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최대 정치 이벤트...시장경제 출발점 될 것"
[인터뷰] 탈북 1호 박사 안찬일씨가 본 '북 당대표자회'..."중국식 개혁개방 도입" 전망
▲ 탈북자 박사 1호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번 당대표자회는 북한이 시장경제 방향으로 선회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전망했다. ⓒ 유성호
북한은 1958년 1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이른바 '반종파투쟁'(8월사건)을 최종 정리함으로써 김일성 주석의 유일지배권을 확립했고, 1966년의 2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국방·경제 건설 병진정책' 노선을 최종 확정했다. 두 차례 모두 북한 역사에서 분기점이 되는 대회였다.
당대표자회는 5년마다 열게 돼 있는 당대회 사이에 당의 노선과 정책 등 긴급한 문제를 토의·결정하는 자리로, 당대회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사실상의 당대회로 볼 수 있다.
탈북자 박사 1호인 안찬일(56)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은 "이번 당대표자회는 북한이 시장경제 방향으로 선회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박사는 "북한은 지금 경제총노선을 제시해야만 하는 상황이며, 전면적인 수준은 아니겠지만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마당이 북한 경제의 핵심이고, 상인계층이 음으로 양으로 두텁게 형성되고 있으며, 중국의 위안화가 북한의 장마당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안 박사는 또 "북한 내 엘리트집단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중국식 개혁개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이 이번 당대표자회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후계자 등장 등 권력구조 개편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안 박사는 이와 함께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노선을 천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민군 상사이던 1979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탈북한 안 박사는 1991년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특채돼 17년간 북한 정보 분석 업무를 하던 중 1997년 '북한의 통치이념에 관한 연구-전통사상의 수용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국정원에서 나온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초빙교수로 있다가 귀국해 지난 6월 세계북한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강남에 있는 세계북한연구센터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문답 전문.
- 이번에 북한이 당대표자회를 여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30년 동안 당대회 또는 당대표자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공산당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상 당지배를 포기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당대표자회를 여는 건 갈급한 게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군부에 일부 넘어가 있던 권력을 찾아와 당의 지배를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군부를 통해 위기관리를 해왔는데 한계가 나타났다. 군에 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줄어들면서 군 역시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이것이 당에 위협이 되고 있다. 또 당은 지역 말단까지 신경망이 있기 때문에 체제 재생산과 세습 안정화에 유리하다. 이 역시 김정은 후계체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경제문제다. 6차 당대회 이후 북한은 경제건설노선을 천명한 적이 없다. 2002년 7.1경제관리조치는 조치라는 말이 붙은 것처럼 노선수준은 아니고 단기정책일 뿐이다. 경제발전총노선은 당대회와 당대표자회에서만 다룰 수 있는 사안인데, 북한은 지금쯤은 경제총노선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전면적인 수준은 아니겠지만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화폐개혁이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방안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은 현재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몰락했고, 장마당이 경제의 핵심인 상황이다."
"30년 동안 당대회 안 한 북한, 사실상 당의 지배 포기 상태"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은 "북한은 지금 경제총노선을 제시해야만 하는 상황이며, 전면적인 수준은 아니겠지만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유성호
- 북한이 중국식 개방으로 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나.
"우선 북한은 제2경제(군수경제) 분야까지도 가동률이 30%밖에 안 된다. 사실상 경제가 스톱상태로 있는 것이다. 인민들은 당에 줄을 서는 게 아니라 장마당에 줄을 서고 있고, 상인계층은 음으로 양으로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 자본 면에서도 위안화가 북한의 장마당을 지배하고 있다. 북한 엘리트집단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중국식 개혁개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지린(길림성)성 창지투(창춘, 지린, 투먼) 지역을 방문하고, 중국 동북3성 개발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관련이 있다고 보나.
"당 대표자회에서 천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방노선과 연결된다고 본다. 이런 측면도 있다. 이전에는 상해 푸동지구 같은 데 가서 상전벽해라고 했는데, 이것을 북한에 바로 도입하기에는 갭이 크다. 반면 동북3성은 그 폭이 작다. 이런 정도는 수용해도 체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참모들에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동북3성 개발이 북한의 현재 롤모델일 수 있다는 것이다."
- 1979년 탈북 때 당원 신분이었는데, 당시 북한 사회에서 조선노동당은 어떤 존재였나.
"그때만 해도 당은 확고한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군 간부의 대부분은 당원이었다. 당원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신분 상승의 계기가 됐다."
- 그 뒤에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인가.
"김정일 위원장이 1980년에 정치국 상무위원을 맡으면서 모든 시스템을 장악했다. 김일성 주석은 대남정책과 외교만 관장했다. 당은 본모습을 잃었고, 이후에 당회의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당내 비준을 거쳐야 할 인사를 김정일 혼자 다했다. 사회주의 집권당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김정일이 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정치를 하면서 당의 핵심이었던 정치국 같은 시스템이 불필요하게 됐다. 또 국가의 재정이 작동돼야 하는데, 경제난으로 재정배분이 안 됐다는 점도 이 같은 상황의 원인이 됐다."
- 탈북할 때 김정일이 후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군에 있었는데, 20세 때인 1974년에 입당했다. 당원으로서 이런저런 당의 지시를 받으면서 김정일이 후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반인민들도 대체로 알고 있었다. 북한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것이고 바꿀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보다는 그가 어떻게 할 것이냐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정치문화가 있다. 당시 그런 차원에서 기대감이 있었다."
- 당대회가 아닌 당대표자회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대표자회는 당대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고 한 2012년에 7차 당대회를 열 것이다. 이번 당대표자회는 거기로 가는 로드맵이다. 북한은 역대로 당대회를 대규모 사업을 결산하는 축제 형식으로 치러왔는데, 이번에는 결산할 만한 내용이 없다."
-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될 때는 정치국 논의와 같은 절차를 거쳤다. 지금은 상무위원은 김정일 하나고, 정치국도 보선이 안 돼서 13명 중에 4명뿐이기 때문에 그런 제도적 절차를 밟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국방위나 당 군사위원회, 인민군 최고사령부 같은 기구들의 추천 형식을 밟아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이 1997년부터 겸직하다가 지금은 사실상 공석이 된 당 조직비서를 맡거나, 당 제1비서를 신설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당대표자회는 당직만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나 정부 직책을 맡는 건 그 이후가 될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그는 국가안전보위부(정보기관)를 장악해서 세습기반을 닦고 있다고 한다.
좀 많이 나간 것이기는 한데, 김정일은 당 총비서 자리를 아들에게 주고 자기는 당 중앙위 군사위원장으로서 지도해나갈 수도 있다."
"이번 당대표자회는 2012년 당대회로 가는 로드맵"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WINK) 소장. ⓒ 유성호
"김정은이 후계자로 당을 장악하도록 하는 것이 당대표자회의 기본 목표다. 그런데 장성택이 조직비서를 맡는다면 그런 구도가 다 이상해진다. 김정은이 기업소 지배인들도 맡는 당 중앙위원을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볼 때 그만한 시간이 없다. 사실 3년 정도 남은 것 아닌가."
- 김정은 외에 권력구조는 어떻게 될까.
"적지 않은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너무 젊고, 현 지도부는 너무 노쇠했다. 세대교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당 기구들이 6차 당대회 시스템 그대로다. 김정은이 컴퓨터 세대고,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북한에도 정보행정이 도입된 상황이다. 군살을 빼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국방위 부위원장들이 정치국원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국방위의 장성택, 오극렬, 이용무 등의 비중으로 볼 때 거의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 김정일 위원장이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당신네 개혁개방을 따를 테니 경제적인 반대급부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약속을 받으러 간 것으로 본다.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핵심 아젠다인 최종경제노선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방문했을 것이다."
- '김정은 세자 책봉'을 인준 받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대표자회에서 그런 방향으로 갈 텐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이니, 그런 표현도 가능하다고 본다."
- 중국이 반대하면 북한이 후계체제를 못하는 것인가.
"옛날 청나라와 조선 같은 종속관계는 아니다. 중국이 한마디로 NO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도 북한은 후계와 관련해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원하는 것이므로, 타협의 측면이 있는 것이다. 중국은 묵인하는 대신 경제노선, 경제협력 등에 대한 대가를 챙기려 할 것이다."
-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의 조속한 속개를 희망한다'고 한 것은 어떻게 보나.
"북한은 6자회담을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또 지금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내적 논리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중국 체면을 세워주는 정도로 판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당대표자회가 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당대표자회가 시장경제 방향으로 선회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북한엔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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