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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빚고, 오줌 삭히는 신참농부, 천호균·정금자 부부

농사가 예술이다

등록|2010.07.25 10:00 수정|2010.07.26 11:30
7월 23일, 헤이리에 참 헤이리다운 공간 하나가 더 문을 열었습니다. 그 집은 은행마을의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입니다. 천호균 선생님의 또 다른 공간입니다.

은행마을의 급경사진 비탈에 있는 그 땅에 어떤 공간이 들어설지 궁금증을 참으며 1년을 기다렸습니다.

"몇 개의 오두막을 지어 오솔길로 연결했으면 해요."

천 선생님은 이태 전 그 땅에 어떤 집을 지을지에 대한 구상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그 모습을 드러낸 공간은 '오두막'은 아니라도 각기 다른 독립된 오두막처럼 개성 있는 공간이 연결된 집이었습니다. 사실 그 집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작정하고 튀게 만든' 7개의 공간이 아니라 건물 안에 품은 자연이었습니다. 집안에 오솔길이 있고 옥상에 텃밭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천호균 선생님은 '쌈지'라는 기업을 '아트'하게 경영해 오셨던 분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텃밭을 제공하고 그 영감을 쌈지의 아이디어로 활용한 제품의 디자인혁신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예술과 문화를 접목시켰습니다.

그 분이 헤이리로 이사 오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자연성으로의 회귀입니다. 정원의 일부분에 상추와 오이를 심었고 일주일 뒤 싹이 돋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작은 알갱이에 '불쑥' 흙을 박차고 나오는 에너지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은 대처에서 나고 대처사람으로 살아온 천 선생님에게 큰 깨달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원 모퉁이에 작은 남새밭을 일구어 서툰 농부의 흉내를 내는 일은 헤이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모든 사람들이 하는 '전원예찬'입니다.

그러나 천 선생님의 행보는 전원에 사는 사람의 가취佳趣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헤이리 밖에 밭을 빌어 정말 '농사'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구호를 걸고 더스텝광장에 '농사예술장터'를 열어 파주와 인근 농부들의 건강한 먹거리들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행사도 열었습니다.

'쌈지농부'와 '어린농부'의 법인도 만들어졌습니다. '지렁이다'같은 농산품과 친환경, 재활용 제품을 전시, 교육, 판매하는 매장도 문을 열었습니다. 사업이라는 것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대책 없는 비즈니스'로 보이지만 이런 생태와 결합한 리사이클링 샵은 이처럼 일찍 철든 개인이 아니면 관에서라도 나서야 할 화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 5일, 농사예술장터에서 천 선생님 부부와 막걸리를 한잔했습니다. 그 때 정금자사모님이 막걸리학교의 학생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천 선생님은 책을 보면서 똥과 오줌을 삭이는 법을 배우면서 건강한 순환에 대해 몸으로 체험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요.

▲ 막걸리를 빚는 정금자사모님 ⓒ 이안수


농부의 아들로서 '농사의 고달픔'을 너무나 잘 아는 저로서는 대처사람들이 밀짚모자 쓰고 장화 신고 괭이 든 모습으로 '농부입네'하는 모습을 보면 내심 '굵은 땀방울과 소낙비 그리고 허리가 끊어질 만큼 씨름해야 하는 농사'를 취미와 장식으로 여기는 듯해서 내심 얕잡아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똥과 오줌을 삭여 건강한 거름으로 만드는 정도라면 경우가 달랐습니다. 이것은 작정하고 농부가 되어보겠다는 결심이 아니면 실행하기 어려운 과정입니다.

이즘 천 선생님은 '생태, 순환, 나눔, 생명' 등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는 화급한 사안들에 푹 빠져지내는 모습입니다.

▲ 농사꾼이 된 천호균선생님 ⓒ 이안수


'기운'을 품은 작은 씨앗이 순으로 돋고 그것이 자라 풍성한 열매를 다는 모습보다 더 창조적인 현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창의성입니다. 그러므로 '농사가 예술'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렁이는 흙을 기름지게 일구는 땅속의 일등 농부이고, 농부는 흙속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입니다.

저의 이웃인 천호균, 정금자부부. 이 신참 농부 부부가 흙과 그 흙속의 뭇 생명들과 점점 더 친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제게도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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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논밭예술학교'란?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모토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주)쌈지농부가 기획하고 7명의 아티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7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식의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작가들의 레지던시프로그램이 가능한 3개의 아트룸과 2개의 갤러리 공간, 까페 및 레스토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공간은 작가들이 한 공간씩을 할당받아 건축설계단계부터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여 작가는 박기원, 최정화, 강운, 이미경, 이진경, 천대광, 천재용입니다.

빗물 정화시스템과 한약재발효 퇴비를 이용해 가꾸는 소박한 옥상 텃밭이 있으며, 건축 부지 내에 있던 참나무들을 옮겨두었다가 다시 제 땅으로 들여오는 등 '비용'보다 자연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 공간입니다.

7개의 각 공간에서는 기획 전시, 생태 강연, 우리 땅에서 나는 먹거리들을 온전히 잘 먹을 수 있도록 실험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문성희의 자연요리, 어린 아이들이 다양한 입맛을 체험하고 식사예절도 배울 수 있는 어린이 식교육 워크샵, 막걸리 학교, 리사이클 디자인. 드로잉 교실 등 예술과 생태,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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