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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조연 박철민과 전태일은 무슨 관계?

영화배우 박철민, '전태일 다리' 이름짓기 캠페인 홍보대사로

등록|2010.08.27 12:07 수정|2010.08.27 12:07
명품조연, 수석조연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들의 광대 박철민이 '전태일 다리'에 섰다. 영화촬영 때문이 아니라 전태일 다리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26일, 이 자리에서 '전태일다리 이름짓기 범국민캠페인 <808행동>' 선포식이 열렸다.

▲ 전태일다리 이름짓기 범국민캠페인 <808행동>선포식이 전태일다리(현버들다리)에서 열렸다. ⓒ 이선옥


<808행동>은 전태일 열사의 생일인 8월 26일부터 기일인 11월 13일까지 80일 동안 하루 8명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말한다. 청계천6가 평화시장 옆 전태일 동상이 있고, 전태일 분신 자리가 바로 곁인 그 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이름 짓기 위한 캠페인이다.

이날 배우 박철민은 이 자리에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섰다.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 등 사회적인 발언을 했거나, 그런 무대에 선 연예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요즘, 그의 행동은 용감하고 특별해 보였다. 이 하수상한 시절에 대중연예인인 그가 전태일 다리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명품조연 박철민과 전태일 열사는 무슨 관계?

▲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 이선옥


올해는 전태일 열사의 40주기다. 40주기라는 말을 듣고 난 사람들의 첫 마디는 대개 "벌써?"다. 그렇다. 벌써 40주기다. 전태일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노동자라는 단어를 처음 새기게 되었던 세대는 중년의 고개를 이미 넘어섰고,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숨어서 읽는 통과의례를 치렀던 386은 늙수레한 중년이 되어간다.

그들의 아이들은 6·10이 먼저인지 5·18이 먼저인지 교과서를 보며 외우고, 그의 부모들이 몰래 읽던 <전태일 평전>을 독후감 과제로 내는 세상이다. 배우 박철민도 이른바 386이다. 그 시절 길바닥에서 가슴 뜨거운 청춘을 보낸 경험이 있기에 전태일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은 배우다. 하지만 전태일을 기억하는 것과 홍보대사까지 수락한 것은 다르다.

그는 선포식 자리에서 홍보대사를 맡은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막 살고, 딴따라로 사는 사람인데…. 저보다 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이 사업을 함께 하면, 더 많이 널리 알릴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저라도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인기 없는 대신 발품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인기 없는 대신 발로 뛰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역시 연예인이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사인을 받아갔고, 카메라 없는 한 켠에서 조용히 소원지를 매달고 있을 때는 순식간에 카메라가 몰려들어 그를 찍어댔다. 대열 안에 있을 때 그는 조용했지만, 캠페인 첫 주자로 피켓을 들고 섰을 땐 배우답게 익살스런 표정과 다양한 포즈로 능숙하게 배우임을 증명했다.

그는 640명이 참여하는 범국민 캠페인의 첫 주자로 나서 1시간 동안 "버들다리 No! 전태일다리 YES!" 피켓을 들고 전태일의 동상과 나란히 서서 시위를 했다. 스스로를 '막사는 사람', '딴따라'라 낮추었지만 그는 심지가 곧은 배우였다. 늘 익살스런 역을 맡아왔고, 실제로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재담꾼이지만, 연예인의 사회참여나 전태일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얘기할 때 그는 진지했다.

"세상의 관심을 받는 배우니까 이런 일에도 도움이 된다면 대중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나는 배우가 정치인 선거에서 띠 두르고 있는 게 제일 불쌍해 보인다. 지지하면 표로 찍어주는 게 맞다. 내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보면 도와주고 싶은 분도 있지만, 왜 저런 사람이 나를 찾지? 하는 정치인도 있다. 선거에서 그런 지지행동을 하면 배우로서 어색한 위치가 되더라. 그래서 좀 미안한 분이 있다 해도 정치 선거에는 안 나가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내가 발품 팔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것 같아서"

▲ 1시간 캠페인을 마치고 다음 주자인 청소용역노동자와 바통터치를 했다. ⓒ 이선옥


아무리 친한 사람이 부탁한다 해도 정치 선거를 돕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 원칙을 가진 배우이지만 그는 참여연대에서 강의도 하고, 아름다운 재단이나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도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있다. 선거는 아니어도 시민운동도 분명 정치인데, 그에 대한 부담은 없는 것일까?

"세상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그닥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도 각자의 색깔이 있고 장단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많이 좋아하지도 한나라당을 많이 싫어하지도 않는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절대지지는 위험하다. 특히 배우는 더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배우가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상황에 발언을 하면 그 반대쪽 사람들이 그 배우를 미워한다. 그 사람까지 미워해 버리는 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에겐 위험한 일이다. 권해효, 문성근 형들이 그런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는 절대선과 절대악 대신 '다른'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고 그런 '다름'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기의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이순재 선생의 연기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그는 정말 훌륭한 연기를 하는 배우이지만 세상에 틀리고 맞는 연기란 없다. 나만의 연기가 있을 뿐이다. 모두가 이순재가 될 수는 없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전태일 40주기 행사의 홍보대사를 수락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내가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았던 인물,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던 인물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쨌든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인 내가 다가간다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무언가를 반대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던 인물에 대해 알리고 싶다 했다.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을 '정서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줄 아는 배우. 그런 배우 흔치 않다. '다름'과 '틀림'에 대해 얘기하는 배우. 그런 배우도 흔치 않다.

영혼 있는 배우와 나눈 대화는 즐거웠고 여운이 남았다. 15년 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재단사로 잠깐 출연한 기억을 아직도 행복하게 간직하고 있는 배우, 전태일 40주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홍보대사는 없어 보였다.
덧붙이는 글 참세상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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