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도시 투르판

[중국 실크로드 탐방기③] 투르판의 포도부터 천불동 석굴까지

등록|2010.08.06 16:40 수정|2010.08.07 13:01
중국 실크로드 역사탐방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클럽 회원들과 함께 중국 실크로드 역사탐방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는 약 160만㎢의 면적으로 중국 전체의 1/6을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중국 최대의 분지, 최고의 고원, 대사막, 대초원, 대고비, 대삼림은 웅대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황금과 중국의 비단을 바꾸고 불교와 이슬람문화를 전한 동서문물 교류의 접합점입니다. 신장의 실크로드는 사막과 낙타로만 여겨지던 과거 버려진 길이 아닌 천태만상의 자연환경과 다채로운 민속, 유전과 가스로 이어지는 막대한 지하자원을 가진 성장잠재력이 무궁한 곳입니다.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의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7박 9일간의 여행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기자주>

▲ 베제클리크 천불동. 투르판에 현존하는 석굴 중 제일 크고 내용도 풍부하다 ⓒ 오문수



문명은 과연 어떤 곳에서 탄생하는가? 일반인들이 알기로는 대체로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탄생한다고 여긴다. 나일강, 황하 등의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곳에서 출발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투르판에 도착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투르판은 사막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도시이다. 물이 없어 지하수로인 카레즈를 만들고 척박한 땅에 포도를 심어 하미과와 수박을 가꾸며 문명을 일궈왔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자연에 맞서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감탄할 뿐이다.

사막의 혹독한 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한 지혜의 산물 '포도'

카레즈와 박물관을 방문한 일행은 시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포도구를 방문했다. 화염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남북 길이 8킬로미터, 폭 2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이 온통 포도밭으로 뒤덮였다. 어귀부터 포도가게가 길 좌우에 쭉 늘어섰고 지역에서 나는 온갖 과일이 손님을 부른다. 40도가 넘는 더위에도 뜨거운 불 앞에서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낭'을 구우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바로 옆에는 할아버지가 굽는 양고기를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 포도구 - 사막의 포도밭. 투르판의 포도는 최고로 친다 ⓒ 오문수

▲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 제일 더울 때는 80도가 넘어 전체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 오문수





'포도구'라고 쓰여진 지역에는 포도송이가 하늘을 덮는다. 바로 옆에는 3미터 쯤 되는 도랑에서 흙탕물이 흐른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만년설의 물들은 소나기가 내려 도랑에 넘칠 때처럼 기운차게 흐른다. 이 물은 투르판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수다.

이곳 포도나무의 수명은 150년이나 되고 포도 종류도 2백여 종이나 된다. 4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건물에 벽돌을 엇갈려 구멍이 숭숭 뚫린 집이 포도 건조장이다. 오아시스 어디를 가나 포도를 재배하고 있지만 투르판의 포도를 최고로 친다.

영원한 휴식의 장소 '아스타나 고분군'

동서 5킬로미터, 남북 2킬로미터의 아스타나고분군에서는 고창국과 당나라 때의 무덤 456기가 발굴됐다. 무게가 6톤이 넘는 2천 7백여 점의 문서가 발굴됐는데 3백여 건은 토카라어나 소그드어, 위구르어로 쓰인 불교와 마니교, 경교 등 종교문서다.

▲ 아스타나 고분. 12지신상의 모습이 보인다. 고창국시대의 지하분묘이다 ⓒ 오문수



아스타나는 '휴식'을 뜻하는 위구르어로 '영원히 잠든 묘지' 또는 '휴식의 장소'라는 의미다. 무덤 중 세 곳만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데 꽃과 새가 그려진 벽화가 남아있는 묘실과 유리 상자에 미이라가 안치되어 있는 묘실들이다.

216호 묘실에는 유교의 가르침이 적힌 6첩 병풍이 있어 중원에서 파견된 고위 관리나 부유한 상류층 사람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중 4첩은 성인도로 왼쪽부터 '옥인(玉人)', '금인(金人)', '석인(石人)', '목인(木人)'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공자묘의 네 성인을 말하는 것으로, 흰 옷을 입은 옥인은 청렴결백을, 입을 삼중으로 막은 금인은 언행을 삼갈 것을, 석인은 돌처럼 결심이 굳어 흔들리지 말 것을, 목인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정직할 것을 뜻하며 이는 유교적 윤리도덕을 표현한다.     

이곳의 기후는 매우 건조하여 미이라의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이곳 유물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로 유출되었는데 아스타나 고분의 벽화 중 일부인 '복희여와도'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에 의해 약탈되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전시되어 있다.

천 년 전의 고대도시 '고창고성'

지형이 비교적 높으면서 개방적인 고창고성은 투르판에서 동남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다. 화염산 부근에 있으며 위구르족 언어로 '코쵸'라고 부르는데 '왕의 성'이란 뜻이다. 총 면적 200㎡에 둘레가 약 5㎞에 이르는 고창고성은 주변 토양의 점성이 좋아 성벽을 다지면서 건축했기 때문에 돌을 쌓아 세운 성벽처럼 웅장함이나 남성적인 맛은 없으나 자연적이며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 고창고성 안에 있는 장방형의 돔 사원터. 현장법사가 불교 경전을 구하러 인도로 가던 도중 들러 국왕의 간청으로 한 달 간 설법한 곳이다 ⓒ 오문수

▲ 탐방 현장으로 가기 위해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탄 일행 ⓒ 오문수

▲ 방울사세요! 한 개에 십원이에요. 차를 타고 가려니 오원이에요. 사세요 ⓒ 오문수







장방형의 돔 사원터는 현장법사가 불교 경전을 구하러 인도로 가던 도중 들러 국왕의 간청으로 한 달 간 설법한 곳이다. 입구에서 내려 성터까지 가는 데는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간다. 여러 대의 마차가 오가는 데는 열차의 레일처럼 파인 자국을 따라 당나귀가 가는 것이 이채롭다. 고창국이 멸망한 후 지역 주민들이 벽돌과 성안의 목재를 가져다가 건축자재로 써서 많이 파손됐다.

문화재 약탈의 상처가 남은 '베제클리크 천불동'

베제클리크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이다. 서유기로 유명한 화염산 중단의 강 계곡 낭떠러지에 조성된 석굴사원이다. 총 면적이 1,200㎡에 이르는 이 사원에는 83개의 석굴이 있고, 40여 개의 벽화가 남아있다. 투르판에 남아있는 석굴 중 제일 크고, 벽화의 내용도 가장 풍부하다.

베제클리크 석굴로 가는 길에는 화염산이 있다. 서유기를 읽은 사람들은 손오공이 불을 뿜어내는 마귀를 물리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낀 곳이다. 우리가 가는 날은 약간 흐린 날이라 괜찮았지만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은 80도가 넘는 화염산이 불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계곡에는 약간의 풀과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에서 시작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의 벼랑 중턱에 벌집처럼 석굴이 가득하다. 계단을 내려가니 절벽을 따라 초승달 모양의 석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아래 물가에는 거처로 보이는 허름한 집들이 보인다. 지금까지 발굴된 석굴은 모두 83개인데, 그 중 벽화가 일부라도 남아있는 것은 40여 개 뿐이다. 이 석굴은 6세기 국씨 고창국 시대에 시작해 7세기 당 서주시대를 걸쳐 13세기 원나라 때까지 만들었는데, 전성기는 10세기를 전후한 위구르 칸 국 시대이다.   

이 석굴은 파라미어와 서하어, 위구르어 등 여러 언어로 쓰인 숱한 불경 사본과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천불도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베제클리크 왕가의 전속 사원이 된 위구르 칸 국 시대에 그려진 각종 공양상과 경변도, 보살도 등 벽화가 극치를 이룬다. 벽화 속에는 고려인지 신라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복식으로 봐서 우리 조상의 사신이 분명하다. 20년간 실크로드 현장에서 실크로드문화를 연구한 국립중앙박물관 민병훈 박사의 설명이다.

▲ 끝없는 사막 길에 오가는 건 자동차 행렬. 승용차를 싣고 달리는 모습이 중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 오문수



"석굴은 벽을 판 것이 석굴입니다. 사막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고안한 작품이죠. 벽화는 대부분 부처의 생애를 그린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원숭이, 호랑이, 등 여러 모습으로 현신해 사람들에게 덕을 베풉니다. 귀족이나 부자들이 부처가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염원을 그린 것도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 피곤에 지친 대상들이 이곳 석굴에 와서 몽환경에 빠집니다. 안식처가 되는 거죠.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슬람시대 때 석굴을 파괴한 것입니다. 또한 지역주민들이 부숴 밭갈이용으로 쓰기도 했어요.  영국, 러시아, 일본 탐험대들이 와서 많은 벽화를 뜯어갔어요. 특히 14~15호 석굴은 완전히 모래로 뒤덮여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조심조심 발굴했더니 완벽한 모습이 드러났어요.  영국, 러시아 에르미따쥬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벽화를 볼 수 있어요. 완벽한 보존이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도난으로 이어졌습니다"

불상의 눈만 도려낸 벽화나 1미터 쯤 도려낸 벽화를 보며 대영박물관과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됐던 우리 문화재와 로마 그리스 문화재를 떠 올려본다. 문명파괴와 약탈은 그릇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