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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씨, 저도 8년 전에 KBS에 당했습니다

KBS 블랙리스트 파동과 내가 겪은 3번의 해임 파동

등록|2010.07.19 18:41 수정|2010.07.19 18:45

▲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19일 오전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김미화씨의 눈물

김미화씨가 방금 기자회견을 했다. 제목만 봐도 눈물겹다. "친정집에서 고소당한 딸의 심정" "이런 세상이 슬프다" "저를 잃지 마십시오"... 누구나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라디오 프로그램(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보기 좋게 성공시킨 이 천재 코미디언을 누가 울리고 있는가?

KBS가, 아니 정확히 말해서 KBS 고위층이 편성권을 침해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정관용씨나 윤도현씨 등 자사의 간판 프로그램 진행자를 '과다 출연료'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체한 것은 분명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이다. 청와대든, 국회든 TV를 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마디 하고 그것이 곧바로 PD들의 편성권을 침해하는 유신시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득 2년여의 짧은 방송 진행을 하면서 정기개편이 아닌 때에도 번번이 잘렸던 내 '해임의 추억'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CBS <시사자키>였다. 내가 프로그램을 맡은 지 얼마 안 돼 CBS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했다. "김영삼 충성 편지" 등 경영진의 무능과 독선에 반대하는 CBS 노조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여는 말과 닫는 말에서 경영진을 비판했고, 출연자들의 성명까지 조직했으니 다른 방송사였으면 곧 바로 해임됐을 것이다. 다만 편성권을 존중하는 CBS의 빛나는 전통 덕에 석 달 쯤 버티다 해임됐다. 해임의 이유는 '무능'과 '편파성'이었다.

이듬해 피디연합회가 주는 라디오 진행자상을 받았고 곧 이어 <MBC 초대석>을 맡았다. 이 또한 오래 하지 못했는데 MBC 사장을 역임한 모 인사가 그 자리를 탐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피디가 "미안하다"고 했을 뿐이다.

세 번째는 KBS에서 <경제전망대>를 진행하다 해임 직전까지 갔다. 이른바 '고위층'에서 진행자나 출연자를 문제 삼는 건 어쩌면 KBS의 전통이다. 2002년 당시에도 다른 방송사에 비해 KBS가 더 심한 편이었는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는 현재의 경영진은 훨씬 더 노골적이고, 그 이유도 훨씬 더 정치적일 것이다. 당시 KBS 라디오 <경제전망대> 게시판에 내가 올렸던 글을 보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때 나는 잘리지 않았다. KBS 피디 협회가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고 나는 인수위원회에 들어가기 위해 자진 사퇴했다)

나의 해임...KBS의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2002년 10월 KBS 라디오 <경제전망대> 게시판

kbs 피디협회와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제 글이 돌아다니는 것이 방해가 될까 해서 글을 지웠는데 이미 전망대 게시판에 '열화와 같은'(^^) 글들이 올라와서 제 생각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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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꼭 답변해달라고 한 '효율과 평등'의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쓰려고 들어왔다가 여러분의 글을 보게 됐습니다. 일단 여러분의 격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 이 문제에 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편성권은 100% 피디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물론 앞으로 출연자들의 권리도 보호돼야 하겠지만 현재 우리 방송의 발전 수준에서 일단 피디의 편성권부터 (위나 밖으로부터)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피디가 어떤 이유로든 그만 두라고 할 때 저는 100%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확인하겠지만 말이죠.

제가 CBS 사태 때 청취자를 조직해서 문제에 개입했던 것도 경영진이 파업상태에서 피디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저를 해임했기 때문입니다.

2. 현재까지 KBS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박**피디와 이** KBS 피디 협회장에게 들은 말을 종합한 겁니다.

첫째, 그동안 몇 번에 걸쳐 홍보실에서 MBC 미디어 비평과 관련한 자료를 보고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의 입을 통해서 정태인이 <경제전망대>의 진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둘째, 고위 경영진 쪽에서 "KBS를 비판하는 프로그램(미디어비평)에 출연하는 사람이 KBS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셋째, 라디오센터장, 라디오 국장을 통해서 이런 의견이 박** 피디에게 전해졌다.

넷째, 박** 피디는 두 프로그램 중 하나는 그만 둬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정태인에게 전했다. 미디어 비평을 그만 두면 어떨까.. 하는 피디 개인의 의사도 밝혔다.

3.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째,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경제전망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압에 의해서 미디어비평(뿐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을 그만 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반대로 가령 제가 경제전망대에서 MBC의 경영비리를 비판했다고 해서 MBC 쪽에서 전망대를 그만 두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우선 제가 견지해온 삶의 방식과 타협할 여지가 없습니다. 상층이나 외부와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건 그래도 40년 이상이 된 제 삶에 대한 모욕입니다.

(실제로 박현채 선생의 평전을 쓰기 위해서 미디어비평을 그만 둘 생각도 있었습니다. TV 프로그램이란 것이 너무나 시간을 많이 빼았고 또 꽉 짜여진 것이라서 제 생각을 마음껏 반영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둘째, 미디어 비평은 지금 평가가 어떻던, 앞으로 계속 발전해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만들어진지 불과 1년 만에 민주언론상, 안종필 자유언론상 등 시민사회와 언론단체가 주는 상을 모두 휩쓴 것도 이 프로그램이 그저 다른 언론을 비방하거나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방증해 줍니다.

셋째, 미디어비평의 KBS 비평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해당 부서(아마도 TV보도국이겠죠)에서 미디어비평 쪽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반론을 요구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건 정도가 아닙니다.

넷째, 미디어비평에서 제가 맡은 꼭지 중에 KBS와 직접 관련된 것은 '열린채널' 문제(지난 주 방송분)라고 기억하는데 결론은 "방송사의 열린 자세도 중요하지만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건 KBS에게 가장 유리한 비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KBS에서 돈을 받는 사람이 KBS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건 도덕적인 문제 아니냐"는 것이 쉽게 드는 생각일 텐데... 저는 이 점에 관해서 아무런 도덕적 문제를 느끼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로 얘기해서 제가 KBS에서 돈을 받는 것은 전망대를 진행한 대가입니다. 그 돈의 가치만큼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러 저러해서 해임한다고 하면 그 뿐입니다.

미디어비평이 KBS를 비판하는 프로그램도 아니고(KBS가 선진적으로 잘 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다른 방송사도 본을 받도록 하는 것도 미디어 비평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 실제로 비판받을 것이 있다면 미디어 비평이 아니더라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KBS의 위와 같은 태도는 '내부 비판자'(저는 정확히 얘기해서 '내부'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만)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여섯째, 제가 경제전망대를 맡을 때 제가 미디어 비평을 하고 있다는 걸 라디오센터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즉 라디오센터의 판단으로는 제가 미디어비평을 하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TV쪽에서도 시사제작국 "세계는 지금" 팀은 알고 있습니다. 만일 현재의 논리대로라면 "세계는 지금"도 그만 둬야 하고 그 이전의 KBS 출연(그 때의 피디들도 제가 미디어비평에 출연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도 모두 문제로 삼아야 하겠죠.

즉 고위층의 판단에 따라 "정태인이 미디어비평을 하는 한, kbs출연을 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건 KBS 경영층이 피디들의 권한, 프로그램 편성권자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청취자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지금 피디를 공격하는 건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인신공격식의 비판은 정말로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공격을 많이 당해 봤는데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이런 식으로 분란이 일어나면 어차피 KBS에서 방송하기 힘듭니다. 우리의 문화라는 게 그렇거든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해서는 정확히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다시 이런 피해가 일어나서는 안될테니까요.

KBS 피디협회가 나서서 원만하게 이 일을 정리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만큼 한 주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 15일 저녁 KBS 본관 계단 앞에서 두 번째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이 열렸다. ⓒ 송재걸



위축되었을 KBS 내부, 시청료 인상 반대 촛불 타오를 것

위 글에서 "KBS를 비판하는" 부분에 "정부를 비판하는"을 넣으면 정확히 현재 KBS 상황일 것이다. KBS의 피디나 기자들은 평상시에 비해 지금 잔뜩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위층에서 문제 삼을 만한 인물은 웬만하면 캐스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KBS 사내만 문제가 아니라 거실에 앉거나 드러누워서 TV를 보던 여권 인사들의 한마디 불평도 다 신경 쓰일 것이다. "국민의 방송"이라는 낯익은 가락은 절로 "MB의 방송", 또는 "수구의 방송"으로 들린다.

그래도 어느 용감한 PD가 "이 프로그램에는 이 사람이 적합하다"고 자신의 편성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사례에서처럼 PD협회나 기자협회, 또는 노조가 이들의 당연한 권리를 보호할 가능성은 확연하게 축소된 상태이다. "KBS 새노조"의 '파업'이 눈물겨운 이유다.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는 <1박2일>의 피디들이 파업에 동참한 것도 바로 이 편성권 때문일 것이다. 방송의 기본 중 기본인 그 싸움에 온 몸을 바쳐야 비로소 국민들은 시청료 인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코미디언을 고소하는 데 우리가 낸 시청료를 쓰겠다고? 시청료 인상 반대의 촛불이 다시 타오를 것이 100%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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