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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16)

― '자네와의 친분', '출판사와의 저작권 계약', '우주와의 동일시' 다듬기

등록|2010.08.05 14:50 수정|2010.08.05 14:50

ㄱ. 자네와의 친분

.. 미국식 사고로 말하면, 아주 별것 아닌 그냥 어린 소녀 두 명이 장갑차에 깔려 죽은 것 때문이야. 자네도 알고 있지? 아 참! 얼마 전에 보니까 자네가 사과를 했더군. 사실 나는 자네와의 여러 가지 친분 때문에 모른 척했었는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네 죽여버린다고 난리야 ..  <이용남-어머니의 손수건>(민중의소리,2003) 133쪽

 "미국식(-式) 사고(思考)로"는 "미국사람처럼"이나 "미국사람이 생각하듯"으로 손질합니다. '별(別)것'은 '아무것'으로 다듬고, "두 명(名)이"는 "둘이"로 다듬습니다. "얼마 전(前)에"는 "얼마 앞서"로 손봅니다. '난리(亂離)야'는 '법석이야'로 고치고, '사실(事實)'은 '그동안'이나 '여태'로 고쳐 줍니다.

 ┌ 자네와의 여러 가지 친분 때문에
 │
 │→ 자네와 여러 가지 친분이 있어서
 │→ 자네하고 여러모로 알고 지내니
 │→ 자네하고 여러모로 가까워서
 │→ 자네와 이래저래 알고 있어서
 │→ 자네와 (나는) 가까운 사이이니
 │→ 자네와 가까운 사이기 때문에
 └ …

사람과 사람이 사귑니다. 사귀니까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서로 아는 사이면, '동무'가 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자네와 나는 동무이니까"로 고쳐쓸 수 있어요. 또는 "자네와 나는 가까운 동무이니까"로 고쳐쓰거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네와 아닌 사이이기 때문에 모른 척했었는데"라든지 "자네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른 척했었는데"라든지 "자네와 가까이 지내기 때문에 모른 척했었는데"로도 고쳐쓸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말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생각줄기를 이으면 이을수록 새삼스러운 말투가 솟아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가다듬는 동안에는 싱그럽고 아기자기하게 말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투를 추스르려 한다면 튼튼하고 짜임새있게 말터를 가꿀 수 있습니다.


ㄴ. 출판사와의 저작권 계약

― 이 책의 한국어 출판권은 미국 Henry Holt and Co. 출판사와의 저작권 계약에 의해 도서출판 마루벌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책 간기에 적힌 글월)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겨서 펴낼 때에는 간기에 몇 마디를 적곤 합니다. 꼭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틀은 없으나, 거의 모든 출판사가 아주 딱딱한 말투로 몇 마디를 적어 놓곤 합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한결같은 말투입니다. 법을 다루는 말투이기 때문에 부러 이처럼 적는지 모를 노릇인데, 좀더 부드러우며 한결 따스하게 가다듬으려고 하는 책마을 일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한국말로 출판하는 권리는"이나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내는 권리는"처럼 첫 글월을 적을 수 없었을까요.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해서"나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어"로 가운데 글월을 적바림하면 안 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우리 법말을 이렇게 따분하고 딱딱하게 다루어야만 하는가요. 따스한 법이 되고 사랑스러운 법이 되면 안 되는지요. 넉넉한 법말이 되고 아름다운 법문화로 거듭날 수는 없는지요.

 ┌ 이 책을 한국말로 출판하는 권리는 …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해서
 ├ 이 책을 우리 말로 내는 권리 … 출판사하고 저작권 계약을 맺은
 └ …

사람과 사람이 다짐을 합니다. 회사와 회사가 계약을 맺습니다. "나와 너와의 다짐"이 아니라 "나와 네가 하는 다짐"이나 "나와 네가 맺은 다짐"입니다. 누구랑 누가 맺는 약속입니다. 이 회사하고 저 회사하고 맺는 계약입니다.

보기글을 다시 헤아려 봅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 마루벌이 …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어 펴냈습니다."라고만 적어도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책은 …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어 출판권을 얻은 도서출판 마루벌이 펴냈습니다."로 적어도 괜찮을 테고요.

법을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이 법말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가꾸지 않는다면, 여느 사람인 우리들이 법말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가꾸어 주면 좋겠습니다. 법과 얽힌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법말을 사랑스럽고 아늑하게 돌보지 않는다면, 낮은자리에 있는 우리들이 법말을 사랑스럽고 아늑하게 돌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할 일을 올바르게 해야 할 사람이 할 일을 하나도 안 할지라도, 우리들이 돕고 거들며 보태면 된다고 느낍니다. 내 이웃이 나한테 살갑거나 반갑게 마주하지 않더라도, 나는 내 둘레 뭇 이웃한테 살갑거나 반갑게 마주하면 된다고 느낍니다. 말이란 내 사랑입니다.


ㄷ. 자신과 우주와의 동일시(同一視)

.. 우리들 자신과 우주와의 동일시(同一視)는 우리들 윤리에서 두 가지 우세한 덕성을 낳았다. 책임과 희생 ..  <니코스 카잔차키스/김문환 옮김-어두운 심연에서>(현대사상사,1975) 109쪽

'동일시'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똑같이 봄"을 가리킵니다. 그래, 이런 말이라 한다면 말뜻 그대로 "똑같이 봄"이라고 적으면 좋을 텐데, 구태여 '동일시'라고 적고 나서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써 넣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힘이 세거나 낫다고 할 때 '우세(優勢)'라 한다지만 '낫다-세다-좋다-알맞다-훌륭하다' 같은 낱말을 넣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 자신과 우주와의 동일시(同一視)
 │
 │→ 나와 우주를 똑같이 봄
 │→ 나와 우주를 하나로 봄
 │→ 나와 우주를 아울러 봄
 └ …

말을 할 때이든 글을 쓸 때이든 우리 마음에 드는 낱말을 골라서 넣어 줄 때가 가장 알맞고 좋습니다. 더 알맞거나 괜찮게 여길 만한 낱말이라면 스스로 생각해 보거나 찾아야 합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내 눈높이를 헤아리는 한편, 내가 읊는 말을 듣거나 내가 쓰는 글을 읽을 사람 눈높이를 아울러 살피면서 가장 알맞고 좋은 낱말을 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1970년대 번역자나 창작자들은 '동일시'라는 낱말이 가장 알맞거나 좋다고 여겼을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이 낱말 뒤에 묶음표를 치고 '同一視'라고 밝힐 때가 한결 낫다고 여겼을는지 모릅니다. '同一'이란 '똑같음'이고, '視'란 '봄'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을 할 까닭 없이 우리 말로는 "똑같이 봄"이 될 뿐입니다.

이 보기글을 우리 말로 적바림한 분이 이러한 말흐름을 헤아렸다면 굳이 말치레를 하지 않았을 터이고, 따로 말치레를 하지 않았다면 "나와 우주와의 똑같이 봄"처럼 적바림할 수조차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우주를 똑같이 봄"처럼 적바림했겠지요.

그러니까, 낱말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말투 또한 옳게 건사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낱말 하나 바르게 쓰지 못하기에 말투 또한 바르게 살피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타내려는 뜻을 올바로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누려는 마음을 찬찬히 갈무리해야 합니다. 올바로 생각하는 가운데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말하는 가운데 올바로 살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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