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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김 의원, 딱 한 마디만 하고 가시오"

2005년 교육부총리 입각 제의에 관한 이야기

등록|2010.09.02 15:06 수정|2010.09.02 18:02
2005년 신년 초였다. 난 예결위원으로 브라질 출장 중에 있었다. 남미 출장이 끝나는 대로 곧 있을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 민주당을 대표해 참석할 예정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왔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놀랍게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청와대에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전화를 걸어왔을까? 김실장은 다급하게 말했다.

"의원님, 바로 귀국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죠?"
"대통령께서 급히 찾고 계십니다."

뜻밖의 일이었다. 대통령을 만난 지 거의 1년이 넘었다. 분당 이후 대통령을 가까이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무슨 일인데 대통령께서 저를 이렇게 급하게 찾는단 말입니까?"
"저… 대통령께서 의원님을 교육부총리로 내정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뭐라구요!"

너무 놀라웠다. 나는 같은 당 소속도 아닐뿐더러 당시 열린우리당은 총선 대승으로 인해 사람이 차고 넘칠 때였다. 그런데 나에게 입각을 제의한 것이다. 그것도 내 분야가 아닌 교육부를, 난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즉시 거절했다.

"아, 나는 아니오. 내 분야도 아니고 같은 당도 아닌데 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집요했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들어오셔서 대통령님을 뵙고 직접 말씀하시지요. 이번 결정은 아래에서 보고가 올라 간 게 아니라 대통령께서 의원님을 직접 지목하신 겁니다."

순간 가슴이 찡했다. 대통령은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김 실장의 말이 옳았다. 대통령이 보낸 성의에 찾아뵙고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난 곧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고가 잘못 들어갈까 싶어 다시 한 번 단단히 다짐을 박아 두었다.

"좋습니다. 바로 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지 비행 사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개각의 문제는 시급한 일이니 저를 기다리지 마시고 후임을 물색하십시오. 죄송의 말씀은 대통령을 뵙고 직접 전달하겠습니다."

다음 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한화갑 대표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정을 취소하고 갑자기 귀국을 해야 하니 한화갑 대표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와 입각요청 그리고 이를 거절하기 위해서 입국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얘기가 끝나자 한화갑 대표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김 의원, 정말 고맙소."

당시 민주당은 거의 고사 직전에까지 갔다가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만약 내가 대통령의 제의대로 입각한다면 당으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었다. 결코 민주당을 와해하거나 흔들기 위해서 나에게 입각을 제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진정성은 대통령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다짐을 듣고도 한화갑 대표는 나의 귀국을 한사코 만류했다.

"김 의원, 내가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의 뜻을 꺾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를 못했소. 그러니 아예 들어가지 마시오."

그럴 순 없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나에게 보여 준 진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으며 인간 에 대한 믿음이었다. 난 걱정하는 한화갑 대표를 안심시키고 대통령을 만나러 귀국했다. 입국하자마자 청와대로부터 사저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는 대통령의 전갈을 받았다. 청와대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벌써 나에 대한 입각제의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이 야당 의원에게 입각을 제의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한 말..."제발 도와주시오"

대통령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우린 무척이나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대통령도 나도 낯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그랬는지 와인이 들어왔다. 나도 대통령도 술이 약했다. 한 잔만으로 우린 술기운이 올랐다.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대통령이 작심을 한 듯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김 의원, 제발 내 좀 도와주시오."

난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할 뻔 했다. 짧았지만 대통령의 부탁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이 안쓰러웠다. 취임 후 지금까지 대통령은 한 시도 편한 날이 없었다.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개혁하고자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문제점을 인식하는 대통령의 안목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그러나 그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당신이 생각하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마음만 바빴지 일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집권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은 조급하고 불안했으리라. 그리고 늘 외롭고 고독했다. 도와달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지도자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고독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흔들린 마음을 추스르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사무치는 미안함으로 인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각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함께할 것입니다. 당장 보수언론에서 민주당 죽이기로 융단폭격을 하지 않겠습니까?"

"김 의원, 그런 것은 무섭지 않아요. 김 의원은 나를 믿지 않소? 내 마음이 안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나는 절대로 민주당을 흔들거나 민주당에 해코지를 할 생각이 없어요. 김 의원은 그냥 당적 유지하세요. 민주당 계속하면서 나라일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 언론이었다. 그리고 당시 여권은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싸움, 이른바 당내 헤게모니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어쩌면 난 그 싸움의 한복판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또한 나의 입각이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민주당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나의 입각은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가능성이 더 컸다. 난 다른 핑계를 찾았다.

"대통령님 저는 교육전문가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졌다.

"무슨 소리하는 거요. 난 김 의원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훤히 다 알아요. 교육개혁은 교육전문가들이 할 수 없어요. 다 자기 식구들인데 스스로 생살을 도려낼 수 있겠소? "

대통령은 강경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쉽게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김 의원, 내가 작년부터서 교육문제만 나오면 교육이 곧 경제고 국가 경쟁력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어요. 그게 다 김 의원을 미리 염두에 두고 해 온 말이란 말이요. 내가 갑자기 사람이 없어 김 의원을 부른 게 아니란 말이요. 당신이 적임자요."

사실 그랬다.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교육문제에 있어서 국가 경쟁력이라는 말을 줄곧 해왔다. 숨을 고른 대통령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김 의원, 김 의원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오. 일단 맡아서 하시오. 일을 하면서 차차 더 큰 국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대통령은 내 정치적 앞날까지 염려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웠지만 난 마음만 받기로 했다. 나 역시 입각하고 싶었다. 입각은 모든 정치인의 꿈이다. 그 제의를 받으면 내 주가가 올라가고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야당 출신의 부총리인 내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모든 정치인이 다 그런다고 해도 개인의 욕심을 버릴 줄 아는 정치인이 한 명쯤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완곡한 거절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더 이상 날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밥값은 해야 하니 참여정부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얘기나 좀 하고 가라고 했다. 난 당시 중소기업문제에 대해서 참여정부가 너무 등한시 하고 있다는 말씀을 좀 신랄하게 드렸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대통령은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며 반론을 폈다. 나 역시 지지 않고 재반론을 폈다. 끝내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토론이 되어버렸다. 예전 대통령과 했던 토론이 생각났다. 시간이 지나고 당적을 달리하고 있었지만 둘의 마음은 변한 게 없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내 손을 잡은 대통령은 이별에 앞서 마지막 부탁을 해왔다.

"김 의원, 딱 한 마디만 하고 가시오."

"네?"

"밖을 보시오. 추운데 밤늦게까지 기자들이 다 기다리고 있잖소. 나가면서 그 기자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시오."

"어떤 말을 할까요?"

"마!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난 웃었다. 대통령도 웃었다. 대통령은 그런 분이었다. 소탈하면서도 따뜻하고,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서도 속은 한없이 부드럽고 눈물 많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시대 최고의 풍운아, 바람처럼 왔다가 우리의 가슴에 큰 바위로 내려 앉아 다시 바람처럼 가버린 사람. '노무현'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그 분이 만들려고 했던 세상, 반칙이 통하지 않고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 너나없이 모두가 다함께 잘 사는 사람 사는 세상, 그 세상은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난 그 분이 내게 준 애정과 관심을 결국 갚지 못했다. 그 빚은 내가 평생 짊어져야할 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빚을 고스란히 국민께 되돌려 갚을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부디 평안하게 쉬십시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는 '살아 온 삶의 이야기'는 근자에 출판한 저의 자서전 '뉴민주당 그 거대한 기쁨'의 일부분을 갈무리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와 사건의 중심이 부득이 저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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