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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 중흥시킨 조선후기 초의선사의 가풍

[남도기행②] 전남 무안 초의선사 탄생지와 그의 업적...무안 여행 모든 것

등록|2010.08.13 10:55 수정|2010.08.13 10:55

수수밭초의선사 탄생지로 가는 길목에 고개숙인 수수가 먹음직스레 보인다. ⓒ 김철관



무안 연꽃 축제를 뒤로하고 오는 길을 다시 빠져 나왔다. 길가에는 빨간 꽃잎을 자랑하는 백일홍(일반 백일홍이 아님, 백일간 핀 빨간꽃이라고 붙여진 이름)이 수를 놓았고, 노랗게 핀 해바라기도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차도 옆에 위치한 밭 가장자리에 빼곡히 길게 늘러져 고개를 숙인 수수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승용차 창문 밖으로 보인 창고에는 무안 양파가 그물망으로 묶여 가득 쌓여 있었다. 첫 번째 보인 교통 표지판이 일로역을 가리켰다. 오는 8월 20일 무안 작물시험장에서 '한중일 국제고구마 워크숍'이 열린다는 현수막과 오는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2010년 코리아 F1 그랑프리대회'가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서 열린다는 광고판도 보였다. 조금 지나자 짙은 황토색 표지판에 초의선사 탄생지 1.5㎞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초의선사가 태어난 곳은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 943번지였다.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가 태어난 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아니 인기척이 없었다. 왠지 모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초의선사 탄생지를 면밀히 살폈다. 이곳은 조선차 역사박물관과 초의선사 생가, 용호백로정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성 초의선사는 한국 다도를 중흥시킨 장본인이었다. 조선후기 침체된 불교계를 일으켰으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한국 다도를 정립시켰다.

초의선사 생가조선 후기 시서화에 능동화하고 뛰어난 선승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으로서 널리 추앙받고 있다. ⓒ 김철관



초의선사 탄생지에는 생가와 추모각이 복원돼 있었고, 일지암, 기념전시관, 차교육관, 차역사관 등이 건립돼 평상시 차문화 강좌 등을 통해 한국차의 역사와 문화를 보급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1786년 음력 4월 5일(정조 10년)에 태어난 초의선사를 기려 매년 음력 4월 5일은 '초의선사탄생문화제'를 열고 있었다.

이날은 길놀이, 국악공연, 초의선사 헌다의식, 전통행다법, 시연 및 학술세미나 등이 펼쳐진다고. 또 초의등 밝히기, 차떡만들기, 다식만들기, 초의차 제다 및 시음, 찻잔 빚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통해 차와 다도를 이해하는데 유익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초의선사의 탄생지는 명당같이 보였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현판에 대각문(大覺門)이라고 쓰여 있는 문 나오고 입구를 통과하면 선사를 기리는 추모각과 일지암, 기념전시관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대각문 옆 100미터 거리에 초가집인 초의선사 생가가 복원돼 있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태어난 이후 15년간 머물다가 나주 윤흥사로 출가했다. 그 뒤 대흥사로 옮겨 당대 고승인 완호윤우대사에게 의지해 철저한 수행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평생의 지음(知音)이 됐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초의선사를 노래한 계송(鷄頌)을 보면 선사의 가풍을 짐작할 수 있다.

초의선사 기념관이곳에서는 1786년 음력 4월 5일(정조 10년)에 태어난 초의선사를 기려 매년 음력 4월 5일은 '초의선사탄생문화제'를 열고 있었다. ⓒ 김철관



두륜산 마루턱에서 주먹을 불끈 세우고
푸른 바다 비탈에서 코를 비비네
홀로 무외(無畏)의 광명을 크게 베풀며
달을 가리켜 모든 어둠을 깨뜨리누나
복의 땅이건 고통의 바다이건 가리지 않고
한 부처님의 마음을 죄다 가졌네
정명(正命)보살의 말없는 계송이여
허공을 때리는 법계(法界)의 소리여
부처에 들고 또다시 마군(魔軍)에 드니
다만 자기만이 아는 웃음소리
살고양이 쥐 잡는 지혜처럼
기(機) 용(用)이 서로 어우러져
봄바람 한 소식에 온갖 꽃이 피어
밝고 밝음이 오늘에 이르렸구려

이 계송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드린다' 글이다. 이미 할 일을 마친 초의선사를 한번 보고 미친 듯이 좋아해 평생을 사모하며 서로 그리워하고 살았던 방외(方外)의 벗에게 가슴 여는 소리로 보내는 계송이었다. 추사의 안목도 그러하려니와 두륜산 중턱에 만고불면의 주먹을 세워 보는 이는 눈을 뜨고, 듣는 이는 귀가 열리게 한 선사의 가풍은 옛을 무너뜨리는 오늘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초의선사는 당대 조선을 대표하는  대선사(13대 대종사)로서 종풍(宗風)을 바로 세웠으며, 당대 최고의 시승(詩僧)으로서 많은 선비들의 존숭을 받았으며 한국의 다성으로서 우리나라 차문화를 중흥시켰다. 또한 당대 금어(金漁)로서 불화(佛畵)를 남겼다. 선(禪)의 여가에 화초를 가꾸고 나무를 심어 임천정원(林泉庭園)을 대흥사와 일지암에 완성해 놓았다.

이곳에 초의선사기념관을 세우고 생가를 복원했으며 다성사를 세우고 초의선사 성상을 조성 봉안했으며 후학들이 학덕을 연마할 수 있게 명성관이 세워져 있다.

대각문초의선사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 김철관



초의선사 탄생지 외에도 전남 무안은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은 승달산, 백로․왜가리 번식지, 조금나루 해변, 톱머리해변, 홀통해변, 도리포해변, 나상열 가옥, 무안향교, 약사사 석불입상, 법천사 목우암, 식영정, 원갑사, 청전리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숲, 월선리예술인촌, 팔방미인정보화마을, 송계어촌마을, 분청사기 도자기체험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특히 전 공군참모총장 옥만호씨가 고향사랑 실천과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기 위해 자비 훈련기, 기증기 등을 받아 설립한 '호담항공우주전시장'도 눈여겨 볼 만한 곳이다. 무안은 국제비행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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