리하고 송시열은 사약을 들이켰다. 정치 9단인 송시열이 결국 장 희빈 아들의 세자책봉 문제 때문에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역사 소재 드라마에서 작가 상상력 남용은 안 된다
한편, 이것은 송시열에 대한 장희빈의 승리였다.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천것'에게 패해 사약을 마실 때에 송시열의 심정은 얼마나 참혹했을까? 서인 세력의 '영원한 총재'인 송시열이 그런 수모를 당한 것은 세자책봉 문제를 둘러싼 정치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 드라마 <동이>에서 주인공 동이가 하고 있는 역할은 실제로는 송시열이 했던 역할이었다. 드라마 <동이>에서는 송시열이 들었던 '이윤의 세자책봉 결사반대!' 피켓을 동이 더러 대신 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최숙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이처럼 송시열이 했던 일을 최숙빈이 한 것처럼 묘사한다면, 이는 이미 역사 드라마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정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과도한 픽션은 대중의 역사인식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공유물인 역사가 드라마 때문에 왜곡된다면,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정 허용함으로써 생기는 이익'과 '역사적 사실을 보존함으로써 생기는 이익'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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