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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재앙'으로 변하고 있는 국민의료비

OECD평균에 도달해도 사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등록|2010.07.20 17:04 수정|2010.07.20 17:04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비중이 OECD평균에 도달하는 '꿈'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꿈인 이유는 대다수 OECD국가들은 이러한 국민의료비수준에서 보장성(전체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비율)이 80%를 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질병에 걸려도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으며,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에 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꿈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OECD평균 수준에 근접하고, 곧이어 추월할 단계까지 왔지만,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은 오히려 하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량)대비 국민의료비가 2007년에 6.8%라고 발표했다. 2007년 우리나라 GDP가 1천조 원가량이었으니 국민의료비는 약 68조원인 셈이다. OECD평균은 8.9%였다. 그러나 증가율 속도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다수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이 가입해 있는 건강연대가 지난 4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국민의료비 평균증가율이 OECD국가가 1.5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 3배가 훨씬 넘는 5.22%였다.

우리나라의 2007년 6.8%는 1990년의 OECD평균과 같은 수준이다. OECD국가들이 2007년의 8.9%에 이르는데 18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3배 이상 빠른 증가속도 때문에 6년만인 2013년에 8.9%를 넘어 9.21%가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5년 후인 2015년에는 10.20%로 OECD평균인 10.05%를 추월한다. (첨부 문서에 있는 '표1' 참조)

이러한 국민의료비증가 분석은 보건복지부가 용역을 의뢰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작년에 내놓은 투자개방형의료법인 최종보고서의 추계결과와도 거의 일치한다. 보고서는 '1991년 이후 GDP 대비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제일 높으며, 최근 5년간 GDP 대비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OECD평균의 3.6배'라고 밝혔다. OECD평균이 1.4%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5.1%였다. 또한, 최근 11년간인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 GDP 증가율이 6.6%였지만,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11.2%로 2배 가량이나 높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GDP와 국민의료비 증가율이 이런 추세대로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2015년 또는 2016년경에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이 10.0%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첨부 문서에 있는 '표2' 참조)

과거 건강보험 보장성은 매년 상승하여 2004년 61.3%에서 2007년에는 64.6%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8년엔 62.2%로 급전직하했다. 국민의료비 증가와 함께 꾸준히 확대되던 건강보험 보장성이 터닝 포인트를 찍은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데 있다. 우리 국민은 OECD국가만큼 의료비를 부담하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점점 떨어지는 '악순환 구조'에 이미 갇혀 있다.          

2009년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39조원이었다. 30조원은 건보공단이 부담했고, 9조원은 환자가 부담한 법정본인부담금이다. 전년대비 12.8%가 증가한 규모다. 여기에 비급여를 합하면 2008년의 보장성 62.2%를 기준으로 해도 건강보험을 통해 지출한 의료비는 최소 48조원이 넘는다. 국민의료비는 건강보험급여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재원에 의한 의료부문지출에 사적 부담인 민간의료보험지출 등을 합한 금액이다.

국민의료비의 가공할만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상승이 아닌 하강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보험 보장성과 공공재원 지출이 국민의료비의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가구당 월평균 14만원의 민간의료보험료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가구당 월평균 보험료 66,916원의 2배가 넘는 액수이다. 암 등 중병에 걸렸을 때 건강보험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낮은 보장성이 사적 의료비 부담을 가속화하는 진원지인 셈이다.(첨부 문서에 있는 '표3' 참조)  

전문가들은 2009년 건강보험 보장성은 더욱 하락했을 것이며, 50%대로 추락했을 것으로까지 본다. 그 공백을 빠르게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점령하고 있다. 2008년 민간의료보험 규모는 12조원으로 동년 건강보험의 보험료수입 25조원의 48%였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하락할수록 민간의료보험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가계 부담만 가중시킨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미국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국민의료비는 GDP대비 17%에 육박한다. 민간의료보험 천국인 미국의 보험료는 가구당 월평균 1백만 원이 훨씬 넘는다. 5천만 명에 달하는 무보험자는 맹장염 수술시 1천만 원을, 구급차 이용 및 응급실 외과수술 후 10일 입원하면 1억 원을 내야 한다. 가계파산자의 60% 이상이 과도한 의료비에 의한 것이다.

경제부처나 의료시장주의자들은 급증하는 건강보험급여비를 감내하기가 불가능하므로 필수의료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민간의료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그 길로 빠르게 가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은 올해 1조3천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며 현 구조가 계속되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태롭게 된다.  

최근 10년간 건강보험급여비 증가율은 13.93%였다. 행위별수가제로 인한 진료량 늘이기, 노인인구 급증, 붕괴된 의료전달체계, 과도한 약제비 비중, 과잉 급성기병상수가 주원인이다. 하지만 OECD 대부분 국가들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이를 경험하며 보장성 강화와 함께 의료비증가통제를 위해 매년 의료비를 병원 등 부문별로 지출액을 정하는 총액계약제 등의 관리기전을 확립해 왔다. 그 결과, 국민의료비 증가는 최대한 억제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은 국민 모두가 신뢰하는 수준으로 정착시켰다. 하지만 이들의 선험은 우리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OECD의 각종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대부분 분야에서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평균에 힘겹게 도달한 GDP대비 국민의료비지출은 꿈이 아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의료비 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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