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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사방이 풀밭이라 화장실 필요없어요

국제민주연대의 2010 내몽골 공정여행 참가 후기

등록|2010.08.02 11:12 수정|2010.08.02 11:12
올해는 우리 부부의 결혼 10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여름에 아내와 함께 맑은 하늘과 초원을 볼 수 있는 몽골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나 자유배낭여행이 쉽지 않아 보여서 단체여행 상품을 살펴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에서 '내몽골 공정여행단'을 모집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공정한 여행'이라는 취지도 신선했고, 일정도 그리 급하지 않으며 몽골사람들과의 교류의 시간도 있어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공정여행은 공정무역과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지인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주려는 착한 동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착한여행이라는 말보다 준비모임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현지인과의 '관계 맺기' 이었다. 손을 내밀 대상은 현지의 소수민족일 수도 있고 버스기사나 숙소의 직원일 수도 있으며, 함께 공정여행을 하는 일행들일 수도 있으리라. 

초원의 몽골인들은 어떻게 살까? 

몽골인 아주머니공정여행단의 질문을 들으면서 웃고 계신다. ⓒ 김대규

초원의 첫날, 우리 공정여행단은 숙소에서 가까운 마을에 사는 몽골인 가정을 방문했다. 이 집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칭기즈칸과 달리는 말들의 사진이었다. 액자 위에 몽골인의 하느님 '텡그리'를 상징하는 파란 천 '하닥'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유에 차와 소금을 끓여 넣은 수태차와 과자 등을 먹는 사이에 파란색 비단의 몽골 치마를 입으신 주인 아주머니가 거실로 들어오셨다.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어느 어머니들과 다름이 없었다. 먼 옛날로 돌아가면 우리는 서로 같은 조상을 가졌으리라.

우리 공정여행단은 통역을 통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도 이집에서 안 보이는 것 세 가지(부엌, 화장실, 책) 중에 부엌과 화장실에 대해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에 따르면, 소똥이나 말똥을 연료로 요리를 하는 부엌은 잠자는 곳과 분리되어 있단다. 그리고 화장실에 대해서는 "집 근처 사방이 풀밭인데, 거기서 일을 보면 되지 왜 화장실이 필요한가?" 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아하. 그렇군! 화장실도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집안으로 화장실이 들어온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의아함이 의아함으로 돌아오니 뭔가 나의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궁금한 듯 주위의 친척들이 따라 들어왔다. 더러는 답변을 보충하기도 하고, 환영의 노래도 즉석으로 불러 주었다. 몽골인은 우리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노래와 춤을 즐긴단다. 진정으로 그래 보였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이렇게 다시 보고픈 사람은 기억에 오래 남아 언젠가 간절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그리움은, 풍경을 스쳐가는 여느 여행과 달리 공정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었다. 
    
자기말로 노래하고 춤추는 몽골학교 학생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정여행단도 참가비의 일 퍼센트를 모아서 내몽골의 소수민족인 '몽골인 학교'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을 마련해왔다. 방학이어서 작년에는 선생님 한분만 오셨다는데, 이번에는 학생들도 함께 와서 준비한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고 한다. 인연이 거듭되니, 마음도 전달되나 보다.

둘째날 저녁을 먹고 나니, 전통 의상을 입은 몽골 아이들이 게르(Gel) 주위를 여기 저기 활발하게 뛰어 다닌다. 그 중에 가장 어린 쌍둥이 소년 둘은 낯선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기에 사진을 같이 찍자고 말을 걸었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피한다.

몽골어로 안녕이란 말이 '세노'라 하기에 아이들에게 우리 노래 '세노야'를 불러 주니 살짝 관심을 갖는다. 슬그머니 아이들 옆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이 쌍둥이는 저녁 공연에서  몽골의 전통씨름 '부흐'를 춤으로 표현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소년쌍둥이 형제와 함께 몽골의 전통씨름 '부흐'를 춤으로 표현해서 박수를 많이 받았다. ⓒ 김대규


몽골학교 학생들의 공연은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환영 인사로 시작했다. 쌍둥이 소년을 비롯한 여덟 명의 학생들이 신나는 몽골의 노래와 전통춤을 보여주었다. 한 민족의 문화는 춤과 노래로 아이들에게 이어진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아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니 가수 이지상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극우 성향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로부터 토지반환을 요구받은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일본에서 우리말과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한 동포들의 걱정과 자부심이 절절히 느껴진다.

큼직한 미끄럼타기 작은 그네 하나 없어
너희들 놀 곳도 없는 학교지만
조국을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고 자란
너희에게 조국을 배우게 하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서투른 조선말로 웃으며 희망을 품는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각고요리 이이데스(일본 학교보다 좋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허남기 시, 이지상 작곡


두 상자의 학용품에 불과했는데,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감동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었다. 재일 동포나 몽골인과 같은 소수민족에게 자기 말과 글로 희망을 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의미에서 '몽골 학교'는 몽골인들의 꿈이요 희망이다. 아이들아, 자랑스러운 너희 학교에서 너희 말과 글로 희망을 품기 바란다.

공정여행,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

내몽골 초원언덕 높은 곳에 있는 오보(돌탑)에서 바라본 내몽골의 초원과 하늘 ⓒ 김대규


몽골의 초원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오보(돌탑)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짙푸른 초록의 물결이 만드는 생동감, 뭉게구름이 피고 지는 파란 하늘의 개방감과 함께 묵었던 걱정과 근심을 잔잔히 털어버리도록 격려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이처럼 종래의 아시아여행은 이색적이면서 낭만적인 풍물이나 정취를 파악하는 단계에 머물렀다. 그러나 외국 여행에서 그 나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배움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갖고 관습적인 가치 판단을 극복할 때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풍경만을 사진으로 담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리움을 마음에 심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현지 주민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교류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런 경험을 통해 여행자는 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비범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내몽골 공정여행은 5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중국의 소수민족 몽골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몽골 학교 학생들의 공연과 교류를 통해 몽골인의 말과 노래, 춤을 비롯한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공정여행은 단지 '착한여행'이라기보다 '사람을 찾아 가는 여행'이라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4박 5일 동안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의 '제1차 내몽골 공정여행'에 참가했습니다. 내몽골 공정여행에 처음 다녀와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소식지<희망세상> 8월호에 투고한 공정여행 참가 후기를 다시 고쳐서 기사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 2010 함께 떠나는 공정여행 관련 문의 :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www.khis21.or.kr), 전화: 02-736-58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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