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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통이 막혀 물난리 날 뻔했는데...

등록|2010.08.31 10:00 수정|2010.09.01 09:23

▲ 옥상에서 키우고 있는 배추 모종. 비 때문에 아주 신경이 쓰인다. ⓒ 오창균


새벽에 내리치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옥상의 배추 생각만 하다가 날이 밝아 바로 올라가 밤새 안녕한지 살피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된 지도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밤새 쏟아진 폭우에 걱정이 되어 옥상에 올랐다.

해충을 막기위한 텐트형 모기장에 씌운 비닐은 저만치 날아가 처박혔고 모기장 한쪽이 주저앉을 만큼 지난밤 폭우는 기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배추모종은 별탈 없어 보이지만 해를 못 봐서인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모종을 살펴보고 있는데 옆집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저씨 밤에 큰 일 날뻔 했어. 하수구가 막혀서 아랫집에 물이 들이쳐서 아주 난리를 쳤다니까. 우리 아들이 비 맞으면서 막힌 흙을 다 파냈다니까. 아랫집 아줌마가 우리집 때문인줄 알고 막 올라왔는데, 아저씨 옥상에서 쓸린 흙 때문에 막힌거여. 하하하'

'아 그랬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흙이 쓸려간 것 같네요.'

옆집 할머니에게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서 보니 물이 내려가는 수채통 옆에 놓인 바가지에 걷어낸 흙이 담겨 있었다. 배추모종을 만들 때는 일반 흙보다 입자가 굵은 상토흙을 사용하는데 바닥에 흘린 상토흙이 빗물에 쓸려서 수채통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수채통 옆으로는 작은 쪽문이 있는데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문틈으로 빗물이 넘쳐서 방까지 넘칠 뻔 했다고 한다. 너무 미안한 마음과 뒤처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을 느꼈다. 맞벌이 하는 1층집에 찾아가려 했으나 출근 시간이라서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점심 때가 가까워 전화로 먼저 사과를 하고,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싶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10년 넘게 살았어도 옥상에는 올라가 보지 않아서 그런 줄도(옥상 농사 하는 것을) 모르고, 옆집 하수구인 줄 알고 할머니집에 찾아갔는데 그 집 아들이 비 맞으면서 흙 파내느라 고생했어요. 피해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만 해주세요.'

거듭 사과를 하고 옥상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수채통에 흙을 걸러낼 수 있는 망을 그날로 설치를 했다. 저녁에 1층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찾아 왔다고 한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집에 없었고 아내가 대신 사과를 했다. 아주머니는 옥상에서 농사를 하는지는 몰랐다며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며 돌아 갔다고 한다.

▲ 옥상에서 흘러내린 흙떄문에 수채통이 막혀 옆 문틈으로 물이 넘쳤다. ⓒ 오창균


아내는 참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다며 나를 타박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일로 이웃에게 민폐를 끼친 것이 참으로 죄송하고 미안했다. 이번 일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사온 후부터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나눈 덕이라고 생각을 했다.

옆집 할머니는 옥상에 농사를 짓는 나를 보고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할머니께 수확한 농산물을 갖다 드리기도 했다. 지난 겨울에는 폭설로 가득 쌓인 눈을 옆집 골목까지 내 일처럼 치워서 좋은 이웃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같다. 1층집은 보일러 누수 때문에 몇번 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로 알고 지내는 이웃이 되었다.

이사온 후로, 아주 가끔씩 주차문제나 쓰레기 봉투 버리는 장소 문제로 이웃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저러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다툼이 되는 배경에는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찍부터 이웃과 담을 낮춘 것이 이번 일에서 보답을 받았고 생각한다.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첫 소통의 출발점임을 또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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