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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노란 봉지만 봐도 울컥해요"

광명시 등 유통 대기업의 무분별한 입점으로 인해 지역경제 고사 위기

등록|2010.08.26 10:26 수정|2010.08.26 10:26

▲ 지난 2007년 1월 광명시장 한가운데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탓에 광명시장 유동인구가 40% 급감했다. 사진은 27일 광명시 이마트 메트로 매장 모습. ⓒ 선대식


"손님이 들고 다니는 이마트 노란 봉지만 봐도 울컥하죠."

지난달 27일 오전 경기 광명시 광명시장에서 만난 이순자(75)씨의 말이다. 이곳에서 30년째 보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지난 2007년 1월 시장 한가운데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소형 이마트)를 보면 속이 쓰리다. 이마트가 들어선 직후 고객이 1/10로 줄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한때 광명시장의 하루 유동인구는 5만 명을 넘었지만, 현재는 3만 명 수준이다. 매출이 40% 떨어진 후 회복이 안 된 가게가 많다. 약 2만㎡의 큰 면적과 400여 개의 점포를 자랑하던 전국 5위권의 소매시장이 불과 1060㎡ 크기의 이마트 탓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인구 33만 명의 광명시에는 현재 대형마트 2곳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9곳이 운영 중이고, 올 연말에는 대형 이마트가 들어선다.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의 무분별한 입점은 지역 상권뿐 아니라 지역 경제까지 고사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친서민 정책을 외치면서 유통 대기업 규제 법안에 소극적인 정부·여당의 외면 속에 광명 지역 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이는 광명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앞으로 벌어질 일이다.

유통대기업 입점에 주변 상권 몰락... "같이 살자는 요청에 묵묵부답"

▲ 경기 광명시 광명7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동현(62)씨는 "인근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쪽에 '영업시간과 판매품목을 줄여 같이 살자'고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말했다. ⓒ 선대식


이날 오전 광명7동 한적한 주택가의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광명점(면적 214㎡)은 많은 손님들로 떠들썩했다. '1+1 추가증정', '초특가상품', '50% 할인'이라고 쓰인 알림판이 매장 곳곳에 붙었다. 주부들의 장바구니엔 상품이 가득 담겼다.

반면, 이곳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59㎡ 규모의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동현(62)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가게는 조용했다. 가끔씩 아이들이 찾아와 아이스크림을 사갔다. 정씨는 "음료수는 일주일 전에 들였지만, 1개도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퀭한 눈의 정씨는 피곤해보였다. 그는 "새벽 2시까지 장사를 하기 때문"이라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밤 11시까지 영업을 하니,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려면 더 늦게까지 가게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가게 문은 정씨의 부인이 오전 6시 30분에 열고, 낮에는 정씨의 둘째 딸이 가게 운영을 돕는다. 하지만 정씨 가족 손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안 된다.

정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선 후, 80만 원이던 하루 매출이 40만 원으로 반토막 났다, '영업시간과 판매 품목만이라도 줄여 같이 살자'고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라며 "단골손님들도 '미안하다'면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로 간다, 더 싸고 배달도 해주니 경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몰래 개점했다는 사실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5월 2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기존 가게의 간판을 바꿔 달더니, 이튿날 오전 7시께 기습 개점했다. 정씨는 "사업조정신청제도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변 상권 망하는 일만 남았다"고 씁쓸해했다.

2년 전에 이마트 메트로의 기습 개점으로 큰 피해를 봤던 광명시장 상인들은 이미 체념한 상태다. 이곳에서 1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윤철(50)씨는 "매출이 40% 하락했지만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시장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쇠퇴하는 재래시장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마트 메트로에서 만난 이인선(52)씨는 "재래시장보다 가격이 더 싸고, 시원한 이마트를 찾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역 경제 고사 위기... 정부·여당 외면 속에 '방법이 없다'

▲ 광명시장에서 1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윤철(50)씨는 "이마트 메트로 때문에 매출이 40% 급감했다"며 "방법이 없어 체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선대식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무분별한 입점은 지역 상권을 흔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 경제 자체가 고사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부산의 경우 롯데·신세계 등 서울에 본사를 둔 백화점·대형마트가 2008년 말 3조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이 중 대부분은 부산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들 기업이 부산시에 내는 지방세는 연 100억~2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문현수 광명시의회 부의장은 "대기업은 지역이 아닌 본사나 외부 공장에서 물건을 가져오다보니, 대형마트 인근의 지역 상권과 유통망 자체가 무너진다"며 "또한 대기업은 번 돈을 바로 서울 본사로 보내니, 지역에서 돌아야 할 돈이 순환하지 않아 지역 경제가 초토화된다"고 지적했다.

경기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이 최근 광명7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주변 반경 1km의 피해를 추산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해보니, 자영업자의 50%가 3~4개월 내에 도산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지역 상인, 시의원 등이 유통 대기업의 지역 입점을 제한하는 조례를 준비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협정(GATS) 위반"이라며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문현수 부의장은 "시 자체적으로 입점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 경우, 상위법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조례를 만들 수가 없다"며 "다만 조례를 통해 입점하는 점포의 규모 정도만 제한할 수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에는 무용지물이다, 안타깝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제한하는 관련 법률이 개정된다고 해도, 광명시장은 곧 사라질지 모른다.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광명시장을 포함한 광명 구시가지 일대 228만㎡에 대해 재정비촉진(뉴타운)계획을 결정·고시했다. 광명뉴타운 내 24개 구역 중 5곳에서는 이미 재개발조합 설립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허정호 광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국장은 "광명의 재건축단지 등에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고 있다"며 "광명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 지역 경제는 완전히 몰락해 유통 대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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