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엄마, 엄마가 고양이과였어?"
우리 어머니의 어록 중에서 발췌한 절대적 명언은?
매일 매일이 놀라움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고기가 아니면 밥을 못 넘기는 그런 체질이었다니. 아니 그런 체질로 바뀔 수도 있다니. 이게 뭐냐. 날마다 묻고, 또 묻지만 아직 답은 못 구했다. 답은 어디 있느냐.
'실가리'나 아욱으로 끓인 된장국 속에서도 정확하게 고기나 생선만 골라내서 입에 넣는 어머니, 아, 이게 뭐냐. 내가 어머니를 통해 삶의 어떤 것을 배우고자 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건 너무나도 놀랍다.
예전에는 그랬다. 노모에게 아들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국을 끓여 드린다는 옛날 이야기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데? 고기를 안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응?
이 질문은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진행이다. 하긴 과거의 질문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놀랍다고, 기가 막힌다고, 어이가 없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도 않으리라.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봄 꽃들이 막 피어나는 4월에 고종사촌 형님댁을 갔었다. 어머니가 늘 질부, 질부, 하시던 바로 그 질부와 잠깐이나마 좋은 시간을 갖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갔는데 마침 가는 장날이라고 읍내에 사는 조카가 양념치킨을 사 들고 와서 막 먹으려 하는 중이었다. 먹던 중인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먹으려고 형님과 조카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형수님께서는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야채 등등을 꺼내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들어선 외숙모를 보고 어머니의 질부께서는 "오매 이거 누구여, 누구여, 외숙모, 외숙모"하고 마치 기관총을 쏘아대듯이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에 일어선 형님께서는 눈에 벌써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자기 마누라의 비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때가 오자 "외숙모, 아이고 외숙모"하고 울먹이는 소리를 베이스 톤으로 깔며 두 팔로 어머니를 안다시피해서 밥상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잘 왔다, 잘 왔다"하시는 거였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하여튼 도무지 말로는 다하지 못할 복잡한 감격적인 시간 뒤에 모두가 밥상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것을 아들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형수께서는 떡이며 과일이며 과자며 무엇이며 하여튼 냉장고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꺼내다가 밥상 위에 마치 무슨 제삿상을 차리듯이 진열을 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자꾸 양념치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것이 뭐여, 저것이 뭐여" 하시는 거였다. 그때마다 형수께서는 과자나 떡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어머니의 입에 넣어주거나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양념치킨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입에 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이 오물오물해서 삼키지만 손에 쥐어진 것은 슬그머니 도로 놓아버리고 손가락으로 양념치킨을 가리키며 "저것이 뭐여"하시는 거였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어머니가 양념치킨이 풍기는 특유의 냄새로부터 이를테면 회가 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양념치킨이라는 것이 원래 생김새가 보통 음식들과는 다르게 이상하니까, 그래서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가는 것이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하도 자꾸 그것을 가리키니까 형수께서 마침내 "이거 하나 잡숴 보실라요"하고 다리 하나를 손에 쥐어드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세상에, 세상에 신기한 일도 그런 신기한 일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또 이상한 일이었다. 가령 옥수수라든가 참외 같은 것을 드리면 어머니는 이가 안 좋아서 못 먹는다고 물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딱딱하고 뜯기도 곤란한 양념치킨은 어떻게 그리도 쓱쓱 척척 물어 뜯어서 꿀꺽꿀꺽 삼키는 것인지 정말로, 정말로 구경거리도 그런 구경거리가 없어서 우리는 한참이나 넋을 놓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그날 양념치킨 한 마리 가운데 최소한 삼분의 이 정도를 혼자서 다 드셔 버렸다. 어린 조카들이 두어 쪽 먹은 것 외에는, 스무 살 이상의 어른들은 감히 양념치킨에 손도 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거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머니의 그 식욕을 일종의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안 하던 일을 아주 익숙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머니의 그날 그런 태도가 바로 그런 것이려니 여겼다. 그래서 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인다던가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 채 언제나처럼 된장국이나 청국장 뭐 그런 것들로 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어머니의 식욕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아예 한두 숟갈 정도에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머니의 식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뭐라고나 할까, 잔병 치레가 많았던 40대 이전 시절은 빼고 그 이후로는 내가 아는 한 전라도 말로 해서 '깨지락거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아이들이 밥상 앞에서 숟가락으로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라치면 "저런 호랭이나 물어갈"이라고 당당하게 아주 자신만만하게 호통을 치곤 하셨던 거다.
당신의 몫으로 차린 밥 한 그릇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남긴 밥까지도 깨끗하게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이 해온 어머니, 그것이 비록 이 세상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숙명처럼 안고 태어난 청소습관이라 하더라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남은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우는 어머니의 그것은 청소의 의무만으로는 해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가 이를테면 '왕성한 식욕'이라는 다섯 음절로 정리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왕성한 식욕은 연세가 예순을 넘고 일흔을 넘어 마침내 중증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작년 같은 경우 여름 무더위 속에서 밥이고 뭐고 당최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은 한 공기의 절반도 처리를 못해서 남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망각의 제왕이라는 치매 덕택으로 더위마저 망각해 버렸는지 식욕 전선에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밥그릇 앞에서 숟가락으로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아가시려고 저러나" 입으로는 차마 말을 못하고 혼자 그런 생각이나 하던 어느 날 바람이나 쐬자고 밖으로 나갔다가 점심 때 식당에 들러 순대국 한 그릇을 시켰다. 어머니의 식욕이 반으로 줄었으니 한 그릇으로 나눠먹자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머니는 나눠놓은 순대국을 뭐라고나 할까. 조금 방정스럽게 표현을 하자면 무슨 걸신이라도 들린 듯이 씹지도 않고 연거푸 입 안으로 떠 넣는다기보다 아예 퍼넣고 계시는 거였다.
그제야 비로소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고깃국, 고깃국, 어머니가 지금 아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건가? "오 마이 마더, 마이 마더" 혼자서 그렇게 혀에 붙지도 않는 영어까지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돼지고기 한 근을 샀겠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것으로 국을 끓였겠다. 그 뒤의 상황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로 정리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아니 엄마, 엄마가 고양이과였어? 돌겠네 진짜."
그리고 그날 저녁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주 옛날, 옛날도 오랜 옛날에 내가 직접 읽었던가 누구에게 들었던가 하여튼 노모를 모시는 아들이 고기를 구하다가 못구해서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국을 끓였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끌어안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들여다보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사람이 늙으면 고깃국이 필요하다는 교훈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던 그 이야기가 비로소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이제 알겠어? 이제 이해가 돼? 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시작되었다. 날마다 내 손으로 고기를 썰고 끓이는, 된장국과 고깃국을 각각 다른 냄비에 끓여야 하는 일종의 이중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한때이겠거니, 잠시 그러다 마시겠거니 했는데 웬걸, 웃기지 말라 이놈아, 하는 듯이 어머니는 고깃국과 된장국을 아주 명석하고 분명하게 식별을 하시는 거였다.
한 번은 실험으로 된장국에 고깃국을 섞어서 드려 보았다. 했더니 그 앞에서 보여주신 어머니의 태도가 어찌나 포복절도하게 웃기던지 내가 그만 웃다가 배터져 죽을 뻔했다. 숟가락으로 국을 뜨는 것이 아니라 마치 톱질이라도 하듯 슥삭슥삭 그야말로 재주도 좋게 분별을 해서 우거지 같은 것이 숟가락에 잡히면 뒤로 밀어내고 고기가 들어오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 분별이 어찌나 정확하던지 어린 시절 방앗간에서 보았던 석발기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돌이나 쌀이나 거의 비슷한 무게와 크기를 가졌는데도 쌀은 쌀대로 돌은 돌대로 분리가 되는 그 석발기 말이다. 하여튼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 한 마디밖에.
"어매, 진짜네. 우리 어머니가 아주 육식주의자가 돼 버렸네 잉?"
그리고 또 한 마디. "엄마 원래 고양이과였어?"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몇 번씩이나 절로 나오지만, 어머니는 그게 뭔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시니까 겨우 한다는 말씀이 이렇다. "고양이? 아이고 그놈의 고양이 소리 듣기 싫어."
"고기가 그렇게 좋아요?"
"고기? 뭔 고기?"
"아 고깃국이 아니면 밥을 못 먹잖어."
"이잉, 이것이 뭔 고기간디."
"고기가 아니라니? 그럼 이것이 뭐여?"
"밥이제."
"밥? 밥? 호오, 밥이네, 그렇네 말 되네 잉? 사자가 토끼를 잡으면 그것은 이미 토끼가 아니고 고기도 아니 밥일 테니, 아 참 명언이네. 고기는 고기가 아니라 밥이다. 잉?"
이렇게 어머니는 날마다 명언 명구를 생산해 내시지만, 그러나 정작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듣는 아들이 그저 명언 명구라고 해석을 할 뿐. 하긴 명언이란 게 어디 처음부터 명언을 만들겠다고 한 말이 있으랴.
'실가리'나 아욱으로 끓인 된장국 속에서도 정확하게 고기나 생선만 골라내서 입에 넣는 어머니, 아, 이게 뭐냐. 내가 어머니를 통해 삶의 어떤 것을 배우고자 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건 너무나도 놀랍다.
이 질문은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진행이다. 하긴 과거의 질문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놀랍다고, 기가 막힌다고, 어이가 없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도 않으리라.
▲ 고기로 끓인 국에 밥을 말면 밥알 한 톨 남깆지 않는 어머니의 밥그릇 ⓒ 김수복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봄 꽃들이 막 피어나는 4월에 고종사촌 형님댁을 갔었다. 어머니가 늘 질부, 질부, 하시던 바로 그 질부와 잠깐이나마 좋은 시간을 갖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갔는데 마침 가는 장날이라고 읍내에 사는 조카가 양념치킨을 사 들고 와서 막 먹으려 하는 중이었다. 먹던 중인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먹으려고 형님과 조카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형수님께서는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야채 등등을 꺼내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들어선 외숙모를 보고 어머니의 질부께서는 "오매 이거 누구여, 누구여, 외숙모, 외숙모"하고 마치 기관총을 쏘아대듯이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에 일어선 형님께서는 눈에 벌써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자기 마누라의 비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때가 오자 "외숙모, 아이고 외숙모"하고 울먹이는 소리를 베이스 톤으로 깔며 두 팔로 어머니를 안다시피해서 밥상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잘 왔다, 잘 왔다"하시는 거였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하여튼 도무지 말로는 다하지 못할 복잡한 감격적인 시간 뒤에 모두가 밥상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것을 아들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형수께서는 떡이며 과일이며 과자며 무엇이며 하여튼 냉장고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꺼내다가 밥상 위에 마치 무슨 제삿상을 차리듯이 진열을 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자꾸 양념치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것이 뭐여, 저것이 뭐여" 하시는 거였다. 그때마다 형수께서는 과자나 떡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어머니의 입에 넣어주거나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양념치킨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입에 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이 오물오물해서 삼키지만 손에 쥐어진 것은 슬그머니 도로 놓아버리고 손가락으로 양념치킨을 가리키며 "저것이 뭐여"하시는 거였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어머니가 양념치킨이 풍기는 특유의 냄새로부터 이를테면 회가 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양념치킨이라는 것이 원래 생김새가 보통 음식들과는 다르게 이상하니까, 그래서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가는 것이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하도 자꾸 그것을 가리키니까 형수께서 마침내 "이거 하나 잡숴 보실라요"하고 다리 하나를 손에 쥐어드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세상에, 세상에 신기한 일도 그런 신기한 일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또 이상한 일이었다. 가령 옥수수라든가 참외 같은 것을 드리면 어머니는 이가 안 좋아서 못 먹는다고 물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딱딱하고 뜯기도 곤란한 양념치킨은 어떻게 그리도 쓱쓱 척척 물어 뜯어서 꿀꺽꿀꺽 삼키는 것인지 정말로, 정말로 구경거리도 그런 구경거리가 없어서 우리는 한참이나 넋을 놓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그날 양념치킨 한 마리 가운데 최소한 삼분의 이 정도를 혼자서 다 드셔 버렸다. 어린 조카들이 두어 쪽 먹은 것 외에는, 스무 살 이상의 어른들은 감히 양념치킨에 손도 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거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머니의 그 식욕을 일종의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안 하던 일을 아주 익숙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머니의 그날 그런 태도가 바로 그런 것이려니 여겼다. 그래서 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인다던가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 채 언제나처럼 된장국이나 청국장 뭐 그런 것들로 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어머니의 식욕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아예 한두 숟갈 정도에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머니의 식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뭐라고나 할까, 잔병 치레가 많았던 40대 이전 시절은 빼고 그 이후로는 내가 아는 한 전라도 말로 해서 '깨지락거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아이들이 밥상 앞에서 숟가락으로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라치면 "저런 호랭이나 물어갈"이라고 당당하게 아주 자신만만하게 호통을 치곤 하셨던 거다.
당신의 몫으로 차린 밥 한 그릇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남긴 밥까지도 깨끗하게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이 해온 어머니, 그것이 비록 이 세상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숙명처럼 안고 태어난 청소습관이라 하더라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남은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우는 어머니의 그것은 청소의 의무만으로는 해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가 이를테면 '왕성한 식욕'이라는 다섯 음절로 정리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왕성한 식욕은 연세가 예순을 넘고 일흔을 넘어 마침내 중증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작년 같은 경우 여름 무더위 속에서 밥이고 뭐고 당최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은 한 공기의 절반도 처리를 못해서 남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망각의 제왕이라는 치매 덕택으로 더위마저 망각해 버렸는지 식욕 전선에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밥그릇 앞에서 숟가락으로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아가시려고 저러나" 입으로는 차마 말을 못하고 혼자 그런 생각이나 하던 어느 날 바람이나 쐬자고 밖으로 나갔다가 점심 때 식당에 들러 순대국 한 그릇을 시켰다. 어머니의 식욕이 반으로 줄었으니 한 그릇으로 나눠먹자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머니는 나눠놓은 순대국을 뭐라고나 할까. 조금 방정스럽게 표현을 하자면 무슨 걸신이라도 들린 듯이 씹지도 않고 연거푸 입 안으로 떠 넣는다기보다 아예 퍼넣고 계시는 거였다.
그제야 비로소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고깃국, 고깃국, 어머니가 지금 아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건가? "오 마이 마더, 마이 마더" 혼자서 그렇게 혀에 붙지도 않는 영어까지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돼지고기 한 근을 샀겠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것으로 국을 끓였겠다. 그 뒤의 상황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로 정리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아니 엄마, 엄마가 고양이과였어? 돌겠네 진짜."
그리고 그날 저녁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주 옛날, 옛날도 오랜 옛날에 내가 직접 읽었던가 누구에게 들었던가 하여튼 노모를 모시는 아들이 고기를 구하다가 못구해서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국을 끓였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끌어안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들여다보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사람이 늙으면 고깃국이 필요하다는 교훈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던 그 이야기가 비로소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이제 알겠어? 이제 이해가 돼? 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시작되었다. 날마다 내 손으로 고기를 썰고 끓이는, 된장국과 고깃국을 각각 다른 냄비에 끓여야 하는 일종의 이중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한때이겠거니, 잠시 그러다 마시겠거니 했는데 웬걸, 웃기지 말라 이놈아, 하는 듯이 어머니는 고깃국과 된장국을 아주 명석하고 분명하게 식별을 하시는 거였다.
한 번은 실험으로 된장국에 고깃국을 섞어서 드려 보았다. 했더니 그 앞에서 보여주신 어머니의 태도가 어찌나 포복절도하게 웃기던지 내가 그만 웃다가 배터져 죽을 뻔했다. 숟가락으로 국을 뜨는 것이 아니라 마치 톱질이라도 하듯 슥삭슥삭 그야말로 재주도 좋게 분별을 해서 우거지 같은 것이 숟가락에 잡히면 뒤로 밀어내고 고기가 들어오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 분별이 어찌나 정확하던지 어린 시절 방앗간에서 보았던 석발기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돌이나 쌀이나 거의 비슷한 무게와 크기를 가졌는데도 쌀은 쌀대로 돌은 돌대로 분리가 되는 그 석발기 말이다. 하여튼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 한 마디밖에.
"어매, 진짜네. 우리 어머니가 아주 육식주의자가 돼 버렸네 잉?"
그리고 또 한 마디. "엄마 원래 고양이과였어?"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몇 번씩이나 절로 나오지만, 어머니는 그게 뭔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시니까 겨우 한다는 말씀이 이렇다. "고양이? 아이고 그놈의 고양이 소리 듣기 싫어."
"고기가 그렇게 좋아요?"
"고기? 뭔 고기?"
"아 고깃국이 아니면 밥을 못 먹잖어."
"이잉, 이것이 뭔 고기간디."
"고기가 아니라니? 그럼 이것이 뭐여?"
"밥이제."
"밥? 밥? 호오, 밥이네, 그렇네 말 되네 잉? 사자가 토끼를 잡으면 그것은 이미 토끼가 아니고 고기도 아니 밥일 테니, 아 참 명언이네. 고기는 고기가 아니라 밥이다. 잉?"
이렇게 어머니는 날마다 명언 명구를 생산해 내시지만, 그러나 정작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듣는 아들이 그저 명언 명구라고 해석을 할 뿐. 하긴 명언이란 게 어디 처음부터 명언을 만들겠다고 한 말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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