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김정일의 중국 이동 루트
4개월 사이 동북3성 모두 훑어...'개방 확대' 포석인 듯
▲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7일 첫 방문지인 지린성 지린시의 우쑹호텔을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 일본 NHK의 카메라에 잡혔다. ⓒ NHK
[ 기사 수정 : 30일 오전 10시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내 이동루트가 흥미롭다.
26일 자강도 만포를 넘어 지린(길림)성 지린시로 들어간 그는 27일, 지린성 성도인 창춘(장춘)으로 이동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고, 창춘시 외곽의 농업박람회장과 지린 농업대학 등도 방문했다. 28일 밤 창춘을 출발한 김 위원장은 29일 자정쯤 헤이룽장(흑룡강)성 하얼빈에 도착했다.
지난 5월 3~7일까지 방중때 랴오닝(요녕)성의 다롄시를 방문한 것까지 합치면, 김 위원장은 4개월 사이 북한과 밀접한 지역인 동북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전체를 시찰한 셈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이동루트는 '창지투' 사업지역과 일치한다. 지린성 성도이자 창지투 사업의 핵심인 창춘과 지린을 방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헤이룽장성의 하얼빈을 방문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헤이룽장성에는 북한에 공급하는 석유가 나오는 따칭유전이 있고, 중국 최대 곡창지역이라는 점에서 북한과 적지않은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는 지역이다. 또 하얼빈이 부친인 김일성 주석의 항일활동의 무대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지린시 위원(육문)중학교 방문에 이은 '성지순례'의 연장성격도 있다.
김 주석은 위원중학교 시절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1929년 가을에 중국 군벌에게 반일혐의로 체포돼 8개월간 옥살이를 한 뒤 하얼빈으로 도망했으며, 여기서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도움으로 은신했다. 또 위원중학 당시 동지였던 김혁이 하얼빈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30년 사형을 당하자 하얼빈에 한달간 머물면서 김혁 체포 경위를 파악하면서 직접 조직활동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귀국 전에 창지투 중 북한과 바로 인접해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옌지(연길)와 투먼(도문)을 방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 이동루트, 창지투와 일치
일명 '창지투사업'은, 애초 지린성이 성차원에서 만든 지역개발계획사업으로 정확한 이름은 '두만강지역개발계획요강'이며, '창지투를 개발개방선도구로'라는 부제가 붙었다. 지난해 11월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됐으며, 중국 정부는 약 400억불(2900억위안)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중국 동북진흥계획 ⓒ 고정미
상하이나 광저우 등 해안 중심으로 발전해 온 중국은 중공업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낙후된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의 개발을 위해 동북진흥계획(동북노후공업지역진흥계획)을 만들었는데, 그 핵심사업이 베이징, 톈진을 포함한 발해만 경제권을 상대로 하는 '랴오닝성 5개 연해도시 개발경제벨트' 사업과 동북아를 대상으로 하는 '창지투'다.
'동북3성개발'은 현재 중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가 2003년에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그는 이 사업의 영도소조 조장을 맡아 직접 관장하고 있다.
창지투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현재 동북3성 전체의 해상 물류를 처리하는 곳은 랴오닝성의 다롄뿐이라는 점에서, 해외출구를 찾는 동북3성에게 부동항인 북한의 나진과 청진의 '확보'는 관건적인 사안이다. 훈춘의 취안허(권하) 맞은편인 북한 함경북도 은덕군 원정리를 거쳐 나진까지 가는 불과 60㎞ 정도이고, 투먼의 싼허(삼합)에서 회령을 거쳐 청진까지 가는 길도 70㎞다.
북한이 올해 1월 중국 지린성과 가까운 함경북도의 나선(나진-선봉)시를 특별시로 지정하자, 북한이 창지투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해석했지만 그 뒤 뚜렷한 진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강일 옌볜대 동북아연구원장은 "이 큰 동북3성이 (랴오닝성의) 다롄항 하나 놓고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북3성의 문제이고,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이 특히 그렇다"며 "나진항과 청진항을 이용해 동해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 경제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으로서는 나진과 청진항을 확보하면 동해와 태평양으로 바로 나갈 수 있고, 중국 남방으로도 연결된다.
지난 5월 다롄 방문해 '동북진흥계획 성과' 인정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다롄시 방문때 "동북지역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당과 정부가 제시한 동북진흥전략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동북진흥계획의 성과를 인정했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다롄을 거쳐 베이징에 온 김 위원장에게 "중북 무역협력의 잠재력은 매우 크며 쌍방이 공동 노력과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변경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을 가속화해 새로운 합작 영역과 합작 방식을 찾아 양국 인민의 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그가 말한 '합작 프로젝트', '변경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의 핵심 사업은, 압록강변에서는 '신압록강 대교' 건설, 두만강쪽에서는 창지투사업과 연결되는 나진항·청진항 개발, 훈춘-나진간 고속도로 건설 등이다. 당시 중국의 한 북한경제전문가는 "중국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를 만한 상황"이라고 반겼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중국의 민간 창리그룹이 나진항 1호부두 10년 사용권을 확보한 것은 그 이전 일이었지만, 나진항과 청진항 개방과 사용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고, 중국의 물자를 훈춘에서 나진항으로 실어갈 고속도로 건설도 말만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창지투 지역을 방문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동북지방의 다롄을 방문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하고, 체류시간의 대부분을 창지투 등 동북에서 보내고 있는 것일까.
동북지방 시찰...지원대가로 중국에 대한 개방 가속화 의지 밝히나
▲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훈춘시 권하해관과 마주보는 북한 함경북도 은덕군 원정세관. ⓒ 권우성
기본적으로는 북한의 경제난이 그 이유일 수밖에 없다.
윤승현 옌볜대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의 제일 큰 목적은 고질적인 경제난에 대홍수가 겹친 상황에서 긴급하게 중국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 위원장이 계속 창지투 등 동북지방을 시찰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개방의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국의 지원에 대한 대가로 중국의 동북3성개발계획을 수용해, 적극적으로 중국 쪽에 문을 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옌지(연길)의 한 대북무역상은 "북한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가 관건인데, 이 시점에 김 위원장이 방문했다는 점에서 나진항과 청진항 개방문제와 훈춘-나진 고속도로 건설도 눈앞으로 다가온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북중간의 밀착은 갈수록 강화되고 한국의 역할은 줄어드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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