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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64회)

회음도(會飮圖) <2>

등록|2010.08.13 10:03 수정|2010.08.13 11:48
서명하는 도화서 화원이나 단순한 화인(畵人)이 아니었다. 견평방에 나타나기 전 누구 문하에서 붓질 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껏 세상에 전할 그림 한 폭 남기지 않은 데다 뒷전으로 나돌기 일쑤였으니 드러내놓고 장단점을 책질할 수 없었으나 안목만은 뛰어나단 소문이 있었다.

붓질에 특이한 점이 있었기에 서른 명이나 되는 화원 중 차비대령화원으로 선택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라기보다 시샘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 자가 누구 줄을 타고 도화서에 들어온 게야?'

궁금증은 태산이었지만 지금껏은 '어디 두고 보자'는 속내였다. 이런 와중에 정약용이 도화서를 찾아온 것이다.

"이 사람 어인 일인가. 나 같은 중인을 찾아오고."
"그런 말 말게.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처지가 아닌가. 이보시게 최별제, 이곳 도화서에 서명하라는 이가 있는가."

"헌데 왜?"
"그 화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네."

"서명화에 대해 말이 많은 건 사실이네만 윗전에서 결정났으니 뭐라 말할 수 있는 처진 아니네. 그 사람 차비대령화원 아닌가."
"차비대령 화원?"

"다른 화원보다 특이한 게 있어야 차비대령화원이 되네. 초상화에 뛰어났으니 색채의 깊고 얕음을 나타낸 훈염기법을 알게 아닌가. 서명하가 방외화사(方外畵師)임을 보면 나 역시 궁금한 점이 한둘 아니네."

방외화사는 지방관청을 떠돌던 그림쟁이다. 어떤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화원이나 직업화가를 가리키지만 이들은 사대부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생계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후일 <파적도>로 이름을 날린 담채화를 연구하는 김득신 같은 화원이 그런 자릴 꿰차고 있었기에 궁금증은 더 짙어졌다.

"차비대령화원은 대기발령자 같은 성격을 띠나 도화서에서 기획하는 어떤 일이나 진행 중인 일을 맡기려고 대기시키는 화원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일반 화원보다 두서너 배의 보수를 받는 등 남다른 면이 있는데다 그 자릴 예판께서 관장하니 우리로선 손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네."

차비대령화원의 취택은 자신들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결정했으니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최가원은 물러섰다. 그것은 예판의 고유권한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상감은 도화서 화원 숫자를 서른 명으로 늘리고, 잦은 반역 사건으로 궁안이 소란스럽자 내시부 직제도 단속했다. 자신을 호위하는 건 장용위가 있으니 안심이 됐지만 내명부는 달랐다. 눈을 뜨면 새로운 모습들이 들고나니 신년들어 자기쪽 사람으로 바꾸었다.

상감의 주윌 그림자처럼 따르는 대전장번(大殿長番)을 비롯해 대전출입번, 왕비전출입번, 세자궁장번, 세자궁출입번, 빈궁출입번도 바꾸었다.

벽파 쪽에서 보면 한결같이 시파쪽 인물로 몇 사람의 허울뿐인 충추적 인물이 남아있었지만 그들을 통해 왕실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최가원이 툭 건드렸다.

"그 사람 어찌 찾는가?"
"살해됐네."

"살해?"
"그래서 자넬 찾아왔잖은가."

"이보게, 사암. 자넬 유배지에서 부른 것이나 고작 반년 만에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올린 건 무슨 뜻이겠는가? 반역의 실마리가 웬만큼 풀렸다곤 하나 아직도 대왕대비전엔 정순왕후가 잠룡처럼 웅크리고 있어 노회한 벽파의 중진들이 찾아뵙는 것 아닌가. 전하께서 사암을 홍문관 쪽으로 당긴 건 사헌부 쪽 감찰을 손 떼라는 게 아니라 홍문록에 오를 다른 일을 하라는 것이네."

"다른 일이라?"
"홍문관에 결원이 생기면 장차 중히 쓰겠다는 홍문록(弘文錄)에 통해 사암을 수찬에 올렸네. 그렇게 한 건 중신들의 시샘을 물리치고 개혁의 결단을 사암과 함께 하려는 의도시겠지."

성상의 총애가 각별하다 해도 유배에 처한 죄인을 십여일만에 불러 중책을 맡긴 건 무엇보다 믿음이 굳건해진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사헌부 지평은 그를 믿을 수 있기에 내려진 것이나 사건 처리 결과를 보고 숙고 끝에 홍문록에 올린 건 상감의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암을 향한 성상의 총애야 두 말할 나위 없지만 내가 도화서에 있으면서 전하를 떠올린 건 사암을 향한 깊은 고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네. 사암을 홍문록에 올린 이유를 찬찬이 생각해 보라 그 말이네."

도화서에 있으면서 어떻게 저런 점까지 생각했나 싶었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당혹감을 준 것인지도 모른가 싶어 최가원은 한걸음 더 다가왔다.

"도화서에도 사대부들의 은밀한 초청을 받는 화원이 적지 않네. 그들은 자신들의 모임이나 목적을 위해 화원들 손으로 풍속화를 그리게 하는데 우린 그걸 <사인풍속화(士人風俗畵)>라 부르네."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이 그런 그림을 그리게 했다면 그것은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修契)> 같은 것이다. 관아에 몸을 담은 사대부들이 봄 가을의 세시 절기나 화창한 날 산과 강에 모여 시와 술을 즐기며 모임을 갖는 날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회상의 자료일 수 있었다.

이런 그림은 조선의 중기 이전 크게 유행했는데 모임에 참가하는 숫자만큼 화원에게 그리게 해 각자 한 폭씩 나누어 가졌다. 관벌의식 때문이었다. 그림 상단엔 계회의 명칭을 전서체로 적고 중단엔 계회(契會) 장면을 묘사하는가 하면 하단엔 참석자들의 이름이나 등과한 시기나 품계 등이 써 있기 마련이었다.

옥외에서 모임을 가질 땐 산수화를 크게 다뤄 실경산수화 성격을 띠었으며 옥내에서 인물 모습을 부각시킨 건 사인풍속화 와 흡사했다. 특히 정조 때는 종래의 관아 중심에서 중인문인층으로 확산되며 일종의 시회도(詩會圖)로 발전했다.

정약용이 그림을 내놓았다. 가지가 셋인 매화나무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며 짐작되는 바 있다는 듯 최가원이 입술을 뾰로통히 내밀었다.

"그림을 아시겠는가?"
"이건, 기유삽화(己酉揷畵)라 부르는 계회도(契會圖)네. 사암이 해미에 유배되기 전이니 한 해 전인 기유년이 맞을 걸세. 그 당시, 정순왕후가 소격서에서 춤추는 계집들을 궁으로 데려온 직후 일을 매끄럽게 처리한 아랫것들의 노고를 기념하기 위해 계회를 베푼 것으로 아는 데 아마 그것과 관계있을 것이야."

말은 그리 했지만 최가원은 뭔가 마뜩찮은 빛이 역력했다. 계회도라지만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모임을 가진 게 아니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런 명칭을 붙여야 했지만 정순왕후가 주연을 베푼 그 자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노고를 치하해 술자리를 열었을 뿐이다. 그래서 최가원은 계회도란 말을 쓰지 않고 기유삽화라 했다. 기유년에 일어난 잠시 잠깐의 흔적인데 문제는 그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었다.

그들은 한양을 떠나 고향에 낙향했거나 세상 공부를 위해 천하를 떠돌지만 그들의 생사는 들리는 소문으로 밖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보게, 사암. 내명부쪽으로 움직이던 오경환이 형조 참의의 물망이 올랐다는 소문이네. 오경환은 사헌부 장령을 지낸 자로서 나라에 공이 있음을 정순왕후가 강력히 주장했다는 풍문이니 금명간 어떤 소식이 있을 것이네. 상감이 보위에 오른 10여 성상을 돌아보면 송덕상을 따르는 문인방 패거리들의 소란이 있었고 사도세자가 목숨을 잃은 임오년 사건이 있었네."

임오년의 주역 홍필해 집안이 거덜나고 송덕상과 문인방의 패거리도 자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흩어졌다. 숨죽이며 그들이 멀리멀리 도망치길 바랐던 벽파(僻派) 쪽에서 보면 안도의 숨을 내쉴만 했는데 살해된 도화서 화원 서명하의 몸에서 가지가 셋인 매화나무 그림이 나온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가원이 입을 열었다.

"달포 전, 도승지 영감이 서명하를 찾아와 한동안 얘길 나누다 돌아갔네.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지만 영감의 표정이 초췌한 것으로 보아 간단한 일이 아니라 여겼네. 얼핏 들은 바론 회음도(會飮圖) 때문이라 했으니 아마도 소격서를 다녀온 이후 술을 마시는 모임에 관한 것이라 보네."

상감은 조정 안팎에 변화를 주어 서얼이더라도 중용했지만 정순왕후가 천거한 인물까지 받아들인 건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형조참의는 정3품이지 않은가.

"이보게 사암, 전하께서 벽파쪽에 신경을 쓰는 건 달리 뜻이 있을 것이라 했는데, 개혁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에 도화서 화원들을 크게 쓸 것이라 보기에 작은 일은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라 보네. 그런데···."

"그런데?"
"도승지 영감이 서명하를 찾아와 얘길 나눈 후 돌아간 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단 말일세. 확실한 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날의 대화가 회음도로 기유년에 역모를 꾀하려던 무리들이 모임을 가진 걸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네."

그러니까 서명하는 대령화원이 되기 전 기유년의 모임에 초청돼 모임의 당사자인 일곱 사람 중 누군가를 그린 것이다. 그러한 공으로 차비대령화원이 됐지만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일곱 사람의 면면은 밝혀졌지만 서명하가 누굴 그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목적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면 그것은 '계회도(契會圖)' 성격을 띤다. 당연히 모임의 목적은 깊이 감춰지기 마련이지만 서명하가 그린 건 유흥의 냄새를 풍기는 '회음도(會飮圖)'다. 최가원이 아래턱을 감아쥐었다.

"서명하가 죽기 전, 내외술집에서 만난 인물이 있었을 것이네. 그 자가 누군지를 찾아내는 게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지름길이라 보네. 서명하가 잠잠히 있질 않고 서두른 기색으로 내외술집에서 사람을 만났다면 그가 엉뚱한 걸 염두에 뒀을 수도 있겠지만 은밀한 뒷골목 구석방이라 자신들 얘기만 나눈다면 뉘 알겠는가?"

"흐음."
"그렇게 보면 상대방은 서명하에게서 원하는 물건을 빼앗으려 손을 썼을 것인데 정작 죽어 넘어진 서명하의 몸에선 그걸 찾지 못했을 수도 있네. 이 일이 정순왕후 추천을 받은 오경환의 존재가 드러난 지 얼마 안 된 후의 일이니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냄새를 풍기네."

정약용이 자리에서 불끈 일어섰다.
"아무래도 내외술집에 다시 가봐야겠네."

도화서를 떠나 내외술집에 돌아왔을 때 뜻밖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승지 심만기(沈晩寄)였다. 초조해 뵈던 그와 술청에 대좌하자 도승지는 주위를 단속한 후 심상치 않은 얘길 꺼내들었다.

[주]
∎계회도(契會圖) ; 모임의 성격상 어떤 목적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시회도와 뜻을 같이 한다.
∎회음도(會飮圖) ; 계회도와 같이 사용하는 말이긴 하나 이것은 술자리에 참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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