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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깊은 공감'을 생각하며 함께 읽었다

[서평] 오마이북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등록|2010.07.16 11:02 수정|2010.07.17 20:35

▲ 지난해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를 고민하며 읽었던 책 10권을 함께 읽으며 토론했던 강독회 내용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에는 <슈퍼자본주의>, <빈곤의 종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한다>, <유러피언 드림>, <더 플랜> 등 10권의 책이 나온다. 그리고 장하준, 로버트 라이시,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등 10명의 저자, 그리고 각각의 책을 청중에게 말하는 10명의 강연자. 그리고 노무현이 나온다.

수많은 목소리가 웅성대는 가운데 우리는 그 목소리 중 누군가가 혹은 모두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어떤 자리를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는 바위 끝에 올라서서 '왜 그렇지?', '그럼 앞으론 어떻게 하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두터운 안개 속을 헤치고 나오듯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노무현을 만든 책, 혹은 노무현을 만들 수도 있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사적으로는 슬픔을 느끼면서도, 패배감과 수치심과 싸워가면서도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인간이 책에서 얼마나 많은 위안과 힘을 얻었을까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두 가지 관점에서 본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나는 라디오 PD이자 소설 애호가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관점에서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다니는 CBS에는 재미는 없지만 (즉 오락성은 떨어지지만) 공익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존속해온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함께 사는 세상'이란 캠페인성 프로그램이었는데 자원 봉사자나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 초대해 방송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방송사 개편 때마다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뜻은 거룩하나 어딘지 와닿지가 않는다는, 취지는 알겠으나 흥미롭진 않다는, 뭉클하긴 하나 자유롭거나 즐거워보이지는 않는다는. 사회적 모순이 거대하게 존재하는데 굿뉴스나 개인의 선행을 방송하는 게 어딘지 기만적이고 억지스럽고 소소하다는. 그래서 몇 년간의 논란 끝에 '함께 사는 세상'은 결국 중단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세상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등장하고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터지기도 했다. 공정무역, 착한여행, 사회적 기업, 다문화 공동체, 촛불집회, 그리고 노 대통령의 서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탐독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가 6월말에 출간됐다. ⓒ

나는 노 대통령의 죽음 이후 이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에 나온 책 가운데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은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주목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러 찾아 읽었다. 그 <유러피언 드림>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은 이런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의 세계에서 시민의 행복은 재참여와 재결합의 깊이에 달려 있다. 재참여란 무엇인가? 깊은 공감 속에서 다른 존재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공감적 경험이다."

'깊은 공감'이란 말은 그 뒤 나 개인에게는 중대한 주제가 되었다. 깊은 공감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말을 가볍게 스쳐 보내지 않고 싶었다. 그것은 자연은 어느 것 하나 헛되이 만들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무고한 아들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나의 행동과 선택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심사숙고하려 애쓰겠단 것이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마땅히 주어진 권리처럼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든 나도 관련되어 있다는 걸 결코 망각하지 않겠단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의 의미가 특별히 강렬했던 것은 그 책을 읽는 내내 어쩐지 나 혼자 읽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단 것이다(물론 유령과 함께 읽었단 뜻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죽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노 전 대통령은 어느 페이지의 어느 문장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을까를 끝없이 상상하며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샤르트르가 말한 고매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고매함이란 무엇인가? 샤르트르에겐 신뢰 자체가 고매한 마음이었다. 서로가 상대방을 신뢰하고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요구하는 것이 바로 '고매성의 협약'이다.

읽는 동안 나는 나 스스로 노 전 대통령과 고매성의 협약을 맺으려 했던 것 같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에게 최고를 요구하는 사이라지만 같은 책을 읽는 동안 독자와 독자끼리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나도) 서로 최고의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나는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는 동안 책에서 힌트를 얻어가며 저자를 질투도 하며 동경도 하고 뭔가 될 것 같은 예감과 조바심에 흥분해 측근들을 닦달하기도 하면서, 결코 꿈꾸길 멈추지 않으려 했던, 결코 태만하지 않은 노무현의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서거 얼마 후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는데 그 프로그램은 '함께 사는 세상'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선한 타자에게 감탄하기만 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자신도 선하게 살고 싶어 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 "미덕은 그것을 연습해야 한다", 바로 그 문장처럼 일상 생활에서 올바름을 존재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택하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미덕은 그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그리고 다른 어느 때보다 '연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이후의 노무현은 아마도 우리의 본성, 우리 시민 사회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좋은 점을 끄집어 내길 기대했었으리란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으면 그 느낌은 더욱 명백해진다. 이제 노무현을 애도함은 어느 한 순간의 애틋하거나 안타까운 감정의 상태이기만 해서는 안되고 나의 존재를 옮기는 출발점 혹은 근원을 말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소설 애호가의 입장에서 이 책을 본다면 나는 최근의 화제작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문장을 인용해보고 싶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 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이론의 전개자는 매킨 타이어라는 사람으로 그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존재'로 본다. 그의 이론을 더 옮겨본다면,

"인간은 개인이라는 자격만으로는 결코 선을 추구하거나 미덕을 실천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또는 사촌이거나 삼촌이다. 나는 이 도시나 저 도시의 시민이며 이 조합 아니면 저 조합의 회원이다.나는 이 친족, 저 부족, 이 나라에 속한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그러한 역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이처럼 나는 내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빛,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는 내 삶에서 기정 사실이며 도덕의 출발점이다."

▲ <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사장 이재정)이 공동주최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 첫번째 강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강의로 지난해 9월 1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소설 애호가이자 이야기 수집가의 입장에서 내 삶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삶의 이야기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 것, 나는 이것이 한 개인이 세계와 연결되고 통합되는 방식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방식이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다. 우리 인생 이야기에는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와 정의와 연대, 자발성, 이런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던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가 던졌을 질문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어떤 모색 과정을 거치려 했는지는 결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자유와 평등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정부와 시장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현대의 국가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구속하지 않는 공동체는 불가능한가?
성공과 실패란 무엇인가?
나는 실패해도 역사는 성공하는 방법은 없는가?

깊은 밤 서성였을 한 영혼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실천할 방법을 찾아 깊은 밤 서성였을 한 영혼에 깊은 공감을 하며 그가 던졌을 질문들의 답을 우리가 구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이 꿈꿨을 좋은 시민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가 생각하는 존재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 최선을 다하려 한 인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경의를 표하려는 의지가 우리 안에 있음에 우리는 또 희망을 건다.

나는 얼마 전에 뉴레프트 리뷰에서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의 말을 읽고 가슴에 담아두었기에 그 말로 글을 맺고 싶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책들을 읽어보는 것, 그가 던졌던 질문들을 구하는 것이 어딘지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를 만나 대화하는 순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우리를 져버릴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우릴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삶과 시간이 주어진 동안 싸우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당신 시대의 사람들 어느 누구도 싸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싸워야만 존재하고 또 존재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일어난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찾아온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혜윤 기자는 CBS PD이며 소설 애호가다. <침대와 책>(2007),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2008), <런던을 속삭여 줄게>(2009),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2010)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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