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노동운동가에서 성평등 활동가로

등록|2010.07.20 19:52 수정|2010.07.21 14:18

함께 배우며 삶을 나누는 행복한 만남울여문이란 단체를 조직한 취지가 뭐냐는 질문에 명숙님은 깐 마늘 다듬다 말고 일어나 울여문 취지를 가장 잘 표현한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 변창기


"창기씨 시간 있으면 마음공부 하는데 와 봐요."

아는 분 중에 '명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저보다 두세 살 많아 누님이라 부르고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을 안 지는 꽤나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 90년대 초 목재회사에 들어 가서 만났으니 20여 년이나 된 지인입니다. 김명숙이란 이름이 있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 성을 빼고 그냥 명숙이란 이름을 명함에 새겨 다니며 자신을 알리고 있습니다.

목재회사에서 그분은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땐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읽기가 좋아 울산 어느 독서 모임에 참석하다가 뒤늦게야 사회운동에 눈떴다고 합니다. 87년 7월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고 자연히 노동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저곳 취업하여 활동해오다가 88년 초에 현대그룹 목재회사에 취업을 하게 됩니다.

울여문 사무실다운동 입구에 다운동 주민센터가 있고 맞은편에 울여문 사무실이 있습니다. ⓒ 변창기


그분은 위장취업자로 몰려 해고와 구속을 여러차례 맞이 하다가 회사를 정리하고 민노총과 울산지역해고자 모임에서 실무자로 활동합니다. 그러다가 민노총 활동에 회의를 느꼈고 노동운동을 접게 됩니다.

"왜 민노총 활동을 그만 두었어요?"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남녀차별이 존재 했어요. 저는 그런 현실에 이질감이 강하게 들었지요. 그래서 민노총 활동을 접게 되었지요"

그후 그분은 활동방향을 여성문제로 돌리더군요. 여성학에 대해 공부하는가 싶더니 여성노조활동에 가담했어요. 그러다 어느날부턴가 울여문 사무실을 열었다고 와보라 했습니다. 게다가 여성문제에 관심 많다는 명숙님이 마음공부 하니 오라 하더군요. 울여문이 뭐길래 마음공부도 하지? 궁금했습니다. 울여문이 뭐하는 곳인지 알아 보고 싶었습니다.

마음공부울여문 사무실을 방문 한 날 원불교 교무님을 모시고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두렵고 억울한 여성 현실에 조금이나마 도움 주고자 마련한 모임. ⓒ 변창기


마음공부 일기 발표각자 일주일 간 지내면서 요란한 마음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평온한 마음으로 돌이킬수 있는지 공부한 내용을 발표합니다. ⓒ 변창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네요. 저는 그런 정신 가치를 넓히는 명상이나 철학, 마음공부 같은데 관심이 많습니다. 남목서 다운동 가는 버스를 타고 다운동 주민센터역에서 내렸습니다. 울여문 사무실은 다운동 주민센터 길 건너편에 있어 찾기 쉬웠습니다. 제가 도착 했을 땐 이미 여러분이 모여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서로 연결지어졌는지 모르나 원불교 울산교당 교무님이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지켜보니 마음공부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교무님이 내 준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공부 일기를 써오는 것. 각자 마음공부 일기를 써 와서 차례로 자기 일기를 읽었습니다. 써 온 마음공부 일기를 다 읽고 나면 교무님이 여러가지 알기 쉽게 조언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마음공부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터득해 갑니다. 알듯말듯하고 쉬운듯 어려운듯 하여 숨쉬듯이 밥먹듯이 이런 마음공부 모임도 자주 참석해 보아야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았습니다.

어떤 중년 여성분은 사는게 하두 답답하고 신경쇠약 증세도 보이던 중에 우연히 울여문을 알게 되었고 마음공부에 참석하고 있는데 마음공부 하면서 혼란스럽던 마음이 하나하나 정리된다고 하면서 저에게도 마음공부를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마음공부라는 유익한 시간이 지나가고 모두 돌아간 후 명숙님과 저만 남았습니다. 저는 울여문이 무엇인지 왜 이런 모임체를 구성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 울여문이 무엇이고 왜 만들었어요?

명숙님 - 울여문은 울산여성문화공간의 줄임말 입니다. 저는 여자로 태어나 집에서부터 성차별을 많이 당하며 자라왔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후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고 노동운동 하면서 해방감을 만끽해 보기도 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운동 조직 내에서도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거죠.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제가 주체성 있는 여성으로 살아 온 줄 알았는데 아주 소심하게 살아 왔음을 알게 되었어요.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불평등한 가부장 사회구조를 발견하게 되었고 가부장 사회구조 속에서 강요되는 여성상에 대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후부터 남녀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런 활동을 나 혼자 할 게 아니라 뜻있는 사람들 모여 함께 해보자 해서 울산여성문화공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울산여성교육문화센터였어요. 너무 광범위한 거 같아서 회원공모도 해 모은 의견  명칭이 울산여성문화공간입니다. 소박하고 아담하게 시작하고 진행하려구요.

천으로 만든 생리대 보급활동시중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 여성 생리대는 여러가지 건강에도 유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사용한 폐 생리대가 분해 되기까지는 100년이란 세월이 더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여문은 천으로 만든 생리대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 변창기


-언제 만들어 졌고 만든 취지가 궁금하네요.

명숙님 - 소모임서부터 시작했어요. 준비 과정이 3년이 걸렸네요. 그러다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에 모여 창립 총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준비 모임을 하면서 모아진 의견이 '여성들이 좀 더 행복해지고 즐겁게 사는데 도움되는 모든 일을 수용해서 일을 진행한다'였습니다. 결혼후 주변을 보니 의외로 두려움과 억울함, 답답함 속에 살아가는 여성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여성분들과 함께 배우고 삶을 나누어 서로 행복한 만남을 가지자는 게 취지라면 취지랄까요.

처음 시작 당시엔 10여 명이 모여 준비위를 꾸렸는데 지금은 후원회원까지 100여 명이 크게 작게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평등이나 친환경에 관심있는 남성 분도 많이 참여하고 있지요. 울여문은 여성문화공간이지만 가족을 귀하게 여기고 부부가 서로 존중할 줄 알며 지구 환경이나 친환경 건강생활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환영합니다.

여러가지 재활용품 만들기 활동짜투리 천으로 여러가지 재활용품을 만들고 보급합니다. 병뚜껑을 이용한 악세사리나 열쇠고리 그리고 자동차 잠시주차 알림판까지 다양하게 만들어 보급하고 있었습니다. ⓒ 변창기


-울여문에서는 어떤 일들을 진행하고 있나요?

명숙님 - 먼저 평등활동으로 독서토론과 성평등 영상물 보고 토론도 하고 성교육 활동도 하고 있어요. 지역과 연대사업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여성학 공부모임도 진행 중입니다. 두번째로 친환경 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가 환경에 관심 가지면서 여성 생활과 밀접함이 있는 물품에도 관심 가지게 되었는데 그 중에 여성이면 누구나 피할 길 없는 일이 한달에 한번 달거리를 한다는 것이었지요.

알아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화학합성 생리대는 여성에게 별로 좋은 게 아니더라구요. 그 생리대 하나 분해 되는데 자그만치 10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되더라구요. 그래서 대안 생리대 만들기 일을 추진했고 현재에는 많이 발전된 생리대를 보급하게 되었어요. 천 생리대인데 사용후 다시 삶고 깨끗이 빨아 말리면 재활용이 가능하고 여성건강에도 좋더라구요.

또 이엠 보급활동도 하고 있어요. 천연비누와 화장품도 만들어 사용하기 활동도 합니다. 아나바다 아세요?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그 아나바다 장터를 월 1회 하고 있어요.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가 크더라구요. 동네 분들이 여러가지 재활용품을 많이 가져오고 있어요.

세번째는 나눔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르기 때문에 여러가지 불이익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지요. 마음을 다스리는 일 또한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위한 공부를 매주 한차례씩 진행시키고 있어요. 오늘 오전에 마음공부 같이 해봤잖아요. 처음엔 원불교라는 특정 종교에서 와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문제시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잘했다 싶어요. 원불교는 모든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그게 마음에 들었고 특히 마음공부를 진행 시켜주시는 교무님은 일체 종교이야기 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 다스리는 공부만 진행시켰어요.

그래서 다들 종교를 떠나서 모임을 가질 수 있고 마음공부 후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좋아라 할때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 외 심리 상담활동도 해요. 부부생활문제나 자녀문제와 같은 가정문제를 다루지요. 한부모 자녀 돕기 활동도 하고 있어요. 요즘 이혼 가정이 늘고 있더군요. 그러면 어려서부터 부모가 이혼이나 사별로 아픔을 간직하며 생활하는 학생들이 함께 늘어나게 되잖아요.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한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건 조심스레 진행되고 있어요. 알려지면 그 아이에게 또다른 마음의 상처를 줄까 우려해서지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문화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술강좌도 있고 고전 읽고 토론하기 모임도 있어요. 월 1회 등산 모임도 하고 여러가지 친환경 생필품 만들기도 해요. 짜투리 천을 이용해서 하는 바느질 모임도 하고 있어요. 또 폐식용유로 빨래비누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나바다 장터 준비물아나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 장터를 한달에 한번 열더군요. 이 외에도 여러가지 양성평등의 삶을 가꾸는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 변창기


교육 활동도 합니다. 5명 이상 모일 수 있으면 기본 대화법 강좌도 열어요. 에니어 그램이라고 해서 성격유형분석도 해줍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도 진행중에 있고 도자기 만들기도 진행합니다.

울여문 잡화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원간 좋은 상품 교류 차원서 하고 있지요. 부각으로 고추나 김,다시마가 준비되어 있어요. 천 생리대도 있고 행주나 야생차, 천연비누, 천연화장품, 다육이 화분도 있어요. 회원과 가족이 생산하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그냥 나눔차원서 진행 중이지요.

울여문 도서관도 운영 중입니다. 현재 각종 잡지나 책이 1,000여권 있습니다. 회원이나 마을 주민에게 누구나 빌려 드리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제안해서 진행하고 있는데 울여문 밥상과 주안상이 있어요. 이게 뭐냐면 회원이나 마을 분들이 2일전 주문해 오면 무슨 요리나 해줍니다. 친환경 재료를 쓰고 저렴해서 인기가 좋아요.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울여문 활동비에 보태고 있습니다. 친목 도모도 하고 재정 마련에 도움되는 활동중 하나이지요. 그리고 우리문화 살리기 활동도 합니다. 얼마전 단오제도 했고 문화 기행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울여문 공간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는지요?

명숙님 - 우리는 지금 대표는 두지 않고 6인 운영위원 체제로 가고 있어요. 회원의 회비와 장터,잡화상 수익금으로 운영이 유지되고 있어서 상근자와 봉사자가 할 일이 많아요. 조금 힘든 상황이지만 울여문에 관심을 가지는 마을 분들이 늘고 있어 희망이 보여요. 올 년말까지 회원 200여명을 목표로 하반기에는 마을에 울여문 알리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역량있는 상근자 2명을 확보하여 매월 회보도 내면서 공간을 탄탄하게 만드는게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저는 이 일이 재미있고 보람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많은 분들과 함께 할수 있겠지요.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명숙님에게 마지막으로 물어 보았습니다. 성평등 활동 어렵지 않냐구요.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나 남존여비 사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깊이 뿌리박혀 있는데 이런 구조 속에서 평등을 내세우는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구요. 그런 질문을 던졌더니 이렇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평등하면 가정이 더 행복해 집니다. 부부는 서로 친구이자 동반자 관계입니다. 부인한테 군림하는 남편보다 사랑받고 존중받는 남편이 더 좋지요? 진정한 동반자는 평등할 때 가능한 것 입니다. 이 울여문 활동이 남녀가 함께 공유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지요. 울여문 활동은 부부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활동이니까요."

울여문 활동으로 평등세상을 가꾸어 가려는 명숙님을 보면서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가정이 되는지를 느끼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울여문을 잘 가꾸어 평등세상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울산여성문화공간놀러오세요. 억울한 여성, 두려운 여성, 답답한 여성 분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줄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여성문제나 가정문제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오시는 분들 사정에 맞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열린여성문화공간입니다. 양성평등 세상을 가꾸어 가는 좋은 여성문화공간.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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