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며느리도 용돈을 주셔야죠"
퇴원하신 노모, 아들 손자 며느리에 용돈을 주다
▲ 퇴원하신 날지난 7월 5일 오후 퇴원하시자 마자 거실 소파에 앉아 묵주기도를 하시는 노친. 묵주기도 하루 기본 네 꿰미(20단)도 원상 회복되었다. ⓒ 지요하
지난해 11월 초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노친을 입원시켜놓고 일시 집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가져온 노친의 옷가지들을 받아 세탁기에 넣으려고 호주머니들을 뒤지던 아내가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5만원권 지폐 한 장과 1만원권 지폐 열여덟 장, 23만원이 들어 있는 봉투였습니다.
"이건 어머님 돈이니까 넘보지 마세요."
"아쉬울 땐 일단 쓰고 봐야지, 뭐."
나는 항의의 뜻을 표했지만 언감생심, 마누라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나는 그 돈 봉투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 돈 봉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건 마누라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 부부는 건망증 쪽으로도 부창부수, 일심동체의 경지를 보이니까요.
하여간 그 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태안의 서해안요양병원으로 옮겨오신 노친은 기적같이 완쾌되어 마침내 7월 5일 퇴원하여 집으로 오셨습니다.
집에 오신 노친은 다음날 당신 방의 '기도상' 앞에 앉아 기도를 하다가 성모상 뒤에 검은 비닐봉지가 접혀진 채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봉지 안에 든 것이 돈 봉투임을 확인하고는 내게 얼마인가 세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23만원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돈이냐고 물으셔서 나는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다가 학교에 가 있는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지요.
"어머님이 지난해 11월 초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어머님 옷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에요."
며느리의 이런 대답을 들으신 노친은 감격하시는 표정이었고, 수중에 돈이 없어 허전한 판에 잘 되었다며 싱글벙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내게 5만원을 주시고, 대학생 손녀와 손자에게도 5만원씩을 주셨습니다.
나는 넉살좋게 돈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려 8개월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신 노인네가 퇴원 다음날 아들과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주는 경우는 이 세상에서 우리 집밲이 읎을 규."
저녁때 퇴근해서 이런 얘기를 들은 마누라가 노친께 항의를 했습니다.
"어머님, 저한테도 용돈을 주셔야죠."
"줘야지. 근디 며느리헌티두 5만원을 주면 나헌티는 3만원밲이 안 남는디."
"그럼, 저한테는 5천원만 주세요."
그리고 마누라는 노친에게서 1만원을 받아 5천원을 거슬러 드렸습니다. 그런 '흥정과 거래' 가운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천주교 대전교구 22일치 <대전주보>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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