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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권위는 체벌로 세우는게 아닙니다

[주장] 체벌은 폭력의 악순환을 낳는 불씨입니다

등록|2010.07.28 20:07 수정|2010.07.28 20:07
뉴스를 보니 서울시 교육청에서 학교내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고 합니다. 군대에서도 예전에 금지된 체벌을 이제서야 금지하겠다니 너무 늦은감도 있지만 환영하는 심정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이 반가운 뉴스에 이어지는 소식이 믿기지가 않아 채널을 고정하게 합니다. 학교내 체벌금지와 관련하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찬반 여론조사를 했더니 체벌에 찬성하는 교사들이 자그마치 70%가 넘는다는 소식이 그것입니다.

학생들은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체벌로 다스리고 교육해야 한다는 구습이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토록 널리 심어져 있다니 놀랍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더구나 선생님들 대부분이 교사이기 전에 아이를 둔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일텐데 말입니다. 올해 초 대통령의 지지도가 50%를 넘는다는 어이 없었던 여론조사처럼 무응답자도 체벌 찬성에 넣은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운 여론조사입니다.

교원 평가제, 수업보다 과중한 행정업무, 심하게 버릇없는 학생들 등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겪는 고초를 무시하고 원리원칙만 얘기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른들이 만들어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있는 지옥같은 입시제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이끌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학교 선생님은 한국의 불쌍한 학생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 책상에 앉기보다 올라서는게 힘듦을 압니다. 당장 행하기 편한 체벌보다, 힘들지만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 주세요 선생님! ⓒ 터치스톤 픽쳐스


'사랑의 매'는 책임 회피입니다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의 매' 라는 말입니다. 선생님들도 어린 학생시절 체벌을 당해 보셨겠지요. 과연 내가 당하고 있는 체벌이 사랑의 매구나 생각하고 잘못을 반성했던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체벌을 행하는 선생님은 사랑의 매라고 부르나, 당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 게 체벌입니다. 체벌의 본질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이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당장 눈 앞에서 제재하고 (겉으로 보아) 고치기 쉬운 방법이 체벌입니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을 유혹(?)하고 필요악으로까지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생님이라면 마땅히 인내를 가지고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야할 시대에 맞는 책무를 회피하는 행위입니다.

혹시 교육자로써의 그런 인내가 힘겹고, 체벌외의 다른 방법이 귀찮아 '사랑의 매'를 드는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체벌을 받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나쁜 버릇을 고친다고 생각하시나요?

청소년들은 양떼가 아닙니다

TV 뉴스에 나오는 체벌에 찬성하는 어느 나이 지긋한 여성 교사의 인터뷰를 보았더니, '요즘 아이들은 덩치도 커지고 반항이 심해져 체벌이 아니면 통제가 안되고 권위도 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다 싶은 얘기입니다. 요즘 아이들..운운은 이집트 피라미드 벽에도 써있는 소리입니다. 반항하고 버릇없는 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 말에 고분고분 조용히 따르기만 하는 양떼들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요. 엉덩이에 뿔난 그런 혈기방장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권위를 내세우는 수단이 일차원적인 체벌밖엔 없는건지 제가 다 고민하게 됩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에서 일찍이 교내 체벌을 왜 금지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어린 학생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있는지 벤치마킹 좀 하세요.

어릴적 체벌을 당연하게 체화한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서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하여 살아 갈런지도 의문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사회나 국가에 발전적 제안이나 예리한 비판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시민의 탈을 쓴 양떼처럼 혹은 노예처럼 무색무취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나요?

체벌은 폭력의 악순환을 낳는 불씨

체벌의 본질이 폭력인 이유는 저를 포함한 한국 남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체벌이라는 작은 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 폭력을 아무 의심없이 주고 받게 되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에 가서도 선후배 사이의 폭력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심한 사람은 가정에서 약자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요. 가히 한국판 '폭력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인데 그 역사의 시초는 어린시절 학교에서 당하는 체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저또한 그런 폭력의 악순환을 겪었었구요.

요즘 영화나 TV등에서 '트라우마(Trauma)'란 말이 자주 나와 아실 것입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나타나는 다양한 질환들을 말합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의 12년간은 기간도 길거니와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하는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 시기에 벌어지는 잦은 체벌이 한 사람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적으로 공감하지 않을까요?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이 더 대접을 받고,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님들이 친북좌파 세력이라는 소릴 듣는 이 뒤틀린 시대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이상적인 선생님상을 바라는게 아닙니다. 편안해야할 집에서마저도 지옥같은 입시제도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체벌은 우리 아이들을 더 절망하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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