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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먼데까지 의사선상님이 와줘서 고맙지라"

안도 방문한 한마음 의료봉사단, 주민들 환영

등록|2010.07.19 13:36 수정|2010.07.19 13:36

▲ 17일부터 1박2일 동안 자원봉사를 위해 섬(안도)을 찾은 경희대학교 경희의료원 한마음 봉사단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심명남


어릴 적 오지의 깡촌 섬마을에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동네 어른들과 함께 길을 넓혀 주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그 무렵 뭍에서 온 대학생들의 자원 봉사는 섬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지금이야 자원봉사가 기업홍보용과 생색내기로 변질되고 있지만 참된 자원봉사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여름 피서철을 맞아 섬 지역에 의료봉사활동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에서 왕성히 활동중인 기자님과 함께 돌산 신기마을에 도착했다. 오후 2시 반배를 타기 위해 급히 차를 몰고 포구에 도착했지만 간만의 차이로 배를 놓치니 허탈하다. 다음 배를 타기 위해 이제 1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

포구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바다로 나가기 위해 작업 준비에 분주하다. 통발로 잡은 문어를 직접 들쳐 보이는 아낙네의 모습은 어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 돌산 신기마을 어촌 아낙네가 통발로 직접 잡은 문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심명남


어느새 또다시 금오도를 다녀온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섬에 다리가 놓이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싣고 섬으로 들어간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섬지역도 이제 완전 일일생활권이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는 장마 때문에 섬과 섬을 사이에 두고 하늘은 두 얼굴이다. 금오도의 명산 대부산은 운무에 가려 반만 모습을 드러낸 반면 화태도는 청명한 가을빛 하늘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흐름을 멈추지 않는 남해안 바다는 어디론지 유유히 흐른다. 섬에서 철이든 탓인지 바다는 나에게 항상 어머니의 푸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에 오면 많은 상념에 젖곤 한다. 이곳 남해안의 섬과 바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여수 박람회의 주제답게 이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가 또 있을까?

돌이켜 보면 섬은 항상 억척스러움과 가난함의 연속이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 많은 주민들이 고기잡이가 아니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 건강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낸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길에 한 여행객이 금오도 대부산 중턱에 끼인 안개를 손짓하고 있다. ⓒ 심명남


섬주민과 약속지킨 한마음 의료봉사단

이곳 섬주민을 위해 서울 경희대 한의원과 순천 중앙병원에서 공동으로 한마음 의료봉사단이 온단다. 경희 의료원 최우석교수 외 약 50여 명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은 한방, 내과, 치과, 안과 등의 전문의와 의료장비를 갖춘 4대의 버스가 1박2일 일정으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 섬지역 의료봉사를 위해 한방, 내과, 치과, 안과 등의 전문의와 의료장비를 갖춘 4대의 경희대 의료버스가 1박2일 일정으로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 ⓒ 심명남


의료봉사단이 이곳 안도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남다르다. 2년 전 순천 중앙병원 송영웅 원장과 경희 의료원 최우석 박사 일행이 휴가 차 이곳을 찾았다. 당시 이곳 청장년회원과 휴가를 즐기던 중 최 박사가 즉석에서 섬주민을 위해 의료봉사를 오겠다고 약속해 2년후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

이날 송태오 중앙병원 사무국장은 "의료봉사를 위해 섬에는 처음 왔는데 너무 경치도 좋고 사람들이 좋다"며 "향후 지역 주민들이 필요하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지역민에게 약속했다.

또한 김평식 어촌체험마을 위원장은 "안도 청·장년회와 맺은 깊은 인연 때문에 1박 2일 동안 희생을 아끼지 않은 의료봉사단에게 감사드린다"며 "그 보답에 답례하기 위해 이곳 어촌체험마을의 인기 프로그램인 슬로우푸드체험을 제공하였다"며 "계속 좋은 인연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접시꽃 같은 당신 고마워요!"

이날 80평생을 섬에서 생활한 최치훈(83) 할아버지 내외는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은 후 침도 맞고 약도 타서 연신 즐거운 표정을 보였다.

▲ 50대 초반에 중풍(뇌졸증)으로 쓰러져 20년째 병간호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진료가 끝난후 오줌 주머니를 점검하고 있다. ⓒ 심명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연은 애처롭다. 22살에 시집와서 4남매를 키운 할머니는 자식이 사업에 실패해 집이 넘어가 수년전부터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또 50대 초반에 중풍(뇌졸증)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는 20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특히 요도 계통에 이상이 생겨 항상 오줌 주머니를 차야 하고 무릎 관절이 안 좋아 휠체어에 의지해 할머니가 없으면 하루도 힘들다.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단다. 그래서 노부부는 접시꽃 당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할머니는 마당에는 핀 접시꽃을 꺾어 할아버지에게 내밀며 한마디 읖조린다.

"우리 영감은 나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
"내가 부모를 이렇게 거천 했으면 효부상을 몇 번도 탓어."
"영감이 나를 40대부터 생과부로 만들었당께(웃음). 지금잉께 말하지 전에는 여러워서 말도 못 꺼냈당께. 나도 인자는 우리 영감 없으면 못 살아."
"근디 여그가 어디라고 이 먼데까지 의사선상님이 와줘서 너무 고맙지라."

접시꽃 당신20여년간 남편의 병수발에 이골이 난 할머니가 마당에 활짝핀 접시꽃을 할아버지에게 선물하며 "부부란 정으로 사는 거여"라고 말하고 있다. ⓒ 심명남


이곳의 많은 주민들은 멀리서 이렇게 많은 의료봉사단이 언론에도 알리지도 않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행을 실천한 의료진들의 방문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지속적으로 섬지역의 의료봉사가 계속 행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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