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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왜 가죠? 집 옆에 생협이 있는데"

생협, 대형마트에 무너지는 지역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등록|2010.08.26 10:25 수정|2010.08.26 10:25

▲ 지난 23일 오전 이정주 아이쿱(iCOOP)생협연합회 이사장이 양천생협 신정점 매장을 기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 선대식


지난 7월 23일 오전 서울 양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신정점 매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두 번 놀랐다. 먼저 매장에 유기농산물 정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스크림·라면·과자 등 가공식품뿐 아니라 유기농 순면 의류도 보였다. '친환경 마크'가 선명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가격이다. 조합원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파는 친환경 식품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생협 조합원은 매장에서 2800원만 내면 유기농 두부 420g 제품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같은 돈을 내면 살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 두부의 용량은 340g이다.

이렇다보니, 191㎡(58평) 규모의 생협 매장은 종일 조합원들로 분주했다. 이정주 아이쿱(iCOOP)생협연합회 이사장은 "불과 50m 떨어진 곳에 매장규모가 1.5배인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섰지만, 큰 타격은 없다"고 말했다.

가격 싸고 질 좋은 생협 매장... 조합원 숫자도 빠른 성장세

"대형마트에 굳이 갈 필요가 있나요? 집 근처에서 친환경 먹을거리를 싸게 살 수 있는데."

일주일에 두세 차례 생협 매장에서 장을 본다는 조합원 강은혜(47)씨의 말이다. 장바구니에는 우리 밀, 상추, 마요네즈 등이 담겼다. "제품 가격이 비싸서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형마트에 가면 필요 없는 것까지 한꺼번에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강씨는 "대형마트와 비교해 싼 게 많다"고 말했다. 조합원은 일반 가격보다 평균 15~20% 싸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협에 가입할 때 내는 조합원 출자금(탈퇴할 때 돌려받음)에 매월 1만3000원만 내면, 양천생협 조합원 자격이 유지된다.

인근 기업형 슈퍼마켓과 몇 개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보니, 생협 매장이 더 쌌다. 이곳에서는 2만5000원이면 친환경 쌀 10kg를 살 수 있지만, 기업형 슈퍼마켓에서는 친환경 쌀 8kg을 2만9800원에 팔았다. 양천생협 신정점 매니저 김영규씨는 "대형마트나 대기업 브랜드 제품이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주 이사장은 "양천생협에서만 1000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A마크를 도입해 식품의 신뢰도와 안정성을 대기업 제품보다 더 높였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A마크를 통해 친환경 식품의 생산이력, 유통, 가공처리 과정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역에서 신뢰를 쌓은 양천생협에 대한 입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다. 현재 조합원 2600명이 이곳 생협 매장을 이용하고 있고, 매달 50명씩 조합원이 늘고 있다. 월 매출은 2억3천만 원에 달한다. 조합원 박영수(35)씨는 "가격이나 제품의 질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며 "주위에 생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고, 다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통 장악한 대형마트, '걸음마' 생협... 가야 할 길 멀다

▲ 지난 23일 오후 자연드림 양천생협 신정점에서 한 주부가 친환경 유기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 선대식


이정주 이사장은 "생협 가구 수가 전체 가구의 3%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는 바닷물이 썩지 않게 하는 3%의 소금이 가진 역할에 비유한 것이다. 현재 전국 생협 조합원 수는 약 50만 명. 아이쿱생협연합회의 경우, 9만2천 명의 조합원이 있다.

한국에서 생협은 1980년대에 탄생했다. 당시 한국은 경제성장을 통해 대량생산·소비 사회에 진입하면서 농약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가 커진 도시 소비자들이 농산물 직거래 운동 등에 나선 것이 생협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생협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못했다. 생협을 경제 사업이 아닌 공동체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다보니, 경영 실패가 잇달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231개 지역생협 중 66.7%인 154개가 해체됐다. 이후, 지역 생협끼리 연합해 공동 물류를 이뤄낸 후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값싸고 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면서 생협은 자리를 잡게 됐다.

'생협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생협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2008년 스위스 소비자협동조합이 까르푸 매장 12곳을 인수하는 등 생협이 경제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대형마트가 유통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연합회의 작년 매출은 2100억 원. 같은 기간 대형마트업계 1위인 이마트를 보유하고 있는 신세계의 매출액이 12조7358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기업형 슈퍼마켓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생협을 비롯한 동네 가게들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2017년 생협, 지역경제 자생력 유지하는 버팀목 될 것"

▲ 지난 23일 오후 고객들로 분주한 자연드림 양천생협 신정점의 모습. ⓒ 선대식


하지만 지역 경제를 무너뜨리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그 대안으로 생협이 주목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70여 개인 아이쿱생협연합회 소속 생협 매장이 올해에만 30여 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정주 이사장은 "대형마트에서는 최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자를 압박한다, 그 이익은 대부분 자본가들이 나눠 갖는다"며 "반면, 생협은 생산자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품의 적정가격을 유지하고, 이윤은 조합원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밝혔다.

아이쿱생협연합회에서만 일자리 1000개가 만들어졌다. 특히, 2000년대 초 생협에서 우리 밀 살리기 운동과 베이커리 사업을 통해 당시 0.2% 미만이던 밀 자급률을 1%로 끌어올려, 농촌 경제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 등 다양한 지역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아이쿱생협연합회는 2013년까지 충북 괴산군 일대에 594만㎡(180만 평) 규모의 유기식품산업단지를 마련하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는 더 싸고 질 좋은 친환경 식품을 서민들에게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해, 대형마트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사장은 "현재의 성장세를 유지하면, 2016~2017년까지 조합원 50만 명(가구당 한 조합원이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50만 가구) 확보가 가능하다"며 "그때가 되면, 대형마트의 횡포에 맞서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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