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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직선·곡선의 한국미

봉화마을·창녕·합천·산청·함양 여행(2)

등록|2010.08.17 11:34 수정|2010.08.17 11:34
한국미의 원류는 무엇보다 선(線)적인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선적인 요소에는 곡선이 있고 직선이 있으며 두 가지 요소의 하모니가 있을 수도 있다. 구불구불,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모나지 않은 둥근 앞산을 보면서 살아온 우리는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심성을 갖게 되었고 이는 한국미를 통해서 드러낸다. 한국미의 본바탕은 그래서 직선보다는 곡선에 있다 하겠다.

창녕 관룡사용선대에서 내려다본 우리의 산수우리의 산수에는 깊은 협곡도 칼날같은 바위가 우뚝 솟은 요란스러운 곳이 적다. 산은 둥글고 산줄기는 중첩되어 부드러운 맛이 있다. 한국미는 여기에서 나온다 ⓒ 김정봉



그러나 선조들은 무작정 곡선미만 추구하지 않았다. 곡선과 직선을 조화롭게 표현하든지 아니면 직선을 강조해야할 때에는 곡선을 과감하게 버리고 직선을 취하였다.

예를 들어 종묘와 같이 죽은 자를 위한 엄숙한 공간에서는 직선을 강조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단순하며 깨끗한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은 곡선이 철저히 절제되어 직선미가 강조된 것이다. 하늘을 가르는 무위사 극락보전의 맞배지붕의 측면 지붕선은 직선미의 극치라 할만하다. 

직선은 엄숙, 기품, 장엄, 정숙, 위엄, 정중, 간결, 절제, 단순, 인위(작위)라는 말과 어울리며 차갑고 정이 없으며 한결같고, 빠른 느낌을 준다. 반면 곡선은 부드럽고 세련되며 온화하고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 그리고 자연스럽고 자유 분방하며 다양하고 느린 느낌을 준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해인사 대장경판전

대적광전 위, 해인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장대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별꽃무늬 꽃담을 쌓아 법보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에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경판을 보관하는 대장경판전이 있다. 해인사 다른 건물들이 거의 소실되는 가운데에서도 이 판전은 살아남아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남게 되었다.

해인사 대장경판전의 직선의 미판전경내에는 108개의 기둥이 질서있게 배열되어있다. 필요한 기능만을 위하여(필요미) 장식과 기교는 철저히 절제되었다(절제미). 가장 단순한 집칸이 연속적으로 15칸 반복하여 엄숙하고 장엄한 멋을 낸다 ⓒ 김정봉


도무지 몇 칸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건물 두 채, 법보전과 수다라장이 나란히 서있고 동·서에 각각 사간고가 자리하고 있다. 판전경내에 있는 기둥수는 모두 108개다. 이 108개의 기둥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고 장식과 기교는 철저히 절제되었다. 법보전과 수다라장은 단순하고 같은 모양의 집칸들이 15번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만들어졌다. 

대장경판전 날살문통풍을 위한 날살문이 각 집칸마다 설치되어 있다. 간결하고 깔끔한 날살문은 주로 수행승의 선방(禪房)에 어울리는 창문으로 엄숙한 분위기가 난다. 날살문 양옆으로 모기둥이 아닌 두리기둥이 서있어 날살문의 직선과 두리기둥의 곡선이 조화롭다 ⓒ 김정봉


직선으로 길게 뻗은 지붕과 기둥열은 건물 일직선상에서 보면 그 끝을 알 수 없다. 차갑고 냉정하여 정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엄숙하고 장엄해 보인다. 직선의 힘, 직선의 미가 흐르고 있다.

수다라장 월문엄숙하고 장엄한 직선의 공간인 법보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은 부드러운 곡선의 문, 월문을 두어 절묘하다. ⓒ 김정봉


이 판전에서도 직선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대장경판전에 들어가는 수다라장 문은 월문으로 네모진 게 아니라 달모양으로 둥글다. 판전의 직선과 월문의 곡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또한 판전 건물은 칸마다 통풍이 되도록 모두 살창을 두고 있는데 모두 직선으로 내리 뻗은 날살문을 하고 있다. 날살문 옆에 서있는 모든 기둥은 모기둥이 아니라 두리기둥이어서 날살문의 직선과 모기둥의 곡선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하늘 향해 우뚝 솟은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

술정리동삼층석탑은 창녕 재래시장 근처, 창녕 중심지에 서있다. 비화가야 고분군과 더불어 이 탑 덕에 창녕이 곧잘 제2의 경주로 불린다. 이 탑에서 200m 떨어져 있는 곳에 초가 중에 으뜸으로 치는 '술정리하씨초가'가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조선 중기, 하씨 선조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을 때 이 탑에 끌리어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 본다. 종종 탑이 길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곡선의 요소를 자제하고 직선의 미를 살려 부드러움보다는 상쾌함이 있다 ⓒ 김정봉


술정리동삼층석탑은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에 버금가는 명작으로 꼽힌다. 상륜부 머리장식이 없어 언뜻 보기엔 둔하게 보이나 머리장식을 머릿속에 그리며 위로 훑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간결하여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상쾌하게 솟는다. 감은사터나 고선사터 삼층석탑의 웅장함이 사라지고 장식이 절제되어 깔끔하고 당당해 보인다.

곡선을 자제하고 가급적 직선을 사용한 결과다. 기단과 탑신에 모두 기둥모양의 장식을 했는데 모두 간결한 직선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한결 같이 꼿꼿한 기품있는 선비 같고 담으로는 토담이 아닌 사고석담이며 지붕으로 비유하자면 팔작지붕이 아닌 맞배지붕이다.

그런 가운데 기단부가 넓어 안정감을 잃지 않았고 지붕돌 처마가 네 귀퉁이에 이르러 살짝 고개를 들고 있어 마냥 직선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석가탑은 처마선 마저도 곡선으로 처리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 옆에 있는 다보탑이 대신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 탑의 상륜부 머리장식은 모르긴 해도 화려한 장식에 곡선을 강조하여 둥글둥글한 머리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직선만을 강조하지 않은 우리의 미적 감각을 감안하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농민항쟁의 결연한 의지는 구불구불 단성향교 마을길을 휘돌아 가고

단성향교는 산청 단성면 강루리에 있다. 1862년 농민항쟁의 조직적 구심점이었던 단성향교이기에 단성 농민들의 결연한 의지가 이곳 단성향교와 마을에 서려 있다. 마을 담은 토담으로 쌓았고 군데군데 손을 보지 않아 무너진 곳도 있지만 담이 방어목적으로 쌓은 것은 아니어서 상관없다.

단성향교마을길 구불구불 휘어진 마을길은 이 마을에 정을 붙일 여유를 준다. ⓒ 김정봉


마을길은 직선으로 바로 향교로 연결되지 않고 다행히 구불구불 휘어져 있다. 느릿느릿 걸으며 이 마을에 정을 붙일 여유를 준다. 직선으로 뻗은 길은 정 붙일 여유를 주지 않아 매력이 없다. 

앞산의 능선이 그대로 내려앉아 있는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창녕이 6가야의 하나로 꼽혔던 비화(빛벌)가야의 옛터전이었음을 알려 준다. 가야는 오직 유물과 무덤으로 역사를 말한다. 이렇다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비화가야는 고분군의 규모나 출토 유물로 미루어 금관가야나 대가야에 결코 뒤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교동·송현동 고분군 봉긋봉긋 도드러진 봉분은 목마산 산자락의 흐릿한 능선과 참 많이 닮아 있다. ⓒ 김정봉


고분군은 낮은 언덕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청도로 가는 큰 길이 나면서 원래 붙어 있던 고분군은 둘로 갈라져 이렇게 부르고 있다. 가야의 비운의 역사는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끝까지 무덤으로 남아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기도 하다.

교동·송현동 고분군교묘한 위치에 서면 어머니의 젖가슴을 대하는 양 포근하여 마음이 편안해 진다 ⓒ 김정봉


낮은 언덕에 자리한 무덤은 앞산 능선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하다. 앞산의 능선과 고분군의 능선을 오버랩하면서 보고 있으면 한국 미의 본바탕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고분군의 아름다운 곡선은 우리의 심성을 그대로 닮아 있어 부드럽고 온화하며 평화롭고 따뜻하다. 교묘한 위치에 서면 어머니의 앞가슴을 대하는 양 마음이 편안해지며 무상무념의 행복한 상태에 빠진다.  

직선과 곡선의 하모니, 영암사터 석축과 돌계단

영암사지 금강터앞에는 쌍사자석등을 떠받치고 있는 석축이 있고 그 석축 양옆에 금강터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석축은 막돌을 쌓은 다른 절과는 격을 달리 한다. 직선의 위엄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영암사지 금강터 앞 석축과 돌계단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석축을 쌓아 다른 절과는 격을 달리한다. 엄숙한 직선의 미가 느껴진다. 그 옆의 돌계단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 김정봉


이것으로 그쳤으면 영암사터는 위엄있고 엄숙한 그런 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게 휘어진 앙증맞은 돌계단과 석등을 받치고 있는 빵빵한 사자의 엉덩이를 보면 엄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는 사라진다. 여기에 돌계단과 사자의 엉덩이가 딱딱한 직선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든 절묘한 하모니가 있다.

쌍사자석등 사자의 뒷모습 S라인으로 흐르는 빵빵한 엉덩이모습 하나로 엄숙한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진다. ⓒ 김정봉


예전부터 우리는 직선을 빌릴 때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혹은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단순화하여 제 기능을 다하게 하기 위해 직선을 빌린다. 직선을 빌릴 때도 직선만을 강조하지 않고 곡선을 절묘하게 끼워 넣어 직선과 곡선의 미를 조화롭게 살린다. 어디 미적인 데에 국한하겠는가. 세상사 모두 이런 조화로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무자비하게 길을 뚫는다던가, 태생이 곡선으로 흘러야 하는 강물에게 직선을 강요한다던가, 요새 우리는 빠르고 정이 없고 위엄있고 엄숙한 직선만을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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