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돼지 같은' 중학생 놈들에게 한 방 먹다

충남 공주에서 전남 고흥으로, 여덟 놈들의 여름 보내기

등록|2010.08.15 21:57 수정|2010.08.16 09:16

▲ 학교 선생님도 가족도 없이 오로지 녀석들만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왼쪽 부터 이상욱. 송인효.이진석.이재국.안현준.조경호.양재성.최우찬. ⓒ 송성영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녀석들의 생김새를 놓고. 놈놈놈 식으로 분류해 보자면 길쭉한 놈, 오동통한 놈, 짤막한 놈들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려, 그려, 잘 왔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돼지 같은 놈들이 몰려왔다, 장장 5시간에 걸쳐

녀석들은 한결같이 양처럼 순하디 순한 표정으로 꾸벅 꾸벅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중학교 3학년생들이 그렇듯이 순종적이거나 어딘가 모르게 반항기 다분한 건들거리는 눈빛이 뒤섞여 있습니다. 하여 눈빛으로 보자면 '반항기 다분한 놈', '톡톡 튀는 놈', '얌전한 놈'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녀석들 중에 반항기 있어 보이는 녀석의 티셔츠에는 '이 돼지 같은 놈들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야 그거 니들 반 단체 티셔츠냐?"
"이거요?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맞춘 건데요."
"그거 누구 아이디어냐? 이 돼지 같은 놈들아."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한티 이 돼지 같은 놈들아. 그러셨거든요."
"그 선생님 니들한티 잘해 주셨냐?"
"예 좋은 분이셨어요."
"그려? 그럼 나도 인저 니들 그렇게 부른다 잉. 이 돼지 같은 놈들아!"

▲ 한 녀석의 티셔츠에 새겨진 '이 돼지같은 놈들아!' ⓒ 송성영


그렇게 꿀돼지 같은 녀석들이 우리 집에 머물렀던 2박 3일 동안 나는 툭하면 녀석들을 '이 돼지 같은 놈들아'로 불러댔습니다.

"이 돼지 같은 놈들아! 밥 먹어라!"
"신나게 놀았냐! 이 돼지 같은 놈들아!"

사람을 향해 돼지 같은 놈들이라 부를 때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들에게 애칭으로 부르거나 아귀처럼 배 터지게 먹기만 하는 욕심 많은 인간들을 빗대어 부르기도 합니다. 덩치들이 커서 좀 징그럽기는 하지만 녀석들은 내겐 귀여운 꿀돼지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그 돼지 같은 놈들이 대체 어떤 녀석들이냐구요? 우리 집 큰아이 송인효 녀석이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입니다. 녀석들은 충남 공주에서 논산까지 버스를 타고 논산에서 다시 좌석 없는 입석 우등열차를 갈아타고 전남 순천역에 도착하여 거기서 다시 시외버스를 이용해 고흥에 도착.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우리집까지는 자동차로. 그렇게 장장 5시간에 걸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녀석들입니다. 먼 길 찾아온 녀석들이 한없이 고마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볼때기를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대견했습니다.

"니들 입석 타고 왔다며? 그래도 좋았지?"
"재미있었어요. 혼자 왔으면 힘들었을 텐디. 친구들하고 와서 좋았어요."
"아저씨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신나게 노래 불러가며 왔을 텐디이."

나는 기분 좋게 짐을 풀고 있는 녀석들의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평소 인효 녀석으로부터 말로만 들어왔던 녀석들에 대해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너? 인효 전학 오기 전에 인효하고 마지막 수업 빼먹고 공산성으로 땡땡이 쳤던 놈이지? 그래서 니들 아빠한티 뒈지게 혼났지?"
"예?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너는 지금도 그 여자 애가 너 좋다고 쫓아오냐?"
"아뇨."
"그냥 만나주지 그러냐?"
"아. 싫어요."

"전자기타를 잘 친다는 놈이 너구나. 기타 가지고 오지?"
"너무 무거워서요."
"학원에서 배웠다며 몇 년 배웠냐?"
"2년요."

인효 녀석이 공주에서 중학교 생활 2년을 보내면서 가깝게 지내던 녀석들이었기에 나는 이미 몇몇 녀석들에 대해 대충의 신상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들에게는 그 어떤 준비된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그냥 몸 가는 대로 신나게 노는 것입니다. 녀석들은 짐을 풀자마자 마을 앞 해수욕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나 역시 뒤따라 갔습니다. 마을 앞 해수욕장은 제법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해수욕장 주변에 우뚝 솟아 있는 큰 바위 위에는 동네 아이들이 해수욕을 할 생각은 않고 몰려든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 녀석들은 오자마자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 송성영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해수욕장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돼지 같은 놈들'은 사내 녀석들이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윗도리조차 벗지 않고 바다에 푹 젖어 엎치락뒤치락하며 쫓고 쫓기는 장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반항기 있는 놈들은 쫓고, 얌전한 놈들은 쫓기고, 톡톡 튀는 놈들은 반항기 있는 놈들을 물속에 처박아 놓고 달아나며 "푸하하하" 웃고 있었습니다. 

"사내 녀석들이 뭐가 쑥쓰러워서... 홀딱 벗고 놀아"

녀석들 곁에는 선생님도 학교도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도, 가족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드넓은 바다와 친구들이 전부였습니다. 학교나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친구들끼리만 내뱉을 수 있는 욕설들을 함부로 튕겨가며 아무런 제약 없이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준비해 놓은 백숙을 먹고 나서 또다시 바다로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집 앞 해변으로 나섰습니다. 해변으로 나서는 녀석들에게 한마디 보탰습니다.

"야 돼지 같은 놈들아! 니들 홀딱 벗고 해수욕 한번 해봐. 친구들끼리 가릴 게 뭐 있어. 거기 해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없거든."

녀석들이 머뭇거렸습니다.

"사내 짜식들이 그런 배짱도 없냐? 거기서 홀딱 벗고 니들만의 세상 만들어봐! 아저씨 거기 안 갈께. 니들끼리만 놀아. 낯선 사람이 오면 물 속으로 쏙 들어가면 되잖아, 이 돼지 같은 놈들아!"

다 저녁이 돼서야 녀석들은 벌겋게 탄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녀석의 발가락 사이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상처에 소독약을 댔더니 따갑다고 난리를 칩니다. 인효 녀석은 무릎에, 또 어떤 얌전한 녀석은 팔꿈치에, 생채기 입은 녀석들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친구들과 노는 일에 푹 빠져 그깟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보입니다.

▲ 기타 치고 노래하다가 지치면 영화를 보고 그렇게 밤새 놀았다. ⓒ 송성영


저녁을 먹고 나서 녀석들은 방안에 모여 기타를 쳤습니다. 반항기 많은 놈의 기타 솜씨는 요즘 한창 전자기타에 맛 들린 인효 녀석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인효 녀석이 기타를 치며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자 녀석들이 따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지쳐 하나둘 방바닥에 쓰러져 밤새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역시 학교와 집을 까마득히 잊고 바다에 풍덩 풍덩 들어가 신나게 놀았습니다. 집 앞 해변가에서 낚시질도 한 모양입니다. 저녁 무렵에는 몇몇 녀석들이 아내와 함께 면소재지로 나가 과자며 아이스크림 등의 먹을거리를 사들고 들어와 직접 저녁 준비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톡톡 튀는 놈이 주방장이 되어 부대찌개를 끊였습니다.

▲ 손님방에서 녀석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 저녁상을 준비했다. ⓒ 송성영


"니들 맛없게 하믄 아저씨한티 죽는 줄 알아라 잉."

하지만 녀석들의 부대찌개 맛이 오히려 나를 죽여줬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녀석들은 손전등을 챙겨들고 어둔 길을 따라 마을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다들 잠들어 있는 자정쯤에 돌아왔고 새벽 5시까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인효 녀석이 전학을 오고 난 이후의 학교 상황이며 욕 잘하고 매질 잘하는 선생들, 당장 코 앞에 닥친 고등학교 진학문제를 얘기한 모양입니다.

"내가 그 학교 다닐 때, 욕 잘하고 애들 잘 때리는 선생님 있었잖어, 그 선생님이 일제 고사 볼 때 그랬데, 일제고사 거부하는 놈들은 두고 보라고, 가만 안 있을 거라고 애들한티 협박했데."

성적순으로 고등학교 진학할 아이들

▲ 2박3일을 신나게 놀다 지친 녀석들이 한자리에 누웠습니다. 한 녀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 송성영



한창 혈기왕성한 아이들에게 이틀은 참 짧기만 했습니다. 꿀돼지 같은 놈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녀석들은 아침을 거르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아침 겸 점심상을 차려 놓고 녀석들을 깨웠습니다. 다들 부스스한 얼굴입니다.

열차 시간에 맞춰 녀석들이 집을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녀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다들 짐을 챙겨 현관 앞으로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새벽 다섯 시까지 놀다 지쳐서 그런지 아니면 다시 학교생활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들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처음 해수욕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까불어 대던 그 표정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 송성영


▲ 앞에서 떠나기 전에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 송성영


"웃어 짜슥들아! 웃어봐! 이 돼지 같은 놈들아!"
"찍기 전에 하나둘셋 해줘요!"
"그려? 하나둘셋! 하나둘셋! 하나둘셋!"

나는 녀석들이 폼 잡을 사이도 없이 하나둘셋을 쉼표 없이 급히 내뱉어 가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녀석들은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다들 환하게 웃어 댑니다. 녀석들의 환한 웃음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렇게 환하게 웃어가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서로 경쟁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남 공주에서는 성적순으로 잘라 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고 합니다. 몇 개월 후면 돼지 같은 놈들 역시 성적순으로 헤어져야 합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 함께 진학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흉허물없이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를 경쟁에서 이겨야만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돼지 같은 세상, 자유를 꿈꿔라 아들아

운전대를 잡고 녀석들을 순천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녀석들은 순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열차 안에서 김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몇 푼을 찔러주고 역 대합실로 떠나 보내는데 녀석들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녀석들은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로 경쟁자의 관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니들 원하는 고등학교 가지 못해도 절대로 실망하거나 기죽지 마라. 니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믄 되는 겨. 공부 잘 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니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거 하면 돼.그리고 겨울 방학 때도 꼭 놀러 와라! 알았지!"

인사말을 건네놓고 녀석들이 저만치 대합실로 들어섰습니다. 녀석들을 그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자동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해 놓고 황급히 뒤따라 갔습니다. 녀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어 주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녀석들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깨물고 돌아오면서 그 어떤 서러움에 복받쳐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에이, 돼지 같은 놈들…."

아이들을 돼지 같은 틀 속에 가둬 놓고 죽어라 경쟁시키고 있는 돼지 같은 세상. 아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세상. 돼지 같은 놈의 세상이 서러웠습니다. 반항기 다분한 녀석의 티셔츠에 써 있는 '이 돼지 같은 놈들아'는 그런 세상을 향한 욕설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그런 세상에 방치해 놓고 있는 어른인 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욕설이었습니다.

녀석들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갤로퍼 승용차 맨 뒤 칸의 의자를 접어 올려 놓으려 하는데 의자 받침대가 펼쳐져 있지 않았습니다. 녀석들은 우리 집에서 순천까지 한 시간 넘게 받침 없는 불편한 의자에 얹혀 갔던 것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요령을 모릅니다.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불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욕설과 매질이 묵인되는 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학교를 온몸으로 껴안고 생활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따릅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면 아이들 역시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게 될 것이고 자유로움을 가르치면 자유롭게 살 것입니다.

매질과 욕설로 억압하며 가르치면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들과 경쟁할 것을 강요하면 세상에 나가서도 역시 경쟁심에 얽매여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상처 입혀 가며 경쟁심으로 살아가는 길이 사람의 길이 아니라 돼지 같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이미 그 길에 익숙해져 벗어나기 힘들게 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