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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모'의 죄책감, 아이 양육 망친다

더 많은 사람들 사랑 받고 있다는 태도 필요...부모의 심리상태 아이에게 전염돼

등록|2010.08.16 11:31 수정|2010.08.16 16:08
저녁시간 약속이 있어 아이들에게 미리 밥을 차려주고 나왔다. 큰아이에게 "동생 잘 돌보고 엄마 늦으니 먼저 자고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일을 마치고 오후 11시가 넘어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밥은 먹었겠지? 큰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다 했을까? 지금쯤 자고 있겠지' 걱정 반, 미안함 반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큰아이는 그 시간까지 넋을 놓고 TV를 보고 있고 작은 아이는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게 아닌가! 밥상은 그대로 있고 컵과 반찬 접시가 식탁 위를 혼자 굴러다닌다. 야단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자책이 밀려와 차마 아이를 야단칠 수 없었다. 나는 화난 얼굴로 아이들에게 "어서 씻고 자" 라고 말했다. 아이는 눈치를 보며 "엄마 화났어?" 하고 묻는다. 누가 봐도 화가 난 얼굴인데 나는 아무 말 없이 화 안 났으니 어서 가서 자라고 했다.

그러나 쏟아진 반찬을 보자 몸은 지치고 화는 치밀어 올랐다. 결국 "너는 초등학생이 돼가지고 밥 먹고 그릇을 치울 줄도 모르니!". "동생은 못 씻긴다 하더라도 너는 씻고 잘 준비를 해야 하는거 아니니?", "언제까지 엄마가 다 해주어야 하니?" 하며 아이에게 화를 다 쏟아 부었다.

말 한마디가 '괜찮은 애'를 만들다

순간 아이는 동생도 못 돌보는 아이, 밥 먹고 치울 줄도 모르는 아이, 스스로 씻지도 않는 아이가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일을 해서 아이를 이 모양으로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그만 두어야 해' 등등의 수많은 자책과 신세한탄으로 나는 우울해졌다.

잠시 후 남편이 들어왔다. 상황파악이 안 되는 남편은 "우리 아들이 엄마, 아빠 기다리느라 아직 안 자고 있었네, 잠도 일찍 못 잤구나, 엄마, 아빠 없는 동안 동생이랑 저녁도 먹고 잘 돌보고 네 덕분에 엄마, 아빠가 일 보고 올 수 있구나, 늦은 밤 사고 없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아이는 동생 잘 돌보는 아이, 믿음직스런 아들, 꽤 괜찮은 아이가 되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의 속마음은 자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자녀의 자존감이 올라가길 바랄 것이다. 나는 그 때 화가 난 감정을 속 시원히 쏟아냈지만 아이의 자존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안타깝게도 아이에게 '엄마가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지금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아빠를 먼저 찾는다.

'일하는 부모', 죄책감 가지지 말자...사랑도 불안도 전염된다

▲ 부모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자녀의 마음을 훤히 비추어 볼 수 있다. ⓒ 최지솔



내가 두 아이를 맡기며 오랫동안 다닌 어린이집은 시간연장 보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다. 일하는 부모가 거의 대부분인 이 어린이집의 고민은 아이를 오랜 시간 맡기기 때문에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아니함으로 추측되는 문제행동이다. 물론 해결방안으로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부모가 일하는 시간만큼 갖게 되지 못하는 애착은 양육자, 특히 주양육자의 관심과 의사소통기술로 질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충해주어야 한다.

영아 시기 자녀에게 양육자와 함께 있는 시간은 공기와도 같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아니라 '양육자'라고 표현한 것은 양육자가 부모 이외에 조부모일 수도 있고 어린이집 교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부모가 죄책감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질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양육자가 조부모라서 아이에게 충분치 못하다거나 맞벌이라서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다거나 하는 문제로 죄책감, 미안함, 심지어는 이런 조건 때문에 자녀가 잘못될까봐 생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양육을 하면 당연히 문제행동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녀의 주파수는 부모의 심리 상태에 따른 파장까지 감지하며 그것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질적인 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요소는 자녀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마음과 의사소통기술, 그리고 부모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읽을 줄 아는 능력이다.

보통은 아이의 마음을 읽으라고 주문하지만 그러려면 부모 자신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부모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자녀의 마음을 훤히 비추어 볼 수 있다. 맑은 거울은 자녀의 어떤 행동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를 격려하고 이해해주는 수용적 부모되기

허용적인 부모와 수용적인 부모의 차이는 바로 이 '맑은 거울'에 있다. 허용적인 부모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도 자녀가 원하면 다 들어주며 자녀가 잘못 될까봐 불안해한다. 결과에 대해서도 자녀를 추궁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자녀는 이런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안 들어줄 때 부모를 원망하고 일의 결과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 탓을 한다.

반면 수용적인 부모는 안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녀가 원하는 것에 대해 감정을 들어주고 이해해 준다. 자녀가 간절히 원할 때 공감이 되면 흔쾌히 들어주고 부모가 원치 않는 결과라 하더라도 이해해주며 책임은 자녀 스스로 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경우 실패해도 부모가 든든히 격려해 주고 이해해주기 때문에 좌절을 견뎌 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장의 심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안정감이며 자녀와 부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공지영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는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껴질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너의 어린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서서 울고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거야'

그리고 딸은 답한다.

'사랑이 나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넘치도록 가득한 젊음과 자유를 실패하는데 투자하겠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8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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