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청와대 "모든 요구 지켰다, 이제는 박근혜 차례"

[분석] 이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양자관계 '회복' 가능성

등록|2010.08.22 22:10 수정|2010.08.22 22:10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21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배석자 없는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청와대 회동이 21일 성사된 후 이날의 회동이 여권의 갈등 구도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임기 반환점(25일)을 앞둔 상황에서 두 사람의 화해는 정권의 안정적인 운영에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22일 정오 무렵 춘추관 출입기자들에게 양자의 오찬 회동이 약 1시간 반 동안 이뤄졌음을 알렸다. 두 사람의 회동에 배석자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와대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짓는 모습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박 전 대표 측이 회동에 앞서 두 가지 조건을 얘기했고, 청와대는 모두 지켰다"고 말했다. 한 가지는 회동 전까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대화 내용을 박 전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양자회동 계획을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수석, 정무라인의 일부 비서관들만이 알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 태세를 취했다. 이튿날 오후까지 대화 내용이 '청와대발 언론보도'로 새어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박 전 대표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게 청와대의 내부평가다.

박 전 대표가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측근들이 '비교적 온건한' 브리핑을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두 분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경제문제를 포함한 국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당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임을 잘 얻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언론 보도가 계속 나오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그러한 내용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근혜 비서실장' 역을 맡은 같은 당 이학재 의원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는 상당히 긍정적인 회동인 것 같다"고 전했다. 언론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박 전 대표와 직접 통화를 해 분위기를 살폈는데, 그의 어조와 뉘앙스로 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전 대표가 양자 회동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론보도에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07년 대선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 6차례 회동을 했는데, 이듬해 총선이 끝난 2008년 5월 10일의 회동은 '최악의 만남'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될 일"이라고 대통령을 질타했고, "청와대가 (친박연대 수사와 관련해) 매일 검찰에 전화를 넣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는데 잘못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런 게 있겠냐?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겠다"고 답했다. 박 전 대표가 모든 대화 내용을 언론에 직접 브리핑했는데, 청와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기 입맛에 맞게 발표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짧게는 개각 인사청문회, 길게는 9월 정기국회 내다본 만남"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21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배석자 없이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가졌다. ⓒ 청와대 제공


한편, 이번 회동은 두 사람이 논의할 중심 의제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기에 더욱 파격적이라고 할 만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짧게는 개각 인사청문회, 길게는 9월 정기국회를 내다본 만남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포함한 인사청문 대상들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야당의 공세를 돌파하기 위해 박근혜계의 협조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과의 만남에서 김태호 후보자의 총리 기용에 대해 장시간 설명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후보자의 총리 발탁이 '박근혜 견제용'이라는 해석이 많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그와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언질을 줬을 것이라는 얘기다.

9월 정기국회 이후에는 국정감사와 4대강 예산 심의에서 여야의 대치가 예상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폭넓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얘기다.

두 사람이 개헌의 방향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로의 권력구조 개편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박 전 대표의 힘을 빼려는 포석"이라는 친박그룹의 의심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정현 의원의 브리핑에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임을 잘 얻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두 사람이 최소한의 신뢰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친박 의원들의 계파모임 '여의포럼'이 모임의 해체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 엑스포 관람차 18일 중국으로 떠난 여의포럼 회원 17명은 방문기간 중 "귀국한 뒤 회원들이 모여 해체 여부를 논의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왜 우리가 (친이보다) 먼저 하느냐"는 종전의 기류가 달라진 셈이다.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26일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주목할 만하다.

이 후보자는 도곡동 땅이 이 대통령의 소유라고 주장한 국세청 간부 안원구씨의 축출에 관여하고 위장전입·논문 표절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후보자의 청문회가 열리는 곳이 박 전 대표가 소속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다.

박 전 대표의 청문회 참석 가능성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양자 관계의) 청신호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