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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 40%로 규제 필요, 빚 못갚는 사람들 길거리 나 앉을 수도"

정부 "가계 부채 악화 없다"는 말만 되풀이... 대출자 피해 불보듯 뻔해

등록|2010.08.31 18:41 수정|2010.08.31 18:50

▲ 8·29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제주시내의 한 견본주택의 모습. ⓒ 선대식


8·29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의 한시적 폐지로 인해, 상환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해 주는 관행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인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3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만나 "현재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은 미국 기준으로 보면 '약탈적 대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 소비자 보호 규정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집값이 단기간에 하락할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 상당수는 '약탈적 대출'에 포함될 것"

약탈적 대출 개념은 1994년 미국에서 '주택소유 및 자산보호법(HOEPA, 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이 만들어지면서 도입됐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금융 소비자보호를 목적으로 확립돼 있는 핵심적 개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대출은 약탈적 대출로 간주돼 처벌 대상이 된다. 소득에 비해 과도한 대출을 하도록 하고, 대출상환 만기 때 상환을 할 수 없는 대출자의 담보를 처분토록 하는 '만기일시상환대출'이 대표적인 약탈적 대출의 유형으로 꼽힌다.

현재 단기 대출로 이뤄진 만기일시상환대출은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43%(2010년 1월 기준)를 차지한다. 박창균 교수는 "미국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의 상당수는 약탈적 대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총부채상환비율 한시적 폐지로 만기일시상환대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박 교수는 "2006년 총부채상환비율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장기 원리금분할상환대출이 늘었다"면서 "총부채상환비율이 폐지되면 다시 단기적인 만기일시상환대출이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약탈적 대출 개념뿐만 아니라, 대출 상품에 대한 소비자 보호를 규율하는 독립된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결국 은행들이 집을 담보로 과도하게 많은 돈을 빌려주고,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의 집을 빼앗는 상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DTI 40%로 규제하지 않으면,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 많을 것"

▲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선대식


정부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비해 가계 부채 증가와 금융 소비자 보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29일 브리핑에서 "외국에는 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을 규제를 하는 나라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구조적으로 금융기관이 총부채상환비율을 지키도록 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박 교수는 "미국의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채권을 정부지급보증기관인 패니메이(Fannie Mae) 등에 팔면서 수익을 올린다"며 "이때 패니메이는 채권을 매입할 때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철저하게 따지기 때문에, 은행들이 총부채상환비율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당시, 우량 주택담보대출 부문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들이 총부채상환비율을 지키도록 하는 제도가 미비하다"고 말했다.

"현재 50%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가 유지되기 때문에 가계 부채 문제가 악화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계에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10억 원짜리 주택을 매입할 경우, 5억 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만약 주택가격이 7억 원으로 하락할 경우, 담보대출가능금액은 3억5천만 원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 가계는 1억5천만 원의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우리나라 가계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기 때문에, 많은 가계들은 은행의 상환요구에 응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경기 변동에 따라 담보가치가 변하기 때문에, 서양의 금융기관들은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파악할 때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국의 총부채상환비율을 40%로 규제하고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의 장기 원리금분할상환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빚을 갚지 못해 많은 이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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