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들의 특별한 '수다산행'
수다쟁이들과의 즐거운 동행...건강관리에도 한 몫
▲ 기장군 남산 봉수대남산 봉수대는 기장의 대변항과 죽성항, 그리고 동으로는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앞바다, 남으로는 송정 앞바다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봉대산(해발 228m) 정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기장군 문화관광공사
수다쟁이란 말에서 무엇이 생각나세요? 저는 여자가 생각납니다. '수다'하면 '여성'은 공식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또한, 수다는 '시간 많은 여자들이 시간 때우기 위해 만나서 하는 잡다한 대화' 정도로만 여겨 왔던 게 사실입니다. 오늘 저는 그런 '수다'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사전에 수다에 대해 찾아보니 수다는 명사로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이라고 되어 있었고 수다쟁이에 대해 찾아보니 '몹시 수다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생전 모르던 그분들을 처음 만나 함께 수다떨면서 보낸 하루가 수다에 대한 저의 편견된 선입견을 완전히 뒤바꿔 놓고야 말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저의 사고방식이 이렇게도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요?
저는 시골로 귀농하여 전원주택을 꾸며 놓고 사는 게 꿈입니다. 물론 저의 능력 부족으로 꿈이 꿈으로 끝날 확률이 높지만 꿈꾸어 보는 건 자유이니 그냥 꿈으로나마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다음 카페를 찾던 중 전원주택, 귀농 뭐 이런 문구를 치고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이런 집이'라는 카페가 눈에 띄어 쳐 들어 갔습니다. 들어가보니 제가 꿈에서나 그리던 집에 사는 분들도 있었고 또 저처럼 그런 꿈을 향하며 살고 있는 분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회원에 가입하고 이곳저곳을 드나들었습니다. 거기엔 전원주택,귀농,조경,황토집,한옥,통나무집,흙집에 대한 정보가 가득 했습니다. 그 중에 저는 울산에 살고 있는 고로 '경남북,대구,부산 지역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거기 제가 좋아하는 게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영남지역 제 2차 산행 알림 |
영남지역 제2차산행 계획을 알림니다. 지난 첫 산행에 참석 해 주신 회원님 고맙습니다. 참석 못해도 관심을 가지신 모든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2차 산행계획을 올립니다.무더운 여름, 솔바람 바다바람 장어와 함께 하고 싶은 분 많이 많이 참석해 주세요. *날짜:8월 14일(토) 오전 11시 *집합장소:기장읍 대변입구( 정류소 이름) **전자 대리점 옆임 *목표산과 코오스:기장 봉대산. 대변입구-체육공원-봉수대(정상)-월전으로 하산 *소요시간:2-3시간 *준비물: 간식,우비 기타. 점심은 월전 바다장어가 좋은데...., 그때 의견에 따라 하겠음. 건강관리와 회원의 친목을 위하여 많이 참석하시길 빕니다. 산행대장 가야산 |
저는 산 길 걷는 것을 좋아 하는데 혼자 가려니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가 않습니다. 가입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산행 한다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또, 제 관심사와 꿈이 비슷한 그분들은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해졌습니다. 14일 새벽 화장실 가려고 일어 났는데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산행 못하게 되는건 아닌가하고 불편한 심기로 다시 잠들었는데 다행히도 아침에 비가 멈추고 비가 곧 다시 쏟아 질듯이 구름만 잔뜩 낀 날씨였습니다.
"오전 8시 55분까지 삼산동에 있는 KBS 방송국 앞으로 오세요"
울산에서 가시는 분 계시면 같이 가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엄지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분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습니다. 연락처로 간단히 제 소개를 하고 울산서 같이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렇게 문자가 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엄지라는 분이 여성분인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시간 맞춰 약속 장소로 갔더니 8~9인승 승합차를 몰고 나타난 그분을 보고 허걱 했습니다. 그분은 여성분이 아니고 남성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보는 그분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차에 올랐고 다른 분을 태워 가야 한다며 이동네 저동네 차를 몰고가서 태웠습니다. 모두 여성분들 이었습니다.
모두 태우고 기장으로 가는데 저보다 두어살 위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남성분들은 기장 도착하는 내내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다스런 상황에 대해 별로 관심없던 터라 그분들의 대화에 신경을 끄고 있었습니다. 신경은 끄고 있었지만 귀로는 다 듣고 있었습니다.
"내 필명이 왜 고맹이인가 하면요. 제가 아직 컴에 서툴러요. 독수리 타법으로 회원 등록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저는 분명히 꼬맹이로 쳐 넣었는데 고맹이로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고맹이로 놔두었어요. 저는 여행 가기 전엔 꼭 밤 잠을 설쳐요. 시댁 가는 날도 그렇고 친정 가는 날도 그래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고맹이라는 카페에 등록된 이름을 가진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깔깔 거리며 웃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분들의 대화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수다로만 들리던 것이 아주 유익한 대화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중년 여성들의 수다가 자꾸만 재미 있어지고 있었지요. 그분은 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어요.
"이번에 우리 밭에 참외를 3포기 심었는데 이렇게 크게 열렸어요. 보세요. 먹어보니 아주 맛있더라구요. 이거요. 아무것도 안주고 그냥 놔둔 거예요"
이번엔 아침의 향기라는 분이 말했습니다. "우리집에 스카이를 달았는데 뻑하면 동작이 멈춰요. 옆 집엔 이미 골이 들어 가서 와 하고 함성을 지르는데 우리집엔 한 참 후에야 골이 들어 가요" 하면서 서로 보며 깔깔깔 웃습니다.
우리는 기장 가는 길에 시간이 좀 남아 장안휴게소에 잠시 들러 쉬었습니다. 음료수를 시켜 놓고 그분들은 쉴새없이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분들의 수다가 점점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여러군데 살아 봤지만 울산이 제일 좋아요. 얼마 안가면 바다가 있고 얼마 안가면 1200고지 넘는 산이 있어 좋아요."
우릴 태우고 가고 있는 하루 기사님 엄지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별로 말이없어 보이던 그분도 이미 여성 회원분들의 수다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분위기 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수다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쾌했습니다. 그분들의 수다는 구김없고 순수했습니다.
그분들은 전원주택 짓고 사는 이야기도 했고 살면서 겪은 여러가지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분은 독사에 물린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풀을 뽑고 있는데 손 끝이 때끔 하더래요. 그래서 벌에 쏘였나 하고 그냥 넘긴 거예요. 참 무덤덤한 남편이지요? 점점 부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겁나더라구요. 그래도 남편은 시간 지나면 가라 앉을 거라며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제가 손 끝을 자세히 보니 이빨 자국이 두개 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독사 뱀에 물린거 같아. 병원가보자' 그래서 일주일 후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그래요. "이거 해독제 안해도 되겠네요" 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우리 남편이 좀 건강한 편이거든요"
저는 그분들의 수다가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분들 수다에 끼어들기 시작했고 저도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 갔습니다.
우린 부산 근처에 있는 기장이라는 동네로 갔습니다. 거기에 남산이라 이름한 산이 있는데 그 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 봉수대가 있는 곳까지 올라 갔다가 내려 온다고 했습니다. 창원서도 오고 부산서도 오고 우리는 울산서 가고 해서 다 모이니 여성 9명, 남성 7명으로 모두 16명이었습니다. 나중에 합류한 남자 회원까지 합하면 17명이었습니다. 서로 앞면 있는 분들도 있는지 반갑게 인사 나누는 것을 볼때 저도 즐거워 졌습니다. 저와 몇 분은 처음 갔는데도 서로 취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금세 친한 사이가 된 듯 하였습니다.
그중에 돋보이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아침의 향기라는 분입니다. 저보다 두세해 누님뻘 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오늘 참가한 분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여성분도 수다쟁이였습니다. 사람들을 아주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산 정상에 다 올라 간식을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분은 자신이 먹을 것만 간단히 싸왔고, 저처럼 몇 분은 산행후 점심 먹을 것이라 해서 아무것도 싸오지 않았는데 그분은 가방 한가득 뭔가를 싸왔습니다.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하는데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거기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놀랐습니다.
"와, 이거 다 언제 이렇게 준비 했어요?"
배고픈 사람 있을 까봐 밥도 한 도시락 싸오고 총각김치도 싸왔습니다. 부침개도 여러사람 먹게 푸짐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과일도 가져오고요. 가방이 많이 무거웠을텐데 참석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싸 온 것입니다. 울산에서 기장 오는 차안에서도 빵과 음료를 내밀었습니다.
"아침 안 드시고 오신 분이 계실거 같아서 사왔어요."
저는 짐보따리 무거울까봐 아무것도 안들고 갔는데 그분은 회원과 함께 먹으려고 무거움을 견디며 가방 한가득히 싸 짊어지고 온 그분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헌신적인 수다쟁이라면 기꺼이 좋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수다쟁이에 대해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편협한 생각속에 묻혀 살아 왔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음과 네이버에 아이사랑 마라톤 대회가 떴던데 등록했어요?"
"아니 왜요?"
"등록 했으면 사기 당할 뻔 했어요. 5,500명이나 대회 참가 하겠다고 신청했대요. 한사람당참가비 40,000원 씩 만 쳐도 2억원이 넘는 돈이예요"
두 여성 회원은 자신들도 좋은 일이라 싶어 참가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돕는 일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 여성 회원은 산행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해서 그런 뜻깊은 일에 참여하려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쁜 일이 생겨 미루다 보니 어느 순간 두 포털사이트에서 그 내용이 사라졌고 얼마후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두 여성 회원은 말했습니다.
"한동안 전화사기가 판치더니 이젠 인터넷으로도 사기치네요? 앞으로 조심해야 겠어요."
저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진짜로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이사랑 마라톤 참가비 챙겨 줄행랑' 저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랐습니다. 여성들의 수다가 모두 쓸모 없을 것이라고 여겨온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행은 산을 내려와 어느 식당에 들어가 장어 구이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하면서 저에게 또 한번의 특별한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산행 공고를 내신 산행대장님의 수다가 저를 수다쟁이 대열에 합류 시켰습니다. 산행대장님은 올해 75세 되신 분이셨습니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3분만 이야기 하자며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면서 국내에 200 여 곳이나 되는 산을 모두 가봤습니다. 산행은 몸 건강관리에도 좋지만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산이 우리를 낳고 기르고 마지막엔 우릴 다시 받아 들입니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만나서 함께 나누는게 행복입니다. 만남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기장 산행에 참석한 모든 분들은 수다쟁이 였습니다. 저도 앞으로 수다쟁이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 왔고 그래서 입이 묵직한 것이 '사내대장부'라고만 인식하며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부로 저는 그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수다야 말로 순수함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이 묵직 할수록 병이 올 확률이 높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다는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기분 전환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특히나 산행을 하거나 걷기를 하면서 수다 떠는 것은 몸 건강과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다 떠는 건 혼자 할수 없습니다. 두세명 이상이 되어야 수다가 가능해 집니다. 그래서 수다는 재밌습니다. 수다는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합니다. 저는 오늘 그 수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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