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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천안함부터 이란 제재까지, 남은 게 없다

등록|2010.08.11 17:24 수정|2010.08.11 17:24
지난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의 천안함이 침몰한 이래 우리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국민들에게 불신만 가득 안겨주었다. 천안함 사고 이후 우리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은 가히 신냉전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외교력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 우리 군은 사고에 관한 내용을 고의로 은폐 또는 축소하려 하였고, 사실관계를 여러 차례 번복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1번 어뢰"가 등장하면서 천안함 사고의 원인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적 추정" 단계에서 "결정적 증거"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아직도 그 1번 어뢰는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버지니아 공대 이승헌 교수의 주장을 네이처가 보도하기도 하였다. 솔직히 근본도 모르는 어뢰의 폭발 일시가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 이전에 폭발한 것인지, 아니면 그 후에 폭발한 것인지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5월 20일, 합조단은 그다지 설득력도 없는 사고 조사결과를 서둘러 최종발표하였다. 6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천안함으로 북풍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과거 정권 시절부터 이미 여러 차례 테마주로 사용되었던 반공에 대한 학습효과가 뛰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역풍으로 한나라당에 참패를 안겨 줬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북한을 혼쭐 내기 위해서 이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로 가져갔고, 7월 10일 안보리는 의장 성명(presidential statement)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성명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이 언어학적 승리(linguistic victory)라고, 절묘한 평을 한 것처럼 그것은 결국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관련국 모두가 자기들에게 편리한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UN 안보리 의장성명이라고 하는 것을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4항) The Security Council deplores the loss of life and injuries and expresses its deep sympathy and condolences to the victims and their families and to the people and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calls for appropriate and peaceful measures to be taken against those responsible for the incident aimed at the peaceful settlement of the issue in accordance with the United Nations Charter and all other relevant provisions of international law.(안보리는 인명의 손실과 부상을 개탄하며,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해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명하고, 유엔 헌장 및 여타 모든 국제법 관련규정에 따라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이번 사건 책임자에 대해 적절하고 평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5항) In view of the findings of the Joint Civilian-Military Investigation Group led by the Republic of Korea with the participation of five nations, which concluded that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as responsible for sinking the Cheonan, the Security Council expresses its deep concern.(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 주도하에 5개국이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6항) The Security Council takes note of the responses from other relevant parties, including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hich has stated that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 incident.(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

(7항) Therefore, the Security Council condemns the attack which led to the sinking of the Cheonan. (결론적으로,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

(8항) The Security Council underscores the importance of preventing further such attacks or hostilities against the Republic of Korea or in the region.(안보리는 앞으로 한국에 대해, 또는 역내에서 이러한 공격이나 적대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의장성명에서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attack)을 개탄(deplore)하고 규탄(condemn)한다고 말로는 한국을 걱정해 주고 염려해 주는 척하고 있지만, 공격의 주체와 규탄의 대상이 의장성명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또 4항에서 "이번 사건 책임자에 대해 적절하고 평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하면서도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5항의 천안함 침몰의 원인 제공자를 북한이라고 지목한 것은 "한국 주도하의 5개국 합동조사단"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6항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이라고 명시하여 근본적으로 남북한 모두의 주장이 인용되어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의 입김과 미국의 입김이 반영된 절묘한 절충수를 의장성명으로 포장하여 발표한 것이다. 이래도 우리의 외교적 승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번 의장성명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성명의 요지는 "어떤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하긴 했는데, 그 공격의 주체가 누군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한국 측 주장으로는 북한이 공격의 주체라고 하고, 북한 주장으로는 자기들은 이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한다. 아무튼 원인을 알 수 없는 공격이 있긴 있었으므로, 이 공격에 대해서 규탄한다. 그러니 앞으로 남북이 이 일로 보복조치를 한다는 둥 으르렁 대지 말고, 평화롭게 잘 살았으면 좋지 않을까?"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대북압박을 위해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구상했지만, 처음에는 미국이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6월 초만 해도 우리 정부는 곧 합동훈련이 시작된다고 하였으나, 미국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소극적으로 나왔다. 그러던 미국이 갑자기 돌변하여 태평양 제7함대의 항모전단을 위시한 대규모 화력을 지원하여 대규모 훈련을 실시한다고 했고, 이에 중국이 서해상에 진입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했다. 결국 훈련은 동해에서 대규모로 종료되었다.

이 때도 미국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에 이은 대북 군사시위로 우리에게 도움을 줬다고 인식한 모양이다. 포스트 천안함 외교에서 한국의 요구사항을 기꺼이 들어주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미국이 이제 부담스러운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이란·대북 정책조정관이 방한 중에 가장 비중있게 언급한 주제는 대북 제재가 아니라 대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하는 문제였다. 정부는 포스트 천안함 정국의 일련의 외교를 외교적 성과 운운하며,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 한국은 이란 제재에 동참할 태세다.

이러한 외교적 운신은 이란 시장이 경제적으로 주는 메리트를 포기함과 동시에 어쩌면 주변의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당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청와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 금융대책 회의를 열고 이란 제재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정부는 앞으로 부처 실무자들이 중심이 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 회의를 통해 각 부처 간의 의견을 조정한뒤 이란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결국 포스트 천안함 정국에서 외교적으로 가장 실리를 얻은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크게 내 놓은 것도 없이 한국을 중국 견제와 이란 제재의 첨병으로 삼게 되었고, 천안함을 무기로 오키나와의 후텐마기지 이전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하토야마 내각을 중도하차시켰다. 중국 역시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위치를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과정에서 향후 미국을 견제할 유일한 국가로서의 발돋움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얻은 것 하나 없이 이란 제재에 동참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늘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벽과 얘기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 가고 있다. 자국의 이익추구에 철저한 미국의 세계전략 이행과정에 우리가 남는 것도 없는 장사에 구태여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처럼 절묘하게 이 상황을 빠져 나가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란을 규탄한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는 이란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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