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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로 얼굴 가리는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고?

프랑스 하원, 부르카 착용 반대 법안 통과... 똘레랑스는 어디로

등록|2010.07.22 17:45 수정|2010.07.22 17:45

▲ 이슬람 전통의상인 '부르카'를 뒤짚어 쓴 아프칸 여인들 ⓒ manas


다민족이 섞여 사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어느새 20년이 넘었습니다. 사는 동안 한국의 고유 의상인 한복을 얼마나 많이 입었는가 생각해 보면 아이들 백일, 돌잔치 때, 송구영신 예배 때, 커뮤니티 큰 행사가 있을 때를 모두 손꼽더라도 20회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상 중에 자신의 고유의상을 꼭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만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특히,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온 여인들과 중동지방에서 온 여인들이 그들입니다. 미국 생활 초기에는 거리에서 그 이들을 만나면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저리 치렁치렁한 옷을 두르고 다니는가 매우 답답해 보였고, 현대 여성으로 살려면 일단 저 옷부터 벗어 던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검은 부르카를 입은 그녀,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그런 옷을 입은 여인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봅니다. 답답한 눈초리가 아니라 조금은 부러운 눈빛으로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 어느 몰 안에서 저는 우연히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쇼핑 나온 무슬림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얼굴을 내놓는 히잡이 아니라 눈만 살짝 내놓은 전통적인 검은 부르카를 입고 있었는데 저는 그 모습이 예뻐 보였습니다. 갈 길이 바쁘지만 않았다면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말을 건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신체를 모두 드러내고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덥다, 더워!"를 연발하는 이 복중에 입기에 적당한 옷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옷차림이 제 마음을 끄는 이유는 벌거벗다시피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 질려서이기도 하거니와 시대와 편리 그리고 남의 눈에 상관없이 자신의 것을 지키는 이들이 새삼 대단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13일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입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제 1야당인 사회당 소속 의원들의 대부분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찬성 335표, 반대 1표로 말입니다.

현재 프랑스 인구 6400만 명 중에 무슬림 인구는 500만 명으로 유럽 국가 중에는 가장 많은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부르카를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은 약 2000명에 불과합니다. 찬성론자들은 무슬림들의 전통의상인 부르카와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이며 극렬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부르카를 착용하고 도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화비평가들은 이는 세속문화를 표방하고 있는 프랑스가 더 이상 종교적인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며 현재 여당의 지도자인 장 프랑수아 코페가 보수 우익을 끌어 모으기 위한 정치적인 책략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글쎄요. 직접 묻지 않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2010년 7월 현재 소수의 권익과 인권이 가장 잘 보장되어 있다는 바로 그 프랑스에서 자신이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라면 부르카를 착용할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이어 프랑스도 옛날의 프랑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똘레랑스'의 대명사 프랑스의 모순

약 10년 전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씨의 책으로 한국 사회에 널리 소개된 '똘레랑스'. 지난 봄에 그는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라는 제목으로 필리프 사시에의 책을 번역해 내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똘레랑스'란 '자기와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용인하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종교에서 비롯된 '똘레랑스'는 문화 전반에 걸쳐 나와 다른 가치와 차이를 받아들이고 용인한다는 의미로 쓰이며 지금까지 프랑스의 그것이 가장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부르카 금지 사건은 다른 나라도 아닌 '똘레랑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그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만일,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한인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무기를 감출 소지가 있으니 한국 여성들은 절대로 공공장소에서 폭이 넓고 길이가 긴 한복을 입을 수 없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할까요? 순순히 그렇게 따라가야 할까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내가 기독교인이고 식사 때 마다 잠시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해 내 신앙을 표현하고 싶다면 공공장소에서라도 식사 시간에 혼자 잠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의 자유이고 그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슬림 여인이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부르카를 쓰는 것을 택했다면 그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겠지요.

상원의원에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정할지 예견할 수 없으나 무슬림 여인의 부르카 착용 여부는 무슬림 여성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 앞에서 친절하게 웃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상대할 수 있느냐고 부르카 금지 법안 찬성자들은 말합니다. 그 이들에게 한 번 '툭' 던져 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의 면전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을 다 믿느냐고.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중앙일보 애틀랜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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