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진쟁이는 중국 삶을 잘 찍겠지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8] 헤이 밍의 <원상정가>
한국 사진쟁이가 한국 삶을 가장 잘 찍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진쟁이가 한국 삶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사람을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진쟁이 스스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헤아릴 수 있다면, 한국 사진쟁이 스스로 내가 부대낀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한국 사진쟁이 스스로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톺아볼 수 있다면, 한국 삶은 한국 사진쟁이가 가장 잘 가장 알뜰히 담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들 가운데 한국 삶을 사진으로 담고자 하는 사람은 뜻밖에 그리 안 많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들 가운데 이름을 얻었거나 이름을 안 얻었거나 나라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유럽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인도라든지 네팔이라든지 티벳이라든지, 또 요사이에는 중국이라든지 곧잘 나다니면서 이들 나라밖 사람들 삶을 당신들 나름대로 곰삭인 느낌을 사진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작 한국 사진쟁이로서 한국 삶은 사진으로 옮기고자 하지 못하거나 않을는지요? 왜 정작 한국 사진쟁이 스스로 한국땅 한국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에는 등을 돌리거나 멀리하거나 손을 놓고 있을는지요? 유럽사람 유럽 삶은 유럽 사진쟁이가 찍도록 할 노릇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중국사람 중국 삶과 티벳사람 티벳 삶은 중국 사진쟁이나 티벳 사진쟁이가 담도록 지켜볼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굳이 나라밖으로 나가 사진일을 하겠다면 무슨 뜻과 마음과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사진이란 '만드는'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찍는' 예술입니다. 사진이란 '지어내는' 문화가 아닙니다. 사진이란 '담아내는' 문화입니다. 사진이란 하늘 높은 데에서 구름을 타 앉고 '내려다보는' 삶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바로 이 땅에서 나와 같은 목숨붙이들하고 부둥켜안거나 얼싸안으면서 '복닥이는' 삶입니다.
나라밖으로 뻔질나게 나다니며 나라밖 사람들 삶을 구경꾼이나 손님으로서 담는 사진쟁이가 꽤 많기는 하지만, 애써 멀리 나가지 않고 요 조그마한 한국땅을 넓게 들여다보면서 한국 삶을 알차고 싱그러우며 곱다시 담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사진밭이라든지 강단 눈치를 보고 재고 따지느라 억지스레 문화나 예술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분들이 퍽 많지만, 사진밭이라든지 강단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즐거운 삶길을 걷는 분들은 당신 사진누리를 눈물과 웃음이 묻어나도록 살가이 이루고 있습니다. 양해남 님이 선보인 <우리 동네 사람들>(연잔통,2003) 같은 사진책이 아주 좋은 보기입니다. 양해남 님은 당신이 태어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충청남도 금산을 '더 살기 좋은 곳'이라거나 '더 살기 나쁜 곳'으로 틀을 지어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으로 느끼며 껴안습니다. 양해남 님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바로 양해남 님 삶이 고루 묻어난 이야기보따리입니다.
중국사람 헤이 밍(黑明) 님이 일군 사진책 <塬上情歌>를 보며 생각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안'이라고 하는 경찰 때문에 나라밖 사람이 중국사람 삶과 터전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 퍽 껄끄럽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공안한테 붙들리거나 사진기를 빼앗길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중국사람이라 하여 중국사람 삶과 터전과 이야기를 마음껏 사진으로 옮겨내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중국사람은 중국사람대로 어려움과 울타리와 가시밭길이 있으니까요. 어느 쪽에 서 있건 더 알차고 싱그러우며 어여쁜 사진을 얻을 수 있지 않아요. 중국 사진쟁이라고 해서 중국 삶을 더 잘 담을 수 있지 않으며, 중국 아닌 한국이나 일본이나 영국 사진쟁이라고 해서 중국 삶을 한결 남달리 바라보며 살뜰히 담을 수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깊이만큼 바라보며 살뜰히 담는 사진입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내 동무와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너비만큼 살피며 오롯이 엮는 사진입니다.
<塬上情歌>라는 사진책은 사진과 글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앞쪽에는 사진이 있고 뒤쪽에는 글이 있습니다. 책을 한손에 쥐고 바닥으로 죽 내리뜨리면 팔랑팔랑 길게 이어집니다. 종이를 풀을 발라 붙인다든지 꿰맨다든지 하지 않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길게 이어지도록 엮어, 가운데에 사람이 있어도 하나도 씹히지 않습니다. 찍은 사람 눈결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다른 엮음새보다, 중국 사진쟁이 헤이 밍 님 손길이 더없이 그윽하구나 싶습니다. <塬上情歌>라는 사진책은 중국 사진쟁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진을 신나고 즐겁게 담아서 당신 이웃뿐 아니라 당신 이웃나라 사람들하고 재미나고 홀가분하게 나눈다고 하는 마음을 보여주거든요. 굳이 꾸밀 까닭이 없고, 애써 덧바를 일이 없으며, 따로 깎거나 숨길 모습이 없습니다. 스스럼없는 삶이요, 기꺼운 사귐이며, 반가운 만남이 사진 하나하나에 알알이 스몄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한테는 어떤 사진이 있는가요. 우리한테는 어떤 사진쟁이가 우리들 살림집 둘레에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가요. 우리 누리에는 어떤 사진책이 우리 삶을 차곡차곡 담았다고 밝히면서 책 하나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가요.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요. 우리한테는 참다이 우리 삶이라 여길 만한 삶이 있기나 있는지요. 돈에 매이고 이름에 매이며 힘에 매인 굴레만 가득한 오늘날이 아닌지요. 가방끈에 매이고 연고주의와 지역차별에 매이며 남녀차별과 계급차별이 넘치는 이 나라가 아닌지요. 비정규직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누구한테나 푸대접을 버젓이 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밑권리 하나 옳게 누리지 못하는 삶터가 아닌지요.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 삶은 몹시 팍팍하고 슬프며 고달픈 삶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팍팍하고 슬프며 고달픈 삶을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알맞게 펼치면서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팍팍한 삶을 팍팍한 삶 그대로 담는 이가 몹시 드문데,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라면, 팍팍한 삶일지라도 하나도 팍팍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이 팍팍한 삶을 고이 받아들이며 사랑스레 즐기는 아름다운 가난이가 우리 둘레에 제법 많은데, 이러한 가난이들 삶을 더욱 살가이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가난하면 가난을 받아들이고, 못 배웠으면 못 배웠음을 부둥켜안는 믿음직한 가난이가 우리 둘레에 늘 있습니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는 좋은 벗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나라 사진쟁이는 팍팍한 삶을 팍팍한 그대로 담지 못하는 가운데, 좋은 벗님을 좋은 벗님 그대로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진쟁이 헤이 밍 님은 두 갈래 삶을 나란히 보듬으며 사진길을 걷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들 가운데 한국 삶을 사진으로 담고자 하는 사람은 뜻밖에 그리 안 많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들 가운데 이름을 얻었거나 이름을 안 얻었거나 나라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유럽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인도라든지 네팔이라든지 티벳이라든지, 또 요사이에는 중국이라든지 곧잘 나다니면서 이들 나라밖 사람들 삶을 당신들 나름대로 곰삭인 느낌을 사진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작 한국 사진쟁이로서 한국 삶은 사진으로 옮기고자 하지 못하거나 않을는지요? 왜 정작 한국 사진쟁이 스스로 한국땅 한국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에는 등을 돌리거나 멀리하거나 손을 놓고 있을는지요? 유럽사람 유럽 삶은 유럽 사진쟁이가 찍도록 할 노릇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중국사람 중국 삶과 티벳사람 티벳 삶은 중국 사진쟁이나 티벳 사진쟁이가 담도록 지켜볼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굳이 나라밖으로 나가 사진일을 하겠다면 무슨 뜻과 마음과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 중국사람은 중국 삶을 가장 잘 담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중국 사진쟁이라 해서 꼭 중국 삶을 가장 잘 담을 수 있지만은 않습니다. 스스로 고이 중국사람이 되어 중국 삶을 꾸리고 있을 때에 비로소 중국 삶을 가장 잘 담는 사진쟁이로 자리잡습니다. ⓒ 최종규
사진이란 '만드는'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찍는' 예술입니다. 사진이란 '지어내는' 문화가 아닙니다. 사진이란 '담아내는' 문화입니다. 사진이란 하늘 높은 데에서 구름을 타 앉고 '내려다보는' 삶이 아닙니다. 사진이란 바로 이 땅에서 나와 같은 목숨붙이들하고 부둥켜안거나 얼싸안으면서 '복닥이는' 삶입니다.
나라밖으로 뻔질나게 나다니며 나라밖 사람들 삶을 구경꾼이나 손님으로서 담는 사진쟁이가 꽤 많기는 하지만, 애써 멀리 나가지 않고 요 조그마한 한국땅을 넓게 들여다보면서 한국 삶을 알차고 싱그러우며 곱다시 담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사진밭이라든지 강단 눈치를 보고 재고 따지느라 억지스레 문화나 예술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분들이 퍽 많지만, 사진밭이라든지 강단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즐거운 삶길을 걷는 분들은 당신 사진누리를 눈물과 웃음이 묻어나도록 살가이 이루고 있습니다. 양해남 님이 선보인 <우리 동네 사람들>(연잔통,2003) 같은 사진책이 아주 좋은 보기입니다. 양해남 님은 당신이 태어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충청남도 금산을 '더 살기 좋은 곳'이라거나 '더 살기 나쁜 곳'으로 틀을 지어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으로 느끼며 껴안습니다. 양해남 님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바로 양해남 님 삶이 고루 묻어난 이야기보따리입니다.
▲ 겉그림. ⓒ 최종규
▲ 사진책 <?上情歌>는 아주 훌륭한 책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즐겁게 돌아보고 넘기며 받아들일 수 있는 고운 사진책입니다. ⓒ 최종규
중국사람 헤이 밍(黑明) 님이 일군 사진책 <塬上情歌>를 보며 생각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안'이라고 하는 경찰 때문에 나라밖 사람이 중국사람 삶과 터전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 퍽 껄끄럽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공안한테 붙들리거나 사진기를 빼앗길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중국사람이라 하여 중국사람 삶과 터전과 이야기를 마음껏 사진으로 옮겨내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중국사람은 중국사람대로 어려움과 울타리와 가시밭길이 있으니까요. 어느 쪽에 서 있건 더 알차고 싱그러우며 어여쁜 사진을 얻을 수 있지 않아요. 중국 사진쟁이라고 해서 중국 삶을 더 잘 담을 수 있지 않으며, 중국 아닌 한국이나 일본이나 영국 사진쟁이라고 해서 중국 삶을 한결 남달리 바라보며 살뜰히 담을 수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깊이만큼 바라보며 살뜰히 담는 사진입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내 동무와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너비만큼 살피며 오롯이 엮는 사진입니다.
<塬上情歌>라는 사진책은 사진과 글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앞쪽에는 사진이 있고 뒤쪽에는 글이 있습니다. 책을 한손에 쥐고 바닥으로 죽 내리뜨리면 팔랑팔랑 길게 이어집니다. 종이를 풀을 발라 붙인다든지 꿰맨다든지 하지 않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길게 이어지도록 엮어, 가운데에 사람이 있어도 하나도 씹히지 않습니다. 찍은 사람 눈결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다른 엮음새보다, 중국 사진쟁이 헤이 밍 님 손길이 더없이 그윽하구나 싶습니다. <塬上情歌>라는 사진책은 중국 사진쟁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진을 신나고 즐겁게 담아서 당신 이웃뿐 아니라 당신 이웃나라 사람들하고 재미나고 홀가분하게 나눈다고 하는 마음을 보여주거든요. 굳이 꾸밀 까닭이 없고, 애써 덧바를 일이 없으며, 따로 깎거나 숨길 모습이 없습니다. 스스럼없는 삶이요, 기꺼운 사귐이며, 반가운 만남이 사진 하나하나에 알알이 스몄구나 싶습니다.
▲ 중국으로 나들이 가는 사람은 많고, 중국에서 이런저런 물건 사 오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나들이를 가서 중국 사진쟁이들 훌륭한 책 하나 사들고 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 최종규
그렇다면 우리한테는 어떤 사진이 있는가요. 우리한테는 어떤 사진쟁이가 우리들 살림집 둘레에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가요. 우리 누리에는 어떤 사진책이 우리 삶을 차곡차곡 담았다고 밝히면서 책 하나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가요.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요. 우리한테는 참다이 우리 삶이라 여길 만한 삶이 있기나 있는지요. 돈에 매이고 이름에 매이며 힘에 매인 굴레만 가득한 오늘날이 아닌지요. 가방끈에 매이고 연고주의와 지역차별에 매이며 남녀차별과 계급차별이 넘치는 이 나라가 아닌지요. 비정규직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누구한테나 푸대접을 버젓이 하고 있으며,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밑권리 하나 옳게 누리지 못하는 삶터가 아닌지요.
▲ 죽 펼쳐서 보도록 엮은 사진책이 퍽 재미있습니다. ⓒ 최종규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 삶은 몹시 팍팍하고 슬프며 고달픈 삶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팍팍하고 슬프며 고달픈 삶을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알맞게 펼치면서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팍팍한 삶을 팍팍한 삶 그대로 담는 이가 몹시 드문데,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라면, 팍팍한 삶일지라도 하나도 팍팍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이 팍팍한 삶을 고이 받아들이며 사랑스레 즐기는 아름다운 가난이가 우리 둘레에 제법 많은데, 이러한 가난이들 삶을 더욱 살가이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가난하면 가난을 받아들이고, 못 배웠으면 못 배웠음을 부둥켜안는 믿음직한 가난이가 우리 둘레에 늘 있습니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럼없이 손을 맞잡는 좋은 벗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나라 사진쟁이는 팍팍한 삶을 팍팍한 그대로 담지 못하는 가운데, 좋은 벗님을 좋은 벗님 그대로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진쟁이 헤이 밍 님은 두 갈래 삶을 나란히 보듬으며 사진길을 걷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