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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지리교사 그만두라고 하시지요

2014년 수능시험개편안,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물어봤더니

등록|2010.08.25 20:12 수정|2010.08.25 20:12

▲ 이번 수능시험 개편안은 국영수 집중 심화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한 입시학원 주최의 입시설명회 모습. ⓒ 뉴시스


지난 19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장기대입선진화연구회(총괄위원장 성태제 이화여대 교수)에 의뢰해 진행한 대입 전형 개선 방안과 2014년 수능시험 제도 개편 방안이 발표됐다.

이 방안의 핵심은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낮추고 수시 전형을 확대하면서 입학사정관제로 단순화자는 것과 동시에 수능을 연 2회 치르고 국영수 과목에 수준별 시험을 도입하며, 3개의 탐구영역 응시과목 수를 줄이는 것 등이다.

사교육-학업 부담 감소는 그들만의 희망 사항

정부는 이번 개편안을 통해 ▲ 수험생의 과도한 수능 부담 완화 및 사교육비 경감 도모 ▲ 대입여건 변화에 따른 수능 역할 재설정 ▲ 개정 교육과정 취지를 반영한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 기여를 가져올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교 현장에서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우선 개선안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감소 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이번 개선안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라는 애초 목적이 무색하게도 국영수 등 일부 수능과목 수업 시수만 늘리고 교양이나 예체능 과목은 급격히 감소해 버려 오히려 고교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 개편안이 사교육비 경감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그들만의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능 2회 실시가 선택권 확대? 10번이라도 응시할 것

또 이번 개편안은 수능을 2회 실시하고, 난이도를 2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과부는 이를 가지고 학생의 선택권 확대라고 주장한다. 단 한 번의 수능 시험으로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대학을 결정한다는 게 문제가 있어 2회로 횟수를 늘리는 것이 긍정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수능 시험을 2회로 하는 것이 학생의 선택권 확대로 이어질까?

"수능 시험을 선택해서 두 번 치를 수 있다고 하면 1번만 칠 사람?"이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아무 머뭇거림 없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데요? 1점이라도 더 받으면 이익인데 무조건 두 번 다 치지..."라고 대답한다. "그럼 수능 2번 칠 수 있게 하는 것이 학생 부담을 줄이는 것 하고는 상관 없는 거냐?"라는 추가 질문에는 "그래도 한 번으로 12년 모든 공부 결과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조금 나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에서 각각 94점을 받은 A학생과 첫 번째는 85점, 두 번째는 95점을 받은 B학생 중에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일까?"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모두 "두 번 다 94점 받은 A학생이 더 잘 하는 학생이지요"라고 답한다. 그런데 "틀렸단다. 새로운 수능 개편안에 의하면 결과적으로 A학생은 94점, B학생은 95점이 되어 B학생이 더 높은 수능점수를 받게 된단다"라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게 어딨어요? A학생이 억울해서 어떡해요?"라고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이어지는 학생들의 말.

"높은 점수를 하든, 평균 점수를 하든... 수능 한 번 치나 두 번 치나 그거 하나도 안 중요해요. 수능이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인생을 좌우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별로 안 달라질 것 같은데요..."

결국 수능 시험 횟수와 학습 부담, 선택권 보장의 관계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수능 2회 실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능이 처음 도입된 1993년에도 8월과 11월, 2회 수능 시험을 봤다. 그러나 오히려 학생의 부담만 늘리고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는 등 문제점만 노출시킨 채 1년 만에 사라졌다. 당시에도 응시 선택권을 주었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두 번 모두 응시하여 오히려 부담만 늘렸다.(물론 당시에는 과목별로 높은 점수를 선택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단 1점이라도 더 받는 것이 대학 입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어느 수험생이 한 번만 응시하겠는가? 1차 시험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획득했다 하더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하여 두 번째 시험에 또 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에서도 이런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 2회 실시를 다시 도입하면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눈감고 아웅하는 꼴이다.

인문사회 과목은 어쩌라고? 과목수 축소가 학습 부담 감소 아니다

▲ 한번이든 두번이든 수능시험이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수능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2009학년도 대입수능 시험 날 수험장 앞 풍경. ⓒ 권우성


또 현재 수리 영역만 가와 나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국영수 영역 모두 난이도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2원화하는 것과 탐구영역에서의 시험 과목을 한 과목으로 축소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전에 탐구영역에서 1~4과목 내에서 학생이 과목과 수를 선택할 수 있던 것을 1과목만 응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학습부담이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인제 우리 지리 같은 과목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수능 개편안 같은 체제로 가면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를 합쳐서 한 과목으로 가르치라는 것인지, 아니면 세 과목으로 배우되 시험만 한 과목으로 하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이전에 세 영역으로 나누어서 배우던 것을 한 과목으로 통합한다고 해서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는 정부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우리 학교 지리 선생님의 말이다. 부전공 하라는 것인지... 차라리 지리교사 그만두라는 것이 더 솔직해 보인다고 항변한다. 국사 과목 역시 이전에 국사와 근현대사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던 것을 국사 과목으로 통합하고 한꺼번에 시험을 보는 게 학습부담을 줄인 것일까. 그럼 과학 선생님들은 이를 환영할까? 대학교에 가서 이공계열 학문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에서 적어도 2가지 영역 이상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게 과학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제 과학 과목도 교양 과목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구나!"라고 한 과학 선생님이 한탄한다.

학생들이 학습부담을 과중하게 느끼고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켜 온 것은 국영수 과목이지, 1~4과목 선택하던 탐구영역이 아니다. 탐구영역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영수 과목의 비중을 확대시켜 오히려 학습부담을 증가 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수준별 수능이 사교육비 감소? "그런 쓸데없는 짓 왜 해요?"

이번 개편안은 국영수 과목을 모두 난이도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구분하여 학생들이 선택하여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고, 자기 학업 능력에 따른 난이도를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교육 감소를 가져올 것이란다. 이 역시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난이도는 과목당 30~50개에 이르는 문제별로 다른 것이어서 그것을 가지고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쉽게 내거나 모든 문제를 어렵게 낸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를 들면, 1번 문제는 난이도가 '상'이고 2번 문제는 난이도가 '중', 3번 문제는 난이도 '하' 하는 식으로 출제하고 이들의 분포를 조절함으로써 전체적인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과부는 마치 모든 문제의 난이도가 똑같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예체능 계열 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난이도에 따른 수능 2원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이나 학과에서 같은 점수라면 난이도가 높은 수능 형태를 선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싫든 좋든 난이도가 높은 수능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난이도가 서로 다른 A형과 B형 시험을 각각 치른 학생들이 각각의 수능 점수를 대학에 제시할 경우 이 차이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대한 대책이 없다.

A형과 B형의 난이도 차이를 실제로 얼마 정도의 점수 차이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두 번의 수능 시험에서 한번은 A형, 한번은 B형을 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과적으로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서는 A형이든 B형이든 특정한 형태를 요구해 버리면 학생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어 학생의 선택권은 사실상 없어진다. 이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역시 아무런 근거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해진다.

수준별 수능 시험이 학생의 부담을 감소시켜서 사교육비를 감소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쓸데 없는 짓을 왜 해요? 99% 둘 다 보거나 높은 수준 시험 볼 텐데..."

수능 자격고사화 등에 대한 근본적인 체제 변화가 필요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사실상 '선발고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선택권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 응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은 많은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어쩌면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감소시키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교육계의 진단이다. 수능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SAT,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영국의 A-level, 독일의 아비투어 등은 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우리의 수능 시험을 영어로 'K-SAT'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이 시험들은 대부분 일정한 수준을 요구하는 자격시험이라는 점에서 1점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 수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SAT만 하더라도 자격시험이고, 수시 시험 체계이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과도한 학습 부담이나 사교육비 유발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외고랑 자사고랑 강남애들만 가려뽑을 텐데...

▲ 특목고, 자사고, 외고 등을 선호하는 우리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 문제도 심각하다. 사진은 한 외고의 입학시험 당일 모습. ⓒ 권우성


"외국에서는 대체로 우리 수능 같은 시험은 일정한 자격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에 점수 1점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우리도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나머지는 학교별로 내신 성적이나 특기적성 등을 고려하여 학생이 대학을 입학할 수 있도록 하면 대학 서열도 좀 줄어들고 학생들의 수능에 대한 부담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학생들의 수능 시험 자격고사화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던진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한 아이의 답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런 생각을 깊이 해보지는 않았는데... 자격고사화 하면 좋은 학생들을 뽑기 위해서 일부 대학들이 외고, 자사고 등 학교만 보고 뽑고, 부모님 직업이나 지역 보고 일부 학생만 가려뽑으려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그러고 있는데..."

결국 우리 교육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우리도 이제 수능 체제 개편에서 실시 횟수와 과목수가 아니라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근본적인 고민을 뒤로 하고 횟수와 과목 수만 바꾸는 것은 조삼모사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국민은 원숭이가 아니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번 수능개편안이 국영수에만 집중되고 다른 교양과목들을 고사 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예상된다. 이는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고 사교육비 경감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수능의 자격고사로의 성격 변화 등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 그 논의에 학생과 학부모, 국민을 빼고 교육부 관료나 학자 몇 명이 앉아서 하는 것은 이번 개편안처럼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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