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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어온 도요타 컨베이어3] 과도한 업무통제·원가절감에 '신 자린고비'된 병원

등록|2010.07.30 16:37 수정|2010.07.30 16:37
최신 경영기법은 수치, 통계, 그로 인한 성과를 중시한다. 입원 대기시간이 몇 시간에서 몇 시간으로 줄었다, X-레이 판독 건수가 몇 건에서 몇 건으로 늘었다, 반창고 사용량이 몇 개에서 몇 개로 줄었다 등 성과의 데이터화가 꼭 이루어진다. 이런 통계화의 밑바탕엔 시스템의 전산화가 깔려 있다. 환자가 몇 시에 원무과에 접수를 하고, 몇 시에 외래진찰을 했는지 소요시간 검색이 가능하다. 환자별, 진료과별 진료비 청구내역도 확인할 수 있다.

▲ 최근 병원들에 ABC(활동기준원가시스템)이 들어오면서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병원 모든 직종 노동자들의 각 활동에 대한 원가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9일, 갑자기 ABC도입을 밝힌 고려대의료원 게시판에 노조에서 붙인 관련 선전물 ⓒ 노동세상


이런 통계들은 활동기준원가시스템(ABC·Activity-Based Costing),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등과 연동될 때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ABC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소모품비 등 직접비 중심으로 하던 기존 원가분석을 입원예약, 입원수속, 선택진료수속 등 수행되는 활동, 즉 간접비 중심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지출할 돈을 관리하던 방식에서 각 활동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

한편 원가분석은 자원관리를 염두에 둔 장치다. ERP는 영업·생산·구매·자재·회계·인사 등 회사 내 모든 업무를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관리, 통제하는 통합 전자경영시스템이다. 경영진은 원가분석을 통해 직원들을 수익경쟁으로 몰아넣고, 자원관리로 원가절감을 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반창고 아끼는 게 최신경영이냐"

하지만 그 부작용 역시 만만찮다. 2002년 ERP를 처음 도입한 전북대병원 사례는 유명하다. 재료비를 줄인다고 매일하던 수술 의료기기의 소독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이고, 물품 하나하나에 원가를 써 붙이는가 하면 1회용 물품마저 다시 물로 씻어 재소독해서 사용하게 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했다. 곧 의사들이 "이렇게는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노조도 문제제기하자 병원 측은 이런 식의 원가절감은 자제했다.

대신 ERP시스템이 안착되고 직원들이 체제내화 되면서 비슷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전북대병원지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링거액 등 주사를 꽂고 반창고를 붙일 때 3개, 4개 쓰는지 상관 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간호사들이 3개 이상 붙이지 말라고 한다. 반창고 역시 개별로 나눠준다. 반창고 하나를 한 간호사는 1주일 쓰고, 다른 간호사는 5일 썼다는 게 입력된다. 그럼 위에선 '다른 사람은 1주일 쓰는데 너는 왜 5일밖에 못 쓰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이 사례를 전해들은 한 중소병원의 7년차 간호사는 "나는 주사 꽂으면 적어도 반창고 5개는 붙인다. 3개면 아동 환자일 경우 주사기가 100% 빠지고, 성인도 돌아다니다 보면 너덜거리게 돼서 환자가 엄청 신경 쓰지 않는 한 빠지게 돼 있다"면서 간호사는 물론 환자에게도 불편을 주는 일이 최신경영이냐고 반문했다.

전북대병원지부 관계자의 설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자시스템으로 환자 가운, 시트 들어가는 수까지 조사가 된다. 원래는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비교를 당하게 되면 가운을 갈아주지 않게 된다. 2일에 한번 하던 걸 3~4일에 한 번 하게 되고 아예 환자가 요청할 때 바꿔주는 걸로 바뀐다. 이제는 간호사들 의식 자체가 꼭 필요할 때만 갈아주는 걸로 바뀌게 됐다."

전북대병원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알콜솜 2개에서 1개 쓰기 운동',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병실 에어컨 작동시간 줄이기', '볼펜심 다 쓴 것 보여주고 심만 바꿔가기' 등 종합병원들에서 이런 평가지표 상 '비용' 부분을 줄이기 위한 갖가지 묘책들이 나오고, 실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송은정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은 "사실 주사기, 알콜솜 등을 하나하나 세고 있는 게 더 비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병원에서 QI, ABC 등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원가절감방식들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환자는 '돌리고', 의사는 '굴리고'

서울대병원도 최신경영의 선두주자로 자주 언급된다. 병원 측은 지난 2005년 말부터 7개월간 6시그마 시범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외래진료대기시간 7.9분, 응급실 체류시간 11시간, 외과평균 재원일수 1.3일, 장비도입기간을 73일 단축했다고 성과를 발표했다. 그로 인한 비용절감도 이뤄냈다. 응급실 체류시간 단축만으로 연간 12억8000만 원, 입원일수가 줄고 병상회전율도 빨라져 연간 11억 원의 비용이 절감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윤태석 임상병리사는 "6시그마 통계결과가 정확한 게 아니다. 검사실만 해도 채혈 샘플이 들어오는 대로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6시그마 해당 환자들을 우선으로 검사를 하게 돼 시간이 단축돼 나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6인실의 경우 단기병상병동이어서 장기환자가 못 들어가고, 입원일수가 늘어나면 바로 2인실로 가게 해서 병원비 때문에라도 입원일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본원의 1일 입원비는 6인실은 1만 원, 2인실은 15만 원에 이른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병실이 부족해서 응급실에 있다가 병실이 비면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응급실에 들어갈 때 3일 이상 있게 될 경우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동의서를 받는단다. 병실과 응급실 회전율이 빨라진 속사정이 다 있었던 게다.

서울대병원 역시 한때 진료실에 커튼을 치고 의사 한 명이 동시에 여러 환자를 진료하는 '공개진료'를 진행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짧은 시간 내 많은 환자를 봐서 수익을 올리려던 이 비책은 '환자의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노조의 문제제기로 잠시 종적을 감췄지만 비슷한 형태의 변칙들이 언제든 나타날 만하다. 대형병원들에서 의사들이 환자진료수익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체제가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용 고려대의료원지부 교육정책부장은 "의사들이 수익을 내는 만큼 성과급을 가져가기 때문에 환자 과잉 진료가 늘어났다. CT, MRI 등 검사가 많아졌다. 응급실에선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본인이 원하면 기본으로 CT를 한 번씩 찍고 넘어간다"면서 성과체계에 따른 과잉진료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들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선택진료비 부당징수'에 대한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서울아산병원 179건, 신촌세브란스병원 104건, 삼성서울병원 63건, 서울대병원 본원 61건 등 공교롭게도 6시그마, ABC, ERP 등 최신 경영기법을 빠르게 도입해 정착단계에 있는 병원들에 대한 부당징수 신청건수가 많았다.

최신 경영기법이 '고객'으로 격상된 환자들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한 병원의 경우, 최신 경영기법 도입 후 진료시간이 5분에서 3분으로 줄었다.

의사들 역시 완전한 수혜자만은 아니다. 과도한 성과경쟁에 따른 고통을 호소한다. 환자진료수익에 따른 성과급 관리가 심한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의사도 성과체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7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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