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KBS 기자했어~ 나 뭐 먹고 살아~"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 그 두 번째 이야기
▲ 15일 저녁 KBS 본관 계단 앞에서 두 번째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이 열렸다. ⓒ 송재걸
파업이 이렇게 웃기고 즐거울 수 있을까.
15일 저녁 KBS 본관 계단 앞에서 열린 두 번째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이하 '개념탑재의 밤')은 시민들의 웃음소리와 환호로 가득 찼다.
"미모와 재능을 갖춘 KBS 최고의 자체발광 그룹"으로 소개된 '개념시대'는 여성 조합원 네 명으로 구성됐다. '개념탐재의 밤' 첫 무대를 연 이들은 '한걸음 한걸음씩'에 맞춰 힘찬 율동을 선보였다. 흥에 겨운 이들의 율동에 자리에 앉아있던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학생들 10여 명이 일어나 이들과 함께했다. 학생들의 즐거운 율동은 무리하게 자리를 통제하던 청원경찰들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첫 번째 '개념탑재의 밤'에서 성공적으로 데뷔 무대를 마친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은 "이번 파업의 최대의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새롭게 충원된 드러머까지 라디오국 PD 6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노래로 평가하지 말라, 우리는 퍼포먼스 중심의 활력을 주는 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어 '쇼', '담뱃가게 아가씨', '필승'을 부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괜히 KBS 기자했어~ 나 뭐 먹고 살아~"... "청와대 홍보수석"
조합원들은 또 <추적 60분>을 패러디한 '파업특집 추척 6분',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기획-편집한 '비인간극장 - 인규씨의 하루', KBS 9시 뉴스와 동시에 진행되는 '파업 늬우스' 등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KBS 건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사측의 장비를 쓸 수도 없었지만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버금가는 신규 패러디 프로그램들을 제작한 것이다.
김인규 사장 아래에서 행해진 그간 KBS의 방송제작 행태를 비꼰 이들의 작품은 시민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한 웃음으로 달랬다. 특히 '파업 늬우스' 중 보도국 기자들이 선보인 <개그콘서트> '남성보장위원회'의 패러디 '새노조보장위원회'는 가장 통쾌한 웃음을 전달했다.
한 조합원이 KBS 보도국에 대해 "실컷 취재해 왔더니 (조중동)신문 보고 다 고치나", "정부 비판하는 것 발제했더니 '약하다', '다른 거 없냐'고 한다"며 "괜히 기자했어~ 나 뭐 먹고 살아~"라고 투정을 부리더니 곧바로 "청와대 홍보수석"이라고 자문자답해 좌중을 휘어잡았다.
공연하기 위해 참석한 뮤지션들도 하나같이 파업 지지발언을 했다. 조PD는 "오늘 이 자리에 온다고 했더니 많은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며 "가수들이 이곳에 옴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 파업의 가치가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도 "(KBS가) 언론의 주인은 국민이고 사주가 아닌데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시라"고 말했다.
"KBS의 희망과 양심에 마음 돌려준 시민들 고맙다"
이날 엄경철 전국언론조동조합 KBS본부 위원장은 "KBS에 희망과 양심이 아직 남아있다고 믿어 마음을 돌려준 시민들에게 고맙다"며 행사의 시작을 열었다. 이어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하지만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이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무형의 자산이니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단식농성 중임에도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KBS는 시민들로 인해 살아나고 있다"면서 "사람이 짐승하고 다른 점은 본능이 이성으로 제어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개념이 있다는 것"이라고 KBS 경영진을 겨냥했다.
또 김 위원장은 "MB특보사장이 정당한 발언을 한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데 KBS에 명예가 어디 있냐"며 "명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조합원 동지들뿐이다, 승리하라"고 응원했다.
이어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해고 및 중징계를 받은 진주MBC 노조 조합원들을 위로 차 방문했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지역방송과 방송의 공정성을 살리기 위해서 내일도 투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내일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 입 모아 "KBS 파업,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용석(24, 대학생)씨는 "지난 번 MBC 파업이 아쉽게 끝나버려서 많이 안타까웠다"며 "그러나 이후 KBS의 구성원들이 정부의 탄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하는 모습에 이끌려 이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KBS 구성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모든 사회적 운동의 귀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앤디(26)씨는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당당하게 일어서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며 "한국 시민들이 공영방송의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지지가 매우 놀랍고, 조합원들은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후 7시부터 시작한 이번 행사는 약 1300여 명이 참석해 밤이 늦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던 '언니네 이발관'이 앵콜곡까지 부르고 오후 10시가 다 돼서야 행사가 끝맺음 됐지만, 자리를 뜨는 시민들의 얼굴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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