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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춘과 김비서의 이심전심, 재앙이 된 전쟁드라마

<로드 넘버 원>과 <전우>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

등록|2010.07.23 14:33 수정|2010.07.23 14:33

▲ 전쟁보다는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춘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 ⓒ iMBC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두 편의 드라마가 선보인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사이에 둔 바다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전쟁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이들 드라마보다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더 전쟁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스쳐갔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는 데 왜 이리 서툴기만 할까. 대체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 6월 중순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MBC와 KBS 두 방송사가 나란히 두 편의 드라마를 내놓았다. <로드 넘버 원>(수·목 오후 9시55분)과 <전우>(토·일 오후 9시40분). 두 드라마는 두 방송사의 보도 논조만큼이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60년이라는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큼은 별로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전쟁이라는 시공간만을 빌려와 이야기의 무대로 쓰고 있을 뿐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절반의 기억은 잊은 채 절반의 시선으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이라고 다 같은 전쟁은 아니다

두  드라마 모두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간단하게 설명을 해두는 편이 좋겠다. <로드 넘버 원>은 무려 1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으며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 등 최고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쟁으로 뜻하지 않게 뒤엉켜버린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홈페이지에 "가장 극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듯이 전쟁의 고통보다 더한 '사랑의 아픔'을 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한 자리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우>는 70년대에 첫 선을 보인 뒤 80년대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작품으로 약 80억 원을 들였다. 최수종, 이태란, 이덕화 등의 중견 배우들을 내세워 전쟁, 혹은 전쟁 드라마를 추억하려는 중장년층을 겨냥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밝힌 기획 의도는 사뭇 비장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게 하는 것"이다. 1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나, 70~80년대의 높은 인기를 되살리기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로드 넘버 원>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배경'이란 단어에 힘을 줘서 읽어야 한다. 단지 배경으로만 삼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든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전쟁 드라마'라는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들어졌고, 또 6월 25일에 맞춰 이틀 전에 첫 선을 보인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스스로 드라마 위에 역사의 무게를 잔뜩 실었다면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에는 당연히 국군의 수만큼 많은 인민군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대사는 물론 특별한 표정도 없다. 그저 숨어서 총을 쏘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 그뿐이다. 이들은 이야기, 그것도 '사랑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움직이는 소품'들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을 인민군이 아닌 고대 오랑캐로 바꾸거나 심지어 외계인으로 바꿔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가장 극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상황과 소품만 있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60돌이라는 계기가 드라마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탓이었든, 아니면 안보 의식이 약해지는 것을 못 견디는 보수 정권의 눈치를 본 탓이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가져다 쓴 기획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해 보인다. 단지 전쟁이라는 배경이 필요했다면 차라리 '나로호' 발사에 맞춰 한국판 <스타워즈>를 시도해보는 건 어땠을까.

여전히 반쪽 뿐인 전쟁의 기억

▲ KBS 드라마 <전우>에서 이현중 분대장으로 분한 최수종. ⓒ KBS


KBS가 만든 <전우>는 처음부터 '반공 드라마'의 부활을 꾀한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었다. 아마 제작진들도 이러한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0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민군이 아닌 중공군과의 대결 구도를 만듦으로써 초반에 있을지 모를 이념 논란을 비껴가려는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김형일 책임프로듀서의 말에도 이런 의도가 엿보인다.

"옛날처럼 반공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 드라마를 지원한 국방부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배달의 기수'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제작진이나 국방부나 이 드라마를 통해 전쟁과 안보에 대한 경각심, 전우애가 고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이상 연합뉴스, 2010.7.11)

"전쟁과 안보에 대한 경각심"에서는 여전히 '반공'을 향한 욕망이, "전우애가 고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전쟁'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건 필자의 지나친 반응일까. 어쩌면 국방부는 '노골적이지 않은' 반공 드라마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우>를 보며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년)라는 미국 드라마를 떠올린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두 한국 드라마 모두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시가전을 비롯한 전투 장면에서 보이는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그들을 쫓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큰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매 편마다 부대원들 개개인의 에피소드를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전우>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달리 임무의 완수, 즉 '전투의 승리'라는 고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부하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지휘관으로서의 자괴감 등 군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아픔을 담아내려 애쓰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전히 적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있다. 그런 점에서 <전우>는 '우리 편'을 위한 드라마이자, '우리 편'이 기억하는 절반의 전쟁만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담긴 전쟁의 기억

▲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독일군 장교가 연설하는 장면. ⓒ HBO


<밴드 오브 브라더스> 역시 미국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독일군에게 카메라를 비추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균형감 있는 드라마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는 승리라는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다. 그저 사실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장에 던져진 젊은이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낼 뿐이다. 이념의 무게와 영웅주의의 허상을 벗어던지고 오직 '인간'을 향해 정직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념으로부터도, 영웅주의로부터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전우>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장면 하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군에 투항한 독일군 장교가 독일군 포로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군들에 둘러싸인 채 짧은 연설을 들으며 울먹이던 초췌한 독일군 포로들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마도 옳든 그르든 그들에게도 싸워야 할 이유는 있었고, 그들에게도 전쟁은 똑같은 크기의 고통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우리 드라마에서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진정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글의 첫머리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대체 우리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까.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1일 오전 미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한미 연합훈련을 위해 해군작전 사령부 부산기지에 입항했다. '불굴의 의지'로 이름 붙여진 이번 훈련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맞서 중국 인민해방군 역시 지난 17~18일 산둥성 옌타이 부근, 즉 우리 서해에서 무기 수송 훈련을 벌였다. 애써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중국이 다시 조용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60년의 세월에도 한반도의 현실은 여전히 전쟁으로부터 그리 멀리 와있지 않다.

군대에 다녀온 이라면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라틴어 격언을 숱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은 사실 틀렸다. 전쟁을 준비하면 그만큼 전쟁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갈등 관계에 놓인 두 세력 가운데 어느 한쪽이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두 세력 사이의, 또는 지역 전체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보면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 수천년 전의 격언은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로 바뀌어야 한다.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결코 또 다른 전쟁을 위해서는 아니다.

결국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60년이 지나도록 절반의 아픔과 절반의 승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드라마의 시선은 안타깝기만 하다. 전쟁의 아픔은 남과 북 모두의 것이었고, 전쟁의 승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 모두에게 깊고 깊은 상처만을 남겼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떠올려야 할 전쟁의 기억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파라마운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는 떨어져나간 한쪽 팔을 나머지 한쪽 팔로 들고 선 군인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간다. 두 편의 한국 드라마를 보며 문득 넋을 잃은 채 서있던 그 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달리 어찌할 수도 없는 한쪽 팔의 존재.

어쩌면 한국 드라마는 6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잘려나갔던 한쪽 팔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영영 잃어 버릴지도 모르는 팔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전장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승리에 대한 강박도, 이념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오로지 전쟁의 포화 속에 던져진 모든 '인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겪은 전쟁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드라마가 우리의 전쟁을 올바로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현실에 드리워진 오랜 전쟁의 그림자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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